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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31일 07시 09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2월 31일 08시 06분 KST

트럼프와 함께한 2017년, 트럼프와 함께할 2018년

세계가 ‘트럼프와 함께한 1년’이 저물고 있다. 2017년은 트럼프와 함께할 또다른 1년, 아니 그 이후까지 엿보는 프리즘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당당히 외치면서 등장한 트럼프 시대는 미국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기존 질서를 허물고 있다. 동맹은 균열되고 곳곳에서 갈등의 불씨는 세차게 타오르는 중이다. 트럼프의 2017년은 우리에게 무엇이었고 트럼프의 2018년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토토, 우리는 이제 더이상 캔자스에 있지 않은 것 같아!”

프랭크 바움의 동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주인공 도로시가 토네이도에 휩싸여 오즈의 나라로 온 직후 자신의 강아지 토토에게 한 이 말은 갑자기 낯선 세상에 맞닥뜨린 상황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풍유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등장(1월20일 취임)한 2017년, 갑자기 우리는 도로시가 됐다.

미국 사회에서 소외된 보수적인 백인 중하류층들은 트럼프를 도로시와 그 일행이 구세주로 찾았던 마법사 오즈로 여기고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오즈는 도로시 일행에 의해 사기꾼이라는 것이 뒤늦게 드러났으나, 트럼프 대통령(이하 호칭 생략)은 취임 첫날부터 자신의 ‘실체’를 별로 숨기려 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고상하고 책임감 있는 말을 하는 존재로 인식됐던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 등을 통해 하루에도 몇번씩 험한 막말과 너스레를 떨어댔다. 하지만 현실의 도로시들인 미국의 적지 않은 유권자들은 여전히 트럼프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시켜 줄 마법사(오즈)로 알고 있다.

취임 첫 일성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트럼프는 1월20일 취임사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은 모든 나라들의 권리”라며 ‘아메리카 퍼스트’인 미국 우선주의를 선언했다. 이는 미국의 무역적자 감축과 동맹 체제에서 미국의 부담 경감에 초점을 둔 외교 및 무역정책의 선포였다. 무역적자 감축과 동맹 부담금의 전가는 미국이 1960년대말부터 추구하던 정책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접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설정하고 주도하던 가치와 질서를 스스로 부정하고 허무는 수준으로까지 나아갔다.

지난 70년 동안 세계질서를 좌우한 미국의 패권을 지탱한 건 세 개의 축이다. 미국의 군사력이 주축이 된 동맹체제를 기반으로, 경제적으로는 자유무역,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자유주의 질서가 그것이다. 미국의 패권은 좋든 싫든 간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세계를 규율하던 거버넌스였다. 하지만 2017년 트럼프의 미국은 동맹체제, 자유무역, 자유주의라는 미국 패권의 주축을 모두 부정하는 1년을 보냈다.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은 분명 그 이전의 미국과는 다른 미국이고, 그 미국은 세계를 도로시가 접했던 오즈의 나라처럼 보이게 하고 있다. ‘트럼프와 함께한 1년’은 그와 또 함께할 1년과 그 이후를 엿보는 프리즘이다. 프리즘은 사물과 현상을 왜곡하고 증폭시킨다. 그래서 트럼프와 함께한 1년이란 프리즘은 우리가 걸어가야 할 국제사회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증폭시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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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무역 질서의 쇠퇴

트럼프가 취임 뒤 제일 먼저 편 주요 정책은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부정이다. 그는 취임 나흘째인 1월23일 무역대표부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할 것을 지시했다. 미국이 주도하던 티피피는 환태평양 지역을 대상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지대를 만들려는 구상이다.

티피피 협상은 지난 대선에서 누가 미국의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난항이 예상되기는 했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통령 후보도 자유무역에 바탕을 둔 세계에 실망한 미국의 전통 산업 부문 노동자들의 불만 앞에서 티피피 탈퇴를 약속하기도 했다. 미국이 90년대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 체결 이후 밀어붙인 자유무역협정은 세계화의 중요한 동력이었음에도, 미국 전통 산업 부문 노동자들의 불만에서 보듯 세계화는 세계적 차원의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문제는 트럼프의 티피피 협상 탈퇴 등 자유무역협정 폐기 위협이 세계화의 부작용에 희생된 이들의 이익에 복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세계화의 최대 수혜자인 대기업들에 면죄부만 제공하고, 무역분쟁을 부추기고 있을 뿐이다.

트럼프는 중국 및 멕시코 등 미국에 대해 무역흑자를 기록하는 주요 교역국의 제품을 상대로 50% 관세 부과를 위협했다. 수출품에는 세금을 매기지 않고, 미국 국경을 넘는 수입품에 20%의 관세를 부과하는 국경조정세 신설도 공약했다. 트럼프는 생산 시설을 해외로 옮기거나 조세를 회피하려고 해외로 나가는 미국 기업들을 질타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그러나 모든 것이 말로 끝났다.

에어컨 제조업체 캐리어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트럼프는 취임 전인 지난해 12월1일 인디애나폴리스에 있던 생산시설을 멕시코로 옮기려던 캐리어의 계획을 변경시켜, 1100개 이상의 일자리를 유지하게 됐다고 트위터에 발표했다. 캐리어의 공장 이전은 대선 기간 중 문제가 됐고, 트럼프는 당선되자마자 이를 취소시켰다고 자랑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실상은 캐리어에만 특혜를 준 것으로 드러났다. 캐리어는 주 정부 등으로부터 700만달러의 보조금을 받고는 향후 10년 동안 최소한 1069명을 인디애나 생산시설에서 고용하기로 합의했다. 1069명 중 해고 대상이던 생산직 노동자는 730명이고, 나머지 인원은 애초부터 이곳에서 정리해고 대상이 아니었던 전문기술직이다. 회사는 인디애나폴리스 공장에서 일하는 생산직 노동자 6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지난 7월부터 정리해고에 들어갔다. 캐리어가 약속한 1600만달러 투자는 생산자동화에 쓰이므로 생산직 노동자 일자리 창출과는 거리가 멀다.

트럼프는 1년 전 트위터에서 “그들은 대단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확히 1년 뒤인 지난 25일 크리스마스에 캐리어의 인디애나폴리스 노동자 다수는 정리해고됐다. 트럼프는 캐리어와의 합의를 발표하면서 멕시코 등으로 일자리를 옮기는 기업들은 더이상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자동차 회사 포드도 멕시코로 공장을 이전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포드는 지난 6월 차세대 자동차 포커스 생산시설을 켄터키에서 중국의 기존 공장으로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취임을 전후한 트럼프의 대기업 협박은 한바탕 쇼로 끝났고, 대기업들은 트럼프 행정부하에서 오히려 미 국내 기존 일자리 유지를 위한 보조금만 챙기게 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좋은 일자리 우선’ 정책에 따라, 미국 지방 정부들은 매년 700억달러의 인센티브를 기업들에 지급해야 할 처지다. 이런 규모의 돈을 교육이나 사회간접시설에 투자하는 것이 일자리 창출에는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많다.

더군다나 트럼프는 미국 기업들의 생산시설 해외이전을 막지도 못할뿐더러, 오히려 이를 촉진하고 있다. 연말에 의회를 통과한 세제개편안은 미국 다국적 대기업들의 해외 투자·고용·생산에 세제혜택을 더 주고 있다.

대신에 나라 밖을 상대로 한 공세는 이어갔다. 트럼프는 폐기를 위협하던 북미자유무역협정, 한-미 무역협정 등의 재협상을 추진하는 한편, 중국에는 여전히 보복관세 부과를 위협하고 있다. 2018년 연말 치러질 중간선거 일정을 고려한다면, 트럼프 행정부가 지지층들을 달래려고 한국 등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국가들이나 중국을 최대한 압박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미국이 만들어 놓은 세계무역기구(WTO) 등 자유무역의 체제와 규정은 무시되고, 미국 내의 보호주의적 법령들이 우선시될 것이다.

징후는 뚜렷하다. 지난 11월11일 베트남 다낭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의 일환으로 열린 아펙 최고경영자 서밋에서 트럼프는 기존의 다자간 무역협정에 대해 “우리의 손을 묶는 불공정 협정”이라며 “미국의 상업적 권리를 방어할 것이고, 미국은 더 이상 여기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세계화는 되돌릴 수 없는 역사적 추세”라며 “우리는 개발도상국들이 국제 교역과 투자로부터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다자간 무역체제를 지지하고 개방적 지역주의를 실행해야 한다”고도 말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는 대비된다. 시진핑은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창설 등 역내 경제통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주문도 했다.

미국 주도 세계화의 신봉자인 미국 언론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트럼프의 티피피 탈퇴에 중국은 몰래 웃고 있다”며 미국 패권의 한 주축인 자유무역 질서의 챔피언이 중국으로 비치는 현실에 개탄했다. 결국 미국의 다국적 대기업들에만 혜택이 돌아갈 트럼프의 보호주의는 불공평한 세계화의 조류를 개선할 기회마저 박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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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주의, 반이민의 극우포퓰리즘

트럼프는 취임 6일째인 1월25일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계획은 트럼프가 이틀 뒤 발동한 무슬림 국가 출신 국민들의 미국 입국 금지 행정명령, 지난 9월6일에 발표한 ‘비합법 입국 청년 추방 유예 프로그램’(DACA·다카) 폐지 선언 등과 함께 인종주의와 반이민의 극우포퓰리즘 광풍을 1년 내내 몰고갔다.

대체로 트럼프가 내건 정책들의 특징은 실질적인 효과보다는 지지층들의 정서를 자극하는 것이다. 일련의 반이민 정책들이야말로 그 전형적인 예이다. 불법 이민 억제라는 실효성은 의문시되는 반면, 인종주의만을 자극하며 미국 내의 분열을 증폭시키고 있어서다. 미국이 추진하는 국경 장벽의 재원을 멕시코에게 부담시킨다는 계획도 황당하지만, 3천㎞가 넘는 미-멕시코 국경에 물리적 장벽을 세워서 불법 이민자들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미-멕시코 국경 장벽 재원 조달 문제에서 트럼프는 꼼수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는 취임 뒤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자금 조달은 어떻게든 방법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멕시코가 장벽에 돈을 내지 않겠다고 말한다면, 당신들과 더이상 만나지 않을 것이다. 그걸 용납할 수는 없다”고 회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국경 장벽이) 중요성이 가장 적은 것이지만, 정치적으로는 가장 중요할 수 있다”고 말해, 장벽 건설이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것임을 스스로 인정했다.

무슬림 국가 국민들의 미국 입국 금지 행정명령은 미국 법원들이 그 시행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리는 등 여전히 논란이 진행중이다. 비합법 이민자들에게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는 도시들도 연방정부의 지원을 감축하겠다는 트럼프의 행정명령을 거부하고 나섰다.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들은 분명 보수적인 백인 지지층을 결집하는 조처들이다. 문제는 이런 조처들이 미국이 건국 이후 추구해오던 자유주의의 쇠퇴를 미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로 대표되는 백인민족주의 세력은 이제 미국에서 주변부 세력이 아니라, 워싱턴 정가를 좌지우지하는 세력으로 부상했다.

온건한 고학력 중상류층이 주축이던 공화당은 기독교 복음주의 및 백인민족주의라는 극우 세력의 포로가 됐다. 중간선거를 앞둔 2018년은 미국 정치의 분열상을 그 어느 때보다도 적나라하게 드러낼 것이 분명하다. 공화당은 기독교 복음주의와 백인민족주의 세력이 이탈하면 선거에 승리할 가능성이 적어진다. 백인민족주의 세력 등 트럼프 지지세력들은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승리 여부보다는 공화당 장악 등 자신들의 정치적 몫을 확대하는 데 전력투구하고 있다. 이는 결국 미 국내에서 자유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을 더 강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의 플로리다 마러라고 골프리조트에서 정상회담을 하던 도중인 4월7일, 트럼프는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정권의 공군기지에 대한 대규모 폭격을 단행했다. 이 폭격은 무력사용과 중동분쟁에 대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일방주의적 접근을 예고하는 상징이었다.

민간인에 대한 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 사용을 응징한다는 명분을 내건 이 폭격은 미국의 경쟁 국가인 중국 주석을 옆에 두고 단행했다는 점에서, 미국의 힘과 의지를 모든 국가에 경고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 폭격은 아사드 정권이 약화되거나 제어되는 효과는 전무한, 일회성 이벤트에 그쳤다. 오히려 난마처럼 얽힌 중동분쟁에서 트럼프의 전략과 미국의 입지는 더욱 모호해졌다.

트럼프는 취임 전부터 러시아와 협력해 시리아 내전 등 중동분쟁을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다. 러시아는 최근 중동분쟁에서 한 축으로 떠오른 이란-시리아(아사드 정권)-레바논(헤즈볼라)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연대를 후원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며 상설 군사기지를 확보하는 등 중동에서 영향력을 다시 확장하고 있다. 중동에서 러시아와의 협력은 논리적으로는 이란 등 시아파 연대와의 타협을 의미하기도 했다.

아사드 정권에 대한 전격적인 폭격 이후 트럼프의 행보는 전혀 반대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5월 첫 해외순방인 중동지역 방문 중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수니파 50여개 무슬림 국가의 지도자들과의 정상회의, 6월 사우디 등의 카타르 단교 조처, 10월 이란과의 국제 핵 협상 재승인 거부 선언, 12월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는 선언 등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졌다. 이런 일련의 조처들은 기본적으로 중동분쟁의 큰 축을 사우디가 주도하는 수니파 국가 대 이란의 시아파 세력과의 대립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예루살렘 선언으로 트럼프는 이슬람 세계 전역에서 미국의 외교적 지렛대를 외려 쇠퇴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의 중동 전략 핵심은 중동분쟁의 안정화를 통한 중동에서 미국의 개입 축소였다. 오바마는 이를 위해 이슬람국가(IS)를 우선적으로 패퇴시키고 시리아 내전 등에서의 타협을 통해 중동에서 세력관계의 안정화를 추구했다. 이란과의 핵 협상 타결도 중동에서 최대 국가인 이란의 역할을 인정하는 조처였다.

하지만 트럼프의 중동정책은 수니파와 시아파 국가 사이의 대립을 더욱 촉발해 분쟁을 격화시키면서도, 미국의 개입에 대한 청사진은 빠져 있다. 다만 트럼프는 사우디 방문에서 1100억달러(123조원) 무기판매 계약을 체결하는 등 중동 지역의 수니파 국가들을 향해 무기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을 뿐이다.

올해 하반기 들어 이슬람국가가 수도 격인 락까마저 함락당하면서 사실상 소멸되는 공백을 틈타 아사드 정권의 세력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또 시아파인 후티 반군이 수도 사나를 장악한 예멘 내전 역시 격화되고 있다. 중동 분쟁은 이제 사우디 주도의 수니파 대 이란 주도의 시아파 분쟁으로 확장되고 있다. 트럼프는 여기에 기름을 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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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 체제의 갈등과 약화

“우리 유럽인들은 우리의 운명을 직접 결정해야 한다. (…) 우리가 다른 곳에 전적으로 기댈 수 있었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나는 최근 며칠 동안 그걸 경험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트럼프가 유럽 순방을 마치고 돌아간 지난 5월28일, 뮌헨에서 열린 한 정치집회에서 미국으로부터 유럽의 독립을 시사하는 충격적인 선언을 했다. 유럽연합을 주도하는 독일 정상의 이런 발언은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지렛대 구실을 하는 미국과 서유럽의 대서양 양안동맹의 위태로운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트럼프는 지난해 대선 때부터 미국과 유럽의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대한 폄하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옹호해, 독일 등 유럽의 미국 동맹국들을 자극했다. 메르켈의 이날 발언에 앞서 트럼프는 5월 유럽 순방에서 나토 및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기간 중 약속에 늦거나 폐막식에 불참하는 등 무례한 외교적 언행으로 일관했다. 특히 그는 나토 정상회의 연설에서 회원국 중 한 나라가 침공당하면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나토 헌장 제5조(집단방위 조항)를 재확인하지 않았다. 대신 “28개 회원국 중 23개국이 지급해야 할 비용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며 회원국 정상들을 되레 나무랐다. 또 회원국들의 미지급액이 어마어마하다며 사실과 다른 발언을 했다.

워싱턴의 미국 주류 엘리트뿐만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의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등도 유럽과의 동맹체제 균열에 비명을 터뜨리고 있다. 영국의 탈퇴로 위기를 맞는 유럽연합을 이끄는 독일로서는 자연스레 러시아와의 타협과 중국에 대한 접근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유럽의 홀로서기는 결국 유럽에서 독일의 역할과 영향력 확장을 불러올 것이고, 이는 유럽과 세계질서에 새로운 파장을 예고한다. 대서양 양안동맹의 갈등이 앞으로 어디까지 진행될지는 미지수이나, 미국은 분명 스스로의 패권 기반을 허물고 있고, 2018년은 이 점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줄 것이다.

국제 합의 파기

미국과 유럽의 갈등 배경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 등 국제 합의 파기가 자리잡고 있다. 트럼프는 5월 유럽 순방에서 파리 기후변화협정에 대한 지지를 확인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평소 기후변화 주장은 ‘중국이 만들어낸 사기’라고 말해왔다. 그는 귀국 직후인 6월1일 결국 기후변화협정 탈퇴를 공식 선언했다. 파리 협정이 미국의 주권을 제한하고 미국 노동자와 경제에 불이익을 준다며 탈퇴를 강행한 것이다. 이는 이란 핵협정 재승인 거부,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는 선언와 함께 미국이 구축하고 주도한 국제 합의와 체제를 트럼프 미 행정부가 스스로 허물어뜨린 대표적 사례였다.

미국의 파리 협정 탈퇴로 다자간 합의에 기초한 국제질서는 퇴보하게 됐다. 국제사회는 당장 지구적 차원의 환경 악화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는 기후변화에 손을 놓고 있을 처지가 됐다. 트럼프는 국내에서도 환경 악화 논란으로 유보됐던 키스톤 송유관 부설 승인, 탄광 개발 등을 승인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등이 앞장섰던 청정에너지 개발에도 제동이 걸렸다.

미-중-러 삼각 관계

미국-중국-러시아의 관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큰 틀에서 세계 패권 질서를 규정했다. 세 나라의 관계는 1960년대 중반까지의 반미 중소동맹→1970~80년대의 반소 중미연대→1990년대 미국 우위의 삼각관계→2000년대 이후 대미 중러협력으로 변해왔다. 특히 70년대초 미국과 중국의 화해는 소련의 붕괴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 미국은 그 후 세 나라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어왔다.

트럼프의 등장은 세 나라의 관계를 다시 뒤흔들고 있다. 트럼프는 대선 때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개인적으로 칭송하며, 러시아와의 협력으로 국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다. 반면 중국에 대해서는 경제적 보복 등을 시사하는 등 강력한 대중국 견제 의지를 드러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하에서 미국이 러시아와의 협력해 중국을 고립시키는 ‘반중-미러 협력’ 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성급한 전망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취임 이후 1년 동안 미국은 중국뿐만 아니라 러시아와도 최악의 관계를 보이고 있다. 외려 미국을 견제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이 더욱 강화되는 분위기다. 트럼프를 당선시킨 지난해 미국 대선 당시 러시아의 ‘개입’은 푸틴의 러시아와 관계를 개선하려는 트럼프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미국의 주류 세력들은 트럼프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러시아의 미국 선거 개입을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중대한 사안으로 바라보는 편이다. 푸틴은 자신과 러시아를 놓고 극심한 이견을 보이는 워싱턴 내의 불화, 미국과 유럽의 갈등, 영국이 탈퇴한 유럽연합 분열상을 십분 활용해,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트럼프는 11월초 아시아 순방에서 중국을 견제하려는 새로운 전략 개념인 ‘인도-태평양’ 체제를 선보였다. 기존의 아시아-태평양 개념에서 인도를 포함시켜 확장한 인도-태평양 개념은 미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인도의 대중국 4자 연대를 상정한다. 4자 사이의 불균형 및 이해관계 차이로 인해 인도-태평양 개념에 바탕을 둔 대중국 포위망이 진전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이라는 반작용을 부르고 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대결을 더욱 고조시킬 가능성은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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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성찬’뿐인 대북 정책

2017년 한해 동안 트럼프의 트레이드마크인 막말 수위는 북한의 핵개발과 관련해 가장 심했다.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 실험을 이어가던 북한에 대해 트럼프는 지난 8월8일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대한 미국의 핵폭탄 투하를 연상시키는 ‘분노와 화염’을 언급했다. 그 이후 북한은 트럼프를 ‘미치광이 늙다리’라고까지 모욕했고, 트럼프는 이에 북한에 대해 군사적 옵션을 사용할 수 있다는 시사를 거듭했다.

트럼프는 북한에 대한 최대한 ‘압박과 관여’를 공식 정책으로 표방하면서도, 관여를 위한 국무부 등의 외교적 접근에는 거듭 제동을 걸었다. 틸러슨 국무장관이 지난 12월12일 북한과 전제조건 없는 대화 의지를 밝혔으나, 백악관은 그 다음날 ‘지금은 북한과 대화할 때가 아니다’라며 그 제안을 즉각 부정했다. 현재까지 북한 문제와 관련해 트럼프는 최대한의 압박만 있을 뿐, 관여는 전혀 선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 문제에 대한 트럼프의 대응 역시 말의 성찬만 있되 실효적 접근은 없는, 특유의 트럼프식 상품이다. 북한과의 갈등은 트럼프가 지지율이 하락하는 가운데 중간선거를 앞둔 2018년에 더욱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대북한 해상봉쇄 등은 트럼프가 충분히 취할 수 있는 선택지이다. 이는 북한을 실효적으로 봉쇄하는 효과보다는 북한과의 충돌을 야기할 우려가 크다.

트럼프와 함께한 2017년이 저물고 있다. 2018년은 미국 중간선거의 해이다. 만일 11월로 예정된 중간선거에서 트럼프의 공화당이 다수당 지위를 유지한다면,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은 국제사회와의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며, 결국 미국의 영향력 쇠퇴를 스스로 재촉할 것이다. 반대로 민주당이 다수당으로 복귀한다면, 트럼프는 미국 대선에 개입한 러시아와의 공모 혐의로 최악의 경우 탄핵에 몰릴 수도 있다. 이는 미국 사회 전체의 극단적 대립으로 이어질 게 틀림없다. 2018년. 그리고 11월 중간선거는트럼프의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 중대한 변곡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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