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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0일 17시 23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2월 20일 17시 25분 KST

'사제 성추문 은폐' 불명예...버나드 로 추기경 사망

Mondadori Portfolio via Getty Images
Celebration for St Joseph, the Holy Virgin Mary's husband. A clos-up of cardinal Bernard Francis Law during the mass celebrated by Pope Francis with the rite of the bishop's ordination. St Peter, Vatican City, 19th March 2016 (Photo by Grzegorz Galazka\Archivio Grzegorz Galazka\Mondadori Portfolio via Getty Images)

미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을 은폐한 불명예를 안고 버나드 로 추기경이 숨졌다고 교황청이 20일(현지시간) 밝혔다. 향년 86세.

로 추기경은 미국 가톨릭계를 충격에 빠뜨린 아동 성추행 파문의 진앙지인 보스턴 대교구 책임자 출신이다.

CNN 등에 따르면 로 추기경은 최근 로마의 한 병원에 입원했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 구체적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보스턴 대교구장이던 당시 관할 사제들이 무려 30년 동안이나 아동들을 성추행한 사실을 알고도 이에 수 년간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

로 추기경의 은폐 사실이 드러나자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동요했다. 그는 이전까지 가톨릭 교리의 충실한 수호자로 정평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로 추기경은 1984년 보스턴 대교구장에 오른 이래 17년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성직자였다. 당시 교황이던 요한 바오로 2세의 최측근으로 손꼽혔으며 심지어 로 추기경이 향후 첫 미국인 교황으로 등극할 것이라고 관측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2002년 1월 이 모든 것이 바뀌었다. 당시 로 추기경 관할이던 보스턴 대교구 사제들이 교구를 옮겨다니며 아동들을 성추행하고 다녔다는 스캔들이 터져나온 것이다.

특히 추문의 장본인 중 하나인 존 지오니 전직 신부가 30년 넘게 130명 이상의 남자 아이들을 학대해 온 것으로 드러나면서 여론은 들끓었다.

스캔들에 대한 법정 공방과 수사가 시작됐지만 로 추기경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변호사를 통해 피해자와 은밀히 합의하고 문제의 사제는 다른 교구로 보내는 미봉책을 체계화했다.

2002년 12월 로 추기경이 오히려 성추문을 키웠다는 비판은 고조됐다. 그가 피해자 보호 대신 사제 감싸기에 급급했다는 내용의 내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이러한 여론은 폭발했다. 그는 결국 사임을 결정했다.

로 추기경은 이후 추기경 자리를 유지했으나 관할 교구는 혼란에 빠졌다. 500여건의 소송과 1억달러(약 1081억원) 상당의 손해보상청구, 이에 따른 파산 위기까지 이어졌다.

자진 사임으로 스캔들에서 한 발 물러난 듯 보였던 추기경이지만, 가톨릭계의 분노와 배신감은 이후에도 그에게로 집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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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대교구 사제 성추문은 2015년 개봉된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을 흐르는 소재이기도 하다. 영화는 보스턴 지역 신문 '보스턴 글로브' 언론인들이 로 추기경의 스캔들 은폐 방식을 어떻게 폭로했는지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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