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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4일 12시 26분 KST

[ESC] VR을 켜자 뜨거운 속살의 향연이 펼쳐졌다

hocus-focus via Getty Images
Young man wearing vr headset and handphones. Isolated on white. Wearable technology concept.

가상현실(VR) 시대가 다가오면서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분야 가운데 하나는 ‘섹스’다. 1993년 국내 개봉한 영화 <데몰리션맨>에선 머리에 텔레딜도닉스(Teledildonics)라는 기구를 착용하고 서로 몸을 섞지 않으며 섹스를 나누는 장면이 나와 화제가 됐다. 이밖에도 영화 <에이아이>(AI)나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도 가상의 홀로그램과 섹스하는 장면이 나온다. 최근 개봉한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선 아예 집에 상주하는 인공지능 여성 ‘조이’가 등장한다. 가상현실이 인공지능과 결합되면 ‘가족’이라는 개념조차 모호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영화 속 상상을 실현하기 위해 인간은 계속해서 노력 중이다.

몰입감과 실재감을 증폭시켜주는 브이아르(VR) 기술을 ‘야동’(야한 동영상)이라 불리는 성인물 시장이 가만둘 리 없다. 미국과 일본에선 이미 2~3년 전부터 브이아르 포르노를 전문으로 만드는 업체가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기존의 성인물 업체들도 앞다투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에는 브이아르 성인영상을 전문으로 볼 수 있는 성인용 브이아르 방이 늘어나고 있다. 광주·창원 등 남부지방에서 처음 시작했는데 인기가 올라가자 점점 수도권으로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다. 얼마나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기에? 궁금한 마음에 8일, 새로 생겼다는 인천의 성인용 브이아르방을 가보기로 했다.

어지러운 간판이 꽉 들어찬 상가 사이를 헤매다가 겨우 간판을 찾았다. 간판에는 ‘19’라는 글자가 크게 쓰여 있었다. 19살 미만은 출입금지란 뜻이다.

약간 긴장된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두툼한 패딩점퍼를 입은 직원이 영화를 보고 있다가 황급히 일어났다.

“처음인데요.”

“아, 처음이세요? 시간당 1만5000원이고 선불입니다.”

신용카드를 내밀고 결제를 하는 동안 주위를 둘러봤다. 한쪽에 성인용품이 전시돼 있었다. 남성용·여성용 골고루 보였다. 성인용 브이아르방과 성인용품이라니. 필요한 사람들은 사서 쓰라는 의미였다.

직원이 방으로 안내했다. 한동안 유행했던 디브이디(DVD)방과 다르지 않았다. 좁은 복도가 있고 양쪽에 방이 쭉 이어졌다. 방문을 열었는데 당황스러웠다. 뭔가 영화 속에 나온 것처럼 최첨단 부스나 캡슐 같은 장치가 있을 거 같았는데, 그냥 보통의 디브이디방이었다. 접이식 소파와 한쪽엔 뽑아 쓰는 휴지, 그리고 물티슈. 매캐한 공기까지 똑같았다.

“추우시죠?”라며 직원은 전기히터를 켰다. 그리고 곧 사용법을 알려줬다.

직원은 브이아르 콘텐츠를 볼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에이치엠디(HMD·머리에 뒤집어쓰고 보는 브이아르용 장치)를 내밀었다. 보통의 에이치엠디는 앞쪽에 스마트폰을 끼는 형태지만 이 제품은 아예 스마트 기기가 붙어 있는 제품이었다.

“보이시죠?”

눈이 나쁜 탓인지 앞이 뿌옇고 보이지 않았다.

“안 보이는데요?”

“얼굴에 잘 붙여보세요”라며 직원은 에이치엠디를 얼굴에 밀착시켰다. 뭔가 얼굴이 흡착되는 느낌. 썩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그래도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안 보여요.”

“눈이 많이 나쁜가 봐요. 그냥 안경 쓰세요.”

직원의 안내로 벗었던 안경을 다시 쓰고 기구를 뒤집어쓰자 그제야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화면 속의 빨간 점이 보이는데 얼굴을 돌리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빨간 점은 마우스 커서였고 내 머리가 마우스가 된 것이다.

메뉴에는 ‘성인용’이라는 글자가 또렷이 보였다. 직원은 “한 시간 되면 노크할게요”라며 방을 나갔다.

혼자 덩그러니 방에 앉아 다시 에이치엠디를 뒤집어썼다. 귀엔 이어폰을 착용하고 있었고, 앞은 잘 보이지 않는 상태. 내가 보고 들을 수 있는 건 가상현실 속뿐이었다. 조심스럽게 성인용 콘텐츠 메뉴로 고개를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수도 없이 뜨는 성인용 영상물들. 일본, 미국, 프랑스, 한국, 국적도 다양했다. 아무거나 일단 보기 시작했다.

‘헉.’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깜놀’했다. 정말 코앞에 사람이 있는 것 같은 실재감과 내 시점이 가는 곳으로 변경되는 화면. 이건 1인칭 작가 시점이었다. 기존 야동은 전지적 작가 시점 아니었던가. 가상현실 속에선 나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여자의 몸과 얼굴만이 보였다. 콘텐츠 가운데는 여성용도 있었다. 여성용 콘텐츠는 여성의 시점으로 화면이 진행된다.

초반 5분은 충격이었다. 정말로 ‘사람과 섹스를 하는 시대는 종언을 고하는 것인가’란 생각부터, ‘성인용품과 만나면 성매매는 없어질 수도 있겠다’란 생각도 들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고 손과 발, 몸만 보이는 남자와 얼굴 포함 몸 전체가 보이는 여자가 ‘관계’를 하는 모습이 입체적으로 등장해 눈길을 사로잡는데, 마치 내가 그 남자가 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곧 지루함이 밀려왔다. 왜 그런가 했더니 앵글의 문제였다. 모든 영상의 앵글이 똑같았다. 나오는 인물만 바뀔 뿐이지 영상이 다들 비슷하니 더 이상 감각을 자극하지 못했다. 여기에 눈 바로 앞에 화면이 있는 터라, 디스플레이의 도트(점)가 눈에 들어왔다. 현실이 아니라 굉장히 화질이 나쁜 텔레비전 화면을 보는 느낌이었다.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였다.

salma hayek weinstein

에이치엠디를 벗었다. 뜨거운 속살의 향연이 펼쳐진 화면은 다시 어두침침한 디브이디방으로 바뀌었다. 허망함이 밀려왔다. 차라리 디브이디방에선 연인들이 영화를 보면서 하다못해 ‘뽀뽀’라도 할 수 있었다. 이건 머리에 뒤집어쓰는 기구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섹스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해봤다. 섹스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우선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인들이 데이트할 때 생마늘이나 양파를 안 먹는 것이고, 침대에 오르기 전 온몸을 구석구석 씻고 그렇게 혓바닥을 박박 닦는 것이다. 브이아르 섹스에선 이 모든 것이 생략된다. 가상의 존재와 섹스를 나누는 동안 내가 코딱지를 파고 있어도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는 섹스가 과연 지속 가능할까.

하지만 언젠가 기술의 발달은 배려와 같은 감정의 교류까지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조이’나 <허>의 ‘사만다’ 같은 진짜로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가상의 존재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인공지능과의 결합이 향후 브이아르의 미래라고 하니 말이다.

이런저런 영상을 눌러보고 하다 보니 어느덧 ‘똑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아니면 좀 빨리 노크를 했거나. 업장을 나가는데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나를 보고 ‘씨익’ 웃었다. 무슨 의미였는지는 모르겠다. 들어올 때 못 봤던 입간판에는 ‘또 다른 세계로 안내하는 브이아르 세상’이라고 쓰여 있었다.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찬바람을 맞으며 걸어가는데 한 카페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인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아이 인 더 스카이’(하늘의 눈)였다.

“나는 하늘의 눈, 당신을 보고 있어요. 난 당신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바보가 되지 않도록 규칙을 만들 수 있어요. 당신을 속일 수도 있어요. 난 당신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요.”

몸이 더 움츠러들었다. 바람 때문은 아니었다.

장밋빛일까 흙빛일까, 브이아르 섹스의 미래

가상현실(VR)을 섹스에 적용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외국에서 더 활발하다. 특히 일본의 경우 기존 성인용품과 마찬가지로 이 분야의 선두주자다. 이미 여러 제품이 나와 있지만, 핵심은 브이아르 영상과 제품을 연동해 화면 속의 자극이 실제 자극으로 이어지게 한다는 점이다. 이는 남성용뿐만 아니라 여성용까지 두루 적용된다.

지난해 일본에선 슈트용 제품까지 나와 화제가 됐다. 유튜브 영상을 보면 브이아르 영상 재생 장치인 에이치엠디(HMD)를 뒤집어쓴 한 일본인이 멜빵형 슈트를 착용하고 있는데 화면 속 영상과 연동돼 장치의 속도가 변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이 제품엔 인공 유방까지 달려 있어 ‘촉감’을 재현해내기도 했다. 한국서도 일부 업체가 브이아르 연동 성인용품을 수입해서 판매하고 있다. 제품을 수입하는 도쿄통상의 박윤성 대표는 “브이아르 쪽에서 성인용 콘텐츠는 무궁무진하다. 성매매 감소 등 오히려 바람직한 성인문화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시장 전망은 밝은 편이다. 시장 전망이 밝다는 것은 돈이 몰린다는 것이고, 이는 기술 발전을 재촉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1월, 미국 경제 잡지 <포천>의 ‘지금, 가상현실 스트립 클럽이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면 2015년 한해 동안 10개 가상현실 포르노 사이트의 접속량이 202% 증가했다. 특히 에이치엠디 기기를 생산하는 미국 호미도의 경우 외부 유입 트래픽을 분석했더니 절반에 가까운 47%가 포르노 사이트를 통해서였다. 일종의 경제유발 효과를 낸 것이다.

가상현실 섹스가 성병이나 성폭력 같은 부정적인 현상을 감소시켜줄 것이란 긍정적 기대도 있지만 부정적 전망도 무시할 수 없다. 2015년 7월 영국의 <가디언>은 ‘어떻게 가상섹스가 세계 평화를 가져오나’란 기사를 통해 “가상현실 포르노가 브이아르 대중화의 기폭제가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세계평화의 새 시대를 선사할 수도 있다. 모두들 얼굴에 고글을 쓴 채 집에 앉아 있어, 거리가 텅텅 비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비꼬았다.

Virtual Reality(VR)

가상현실. 실제는 아니지만 인간의 오감을 자극해 실제처럼 느끼게 하는 기술. 사용자가 가상의 현실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뮬레이션과 다름. 인공지능(AI), 증강현실(AR) 기술과 만나 폭발적인 성장이 예상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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