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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2월 17일 09시 55분 KST

대선주자들이 세종대왕에게 배우면 좋을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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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왕 중 누가 우리의 대통령이 되면 좋을까? 역사 상 수많은 왕들이 있지만, 늘 1위로 뽑히는 분은 ‘세종대왕’이다. 훈민정음 창제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업적이지만, 그 외에 애민정신이 바탕이 된 숱한 성과들이 있다. 우리도 세종대왕을 존경하고 사모하는 마음에 스승의 날도 세종대왕 탄신일에 맞추어 놓고 있다. 우리의 영원한 스승으로 여기는 셈이다. 세종대왕은 어떤 특징이 있었을까? 이런 지도자가 또 다시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을까? 지금 주목 받는 대선 주자들과 비교를 해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를 줄 수 있다. 우리는 세종대왕을 한 번 더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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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토론과 경청을 통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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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즉위 일성은 ‘상의해서 함께 하겠다’였다. 임금은 보위에 오른 다음 날인 즉위년(1418년) 8월 12일에 도승지 하연에게 말했다. “내가 사람 됨됨이를 잘 모르오. 좌의정, 우의정, 이조, 병조의 당상관과 함께 의논하여 벼슬을 내리겠소.” 하연은 만부당한 말씀이 아니라 ‘지당한 말씀’이라며 고개를 조아렸다. …. 젊은 왕이 노련한 중신을 끌어들이기 위한 제스처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한 일회성 발언이라면 오래가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종의 약속은 천성에 가깝다. 몸에 경청과 협의력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세종의 이 정신은 집권 내내 이어졌다.” (책 ‘세종의 공부’, 이상주 저)

세종대왕은 신하들과 토론하는 것을 즐겼다. 상당한 학습량과 정치력 아니면 쉽지 않은 일이다. 세종이 글에만 능한 인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어찌 보면 사람을 다룰 줄 알고, 조정도 잘 하는 정치인이었던 것이다. 세종대왕은 심지어 회의 자세까지 꼼꼼하게 살폈다. 불편한 자세에서 좋은 의견이 나올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회의가 첨예하게 대립할 때는 숨을 고르게 하기도 했고, 일정 기간 휴회도 했다. 토론하고 들을 줄 아는 지도자가 노력하기까지 하니 세종대에는 태평성대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게도 토론과 경청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2. 수학을 국가 경쟁력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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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수학을 국가 경쟁력으로 보았다. 연구원들에게 수준 높은 수학 공부를 요구했다. 25년(1443년) 11월에는 승정원에 수학 예습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다. …. 이 무렵에는 세종이 등극한 후 20여 년간 추진한 과학기구가 속속 완성되던 시기였다. 천문학과 농업기계, 농지측량 등에서는 기하학이 필요하다. 음악에서는 음계가 현이나 관의 길이와 비례하고, 한글 제정에서도 분석과 종합 등 수학적 기초지식이 적용된다. 세종 시기의 산업과 학문의 발달은 수학과 직간접으로 연관이 있다. …. 수학의 중요성을 인식한 세종은 수학 진흥책을 내놓았다. 첫째는 왕과 왕실의 모범이고, 둘째는 연구 장려이고, 셋째는 유학 지원이다.” (책 ‘세종의 공부’, 이상주 저)

세종대왕은 다재다능했다. 심지어 수학에 관심이 많았고, 수학을 깊이 공부했다. 수학에 탁월한 재능이 있던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과 함께 수학 공부를 하였다. 수학이 모든 학문의 기초를 이룬다는 사실을 세종은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특히 천문학과 관련이 있는 수학이었기 때문에 제왕학의 근본이었다. 그런 이유로도 세종대왕이 열심히 수학을 익혔을 것이다. 앞으로의우리 지도자도 수학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도 결국 밑바탕에는 수학이기 때문이다.

3. 역사 공부를 하여 정치에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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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었다. 이 중 특히 관심을 둔 것은 ‘제왕학’과 ‘좌전’, ‘초사’와 같은 역사서였다. 세종이 즉위년(1418년) 10월 7일 첫 경연에서 강론한 책이 제왕학인 ‘대학연의’였다. 임금은 제왕의 다스리는 순서를 담은 이 책을 강독하면서 역사에서 현실을 읽으려고 노력했다. …. 역사서에 심취한 임금은 공자가 쓴 역사책을 해석한 ‘춘추좌씨전’과 초나라 사람들의 글을 모은 ‘초사’를 100번 이상 읽었다. 그러나 유교의 나라를 세우려는 유학자들은 임금이 역사서를 중시하는 데 손을 내저었다. 그들은 유학서인 경서를 다 읽은 뒤 사서를 읽어야 한다는 시각이었다. 이에 비해 임금은 유학서는 이상적인 모델이고, 역사서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았다.” (책 ‘세종의 공부’, 이상주 저)

세종대왕은 왜 역사서가 중요한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유학과 관련된 경서를 열심히 읽으라는 고리타분한 유학자 신하들보다 임금이 훨씬 깨어있고 앞서 있었다. 집현전 학사들에게 여러 역사서를 나누어 줄 생각을 하는 세종대왕에게 신하들은 반대를 하였다. 현재의 답을 찾는데 역사책만한 것이 없다는 세종대왕의 판단을 다른 이들은 제대로 짚어내지조차 못했다. 이렇듯 역사는 지도자에게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교과서이자 현재를 비추어볼 수 있는 거울이다. 역사에서 배울 줄 아는 지도자가 우리에게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