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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2월 09일 07시 14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2월 10일 12시 47분 KST

인공지능 시대에 현재의 직업은 어떻게 바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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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알파고 쇼크’ 이후에 한동안 고등학교, 대학 또 도서관에서 인공지능(AI)을 소재로 강연할 기회가 많았다. '이 분야에서 워낙 명성이 높은' 김대식이나 자신의 소신과는 반대로 새로운 종교(과학기술)의 ‘전도사’ 역할을 자처하는 리처드 도킨스 같은 이들이 하도 낙관론을 설파하는 터라서, 필자는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면을 부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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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의사, 변호사는 물론이고 수억 원대 연봉을 받는 금융 컨설턴트 같은 일자리도 인공지능 로봇에게 빼앗길 수 있다는 둥, 장밋빛 전망과는 달리 인공지능이 창출하는 새로운 일자리 숫자는 많지도 않을뿐더러 아주 극소수에게만 기회가 올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둥…. 그렇게 강연을 하다가 불쑥 이런 질문을 던져 봤다.

“인공지능이 일상생활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가까운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패스트푸드 매장 아르바이트가 사라질까요?”

AI 시대, 패스트푸드 알바의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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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의 내용을 염두에 두고서 이 질문에 답해 보자. ‘기계비평’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이영준은 롯데리아 등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기계가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살핀다(‘조리, 혹은 조립되는 음식’). 햄버거가 말 그대로 ‘조립’되는 과정에서 인간은 기계와 기계 사이에 끼어 있는 존재일 뿐이다.

그렇게 기계와 기계 사이에 끼어 있는 인간이 행복할 리 없다.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등이 2015년 4월 15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패스트푸드 업계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80% 이상이 일하다 다친 경험이 있단다. 심하면 “눈에 기름이 튀고” 무거운 식자재를 나르다 “허리가 삐끗하고” 무거운 기계가 떨어져 “코가 찢어진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10대들이 올려놓은 깨알 같은 패스트푸드 매장 아르바이트 후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험한 일을 하고서 이들 10대가 받는 임금은 최저 임금(2017년 기준 6030원). 이들의 소박한 꿈은 얼른 나이를 먹어서 시급이 좀 더 높은 오후 10시 이후의 “나이트” 근무를 하는 것이고, 힘들어도 “살아남자”고 오늘도 자기 주문을 왼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대세가 되면 이런 패스트푸드 매장 아르바이트는 없어질까? 전망은 어둡다. 지금 당장이라도 패스트푸드 업계는 매장을 자동화할 수 있다. 지금까지 축적한 과학기술 지식만으로도 매장에서 햄버거를 조립하는 과정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기업이 굳이 패스트푸드 매장 자동화에 돈을 쓸 이유가 없다. 기계와 기계 사이에 끼어서 싼 값에 기꺼이 일할 10대 또 20대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이들은 돈이 덜 들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로봇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로봇은 한 번에 한 가지만 할 수 있는 반면에 이들은 손님도 접대하고(감정 노동), 힘도 쓴다(육체노동).

장담컨대, 인공지능 로봇보다 훨씬 더 효율적인 값싼 노동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자본은 절대로 자동화를 추진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자본이 (심지어 당장은 효율이 떨어지더라도) 자동화를 추진할 때의 상황은 딱 하나였다. 숙련 노동자의 몸값이 비싸고, 심지어 노동조합 등으로 조직되어서 함부로 부려먹지 못할 때뿐이었다.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일하는 10대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숙련’이나 ‘조직’과 거리가 멀다. 임태훈은 제러미 리프킨 같은 과학기술 낙관론자의 전망에 반대하며 이렇게 경고한다.

“리프킨은 미래의 주역이 될 세대에게 다가올 변화에 대비하고 희망을 품어보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바로 그 세대가 직면하는 최악의 노동 환경의 문제는 불가피한 과도기쯤으로 치부하고 있다. (…) 직업을 잃고 생존의 위기에 몰린 사람에게는 미래는커녕 내일도 불확실하다. 그들은 신자유주의의 비정한 일상을 버텨내기 위해 오늘 당장 무엇을 팔아야 하는가를 고민한다.” (책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 이영준, 임태훈, 홍성욱 저)

노동 없는 ‘4차 산업혁명’ 담론은 ‘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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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훈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단언한다. “노동 담론이 빠져 있는 ICT(정보통신 기술) 담론은 다 사기니까 속지 마시라”고. 마틴 포드의 ‘로봇의 부상’ 같은 책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4차 산업혁명의 본산지 미국에서는 정작 인공지능과 일자리의 문제가 진지하게 토론되는 걸 염두에 두면 이 책의 가치는 더욱더 빛난다.

“반면 최근 한국에서 알파고 쇼크 이후에 나온 대책이라는 것은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심지어 전문가들도 그렇습니다. 이 분야에서 워낙 유명하신 김대식 선생이 (…) 한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똘똘한 젊은 친구들 1000명 정도 뽑아서 한 6개월 정도만 (인공지능) 특공대 공부를 시키겠어요. 저 같으면. 그다음에는 곳곳으로 뿌리겠어요. 기업, 국가, 정부, 국정원, 군대…….” 그렇게 똑똑하신 분이 어떻게 그런 생각밖에 못 하시는지 안타깝습니다. 그러면 그 1000명이 한국 연구 환경이 안 좋으니 구글이나 애플 가겠다고 외국으로 떠나버리면 어떻게 할 겁니까? 지금의 한국은 뛰어난 두뇌가 머물 만한 나라가 아닙니다. 부조리와 적폐가 층층이 쌓인 이 나라는 멀쩡한 두뇌도 망쳐놓는 곳이니까요.” (책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 이영준, 임태훈, 홍성욱 저)

이렇게 책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는 ‘4차 산업혁명’ 같은 담론을 뒷받침하는 허황된 과학기술 낙관론과 명확하게 선을 긋는다. 자기가 발 딛고 선 한국 사회에 대한 성찰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설익은 단견만 내놓는 지식인이 각광 받는 세태에 대한 도전장이랄까? (사실 앞선 예와 같은 아이디어는 북쪽의 김정은이 이미 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 책은 “차세대 먹을거리” 수준에 머물러 있는 한국의 과학기술 담론에서 주변부로 밀려나 있던 ‘적정 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을 우리가 지향해야 할 대안 가운데 하나로 제시한다. 특히 이 대목에서 한국의 적정기술 담론을 이끄는 이론가이자 실천가인 공학자 홍성욱의 활약이 눈에 띈다.

대다수 시민에게 적정 기술은 생소할 뿐만 아니라, 에른스트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 등을 통해서 그 용어를 접한 사람조차도 한국과는 관계가 없는 아프리카나 남아시아의 가난한 사람을 위한 ‘시혜적’ 과학기술 정도로 취급된다. 2000년대 후반부터 한국의 적정 기술을 둘러싼 이론과 실천을 이끌고 있는 홍성욱은 이 책에서 이런 통념에 도전한다.

홍성욱은 내가 속한 공동체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과학기술이야말로 적정 기술이라고 강조한다. 즉, 패스트푸드를 만드는 10대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튀김 기름에 다치지 않도록 하는 기술이나 독거노인이 한여름 더위나 한겨울 추위에도 싼값에 냉난방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술이야말로 바로 지금 여기서 만들어야 할 과학기술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홍성욱이 강조하듯이, 이런 과학기술이야말로 진짜 ‘혁신(innovation)’이다. 또 적정 기술이 보여주는 혁신(‘주가드 이노베이션’)이야말로 성장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저성장 시대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대비하는 슬기로운 접근이다. 알파고가 뜬다고 인공지능에 돈을 풀고, 포켓몬고가 유행이라고 증강 현실에 관심이 쏠리는 접근으로는 현상 유지조차 불가능하다.

과학기술 비평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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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만으로도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는 좋은 책이다. 그런데 나는 한 가지 점에서 이 책에 점수를 더 주고 싶다. 이 책이 과학자나 엔지니어, 혹은 그들의 입만 쳐다보며 따라 쓰기 바쁜 자칭 과학기술 ‘전문’ 기자가 주도하는 한국의 과학기술 담론에 새로운 균열을 내려는 시도로 보이기 때문이다.

먼저 이 책의 저자에 주목하자. 한국 사회에서 과학기술에 한두 마디라도 할 수 있으려면 이공계 ‘박사’ 학위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석사도 안 된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가운데 두 사람(이영준, 임태훈)은 과학기술 전공자도 아닐뿐더러 애초 미술과 문학에서 전문성을 쌓았던 이들이다.

굳이 문학, 영화, 미술, 사진을 전공하지 않아도 해당 작품에 대해서 한두 마디 하거나 심지어 글을 쓰고 책을 써도 참신한 시각으로 간주 받는 시대다. 더구나 종합 편성 채널에는 시사, 정치, 문화 등 모든 것을 평론하는 이들이 넘친다. 이런 상황에서 왜 과학기술 비평만 전공자 혹은 그들 꽁무니나 좇는 자칭 ‘전문’ 기자가 독점해야 하는가?

책 ‘시민을 위한 테크놀로지 가이드’는 이런 상황에서 ‘과학 비평’ 혹은 ‘기술 비평’의 한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 이 책을 읽고서 저마다 주변의 온갖 과학기술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면서 투덜거려 보자. 예를 들어, 지난 학기에 이 책과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과학기술 비평 연습을 같이 해보았던 대학생 친구 몇몇은 학기말에 이런 질문을 던졌다. (모두 여성이었다.)

“생리통은 심장 마비에 버금갈 정도로 고통스럽다. 그런데 이런 생리통에 효과가 있는 약을 과학자는 왜 개발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