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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2월 05일 12시 34분 KST

일을 못하는 게 결코 당신 탓만은 아닌 이유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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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마다 '고문관'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꼭 '고문관'이란 이름으로 불리지 않더라도, 소위 일을 '배워나간다'는 명목 하에 온갖 멸시를 당하며 혹 내가 '고문관'이 아닐까 불안에 떠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고문관'이라 불리는 사람보다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나름대로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좀체 성과는 나지 않는 것만 같은 그런 사람들. 그 중 당신이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껏 그런 마음에 움츠러든 일상을 보냈다면, 이제 좀 더 어깨를 펴자. 일을 못하는 건 결코 당신 탓만은 아니다. 여기 그렇게 말하는 저자들이 든 이유들을 정리해보았다. 당신이 좀 더 남 탓을 해도 좋은 이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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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신이 아니라 조직이 일을 못하는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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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에서 직접 실무를 맡은 사람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실무를 맡은 사람에게 요구하는 건 상급자를 대하는 '아랫사람'의 센스, 그리고 '지금껏 그 조직에서 해왔던' 문제 처리 방식을 빨리 파악하는 것이다. 보통 이 두 가지를 빨리 익히지 못할 때 '일을 못한다'는 딱지가 붙는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많은 경우 '지금껏 해온' 문제처리방식을 익히는 것과 '문제해결능력' 자체는 별개일 수 있다. 조직의 방식이 무조건 옳다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이 때 훌륭한 조직이라면 실무를 맡은 사람의 일 처리 방식이 조직과 다를 때 이유를 파악하고, 실무자의 의견을 경청해 새로운 합의를 이끌어낸다. 무조건 조직의 방식을 '따라오지 못한다'고 배척하는 대신 말이다. 만약 당신이 '일을 못한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닌 당신의 방식을 ‘아랫사람’의 센스가 없다며 배척하는 조직의 잘못일 수 있다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무조건 움츠러들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내가 책임질 일도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을 때...알 수 있는 것이 있다...그저 혼이 날 뿐 모든 책임은 윗선에 돌아간다는 것이다...노동자는 그저 쫓겨날 뿐 무언가를 바꾸려는 시도를 할 수는 없다...'자아실현'이라는 건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화하려고 하는 윤리적 목표다. 그런데 스스로 가지는 감정도...행동에도 책임지지 않고, 그 결과 심지어 자기주장도 잃어버리게 되는데, 일단 자아가 있어야 실현을 할 것이 아닌가. 일을 하다보면 자아실현은커녕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자신의 자아라는 게 실재하는 것인지도 의심스러운 마당이다. 그 와중에도 카드회사는 착실히 카드빚을 빼내간다." (책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김종수 외 저)

2. 원칙과 효율의 비중에 따라 일을 못하는 기준은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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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28일 일어난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건을 생각해보자. 사고의 원인 중 하나는 스크린 도어 고장을 2인 1조로 수리해야 하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아 김 군 혼자 수리를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생각해보자. 만약 사고가 일어나지 않고 무사히 넘어갔다면,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고 혼자서 수리를 해낸 사람을 유능하다고 생각했을까, 2인 1조의 '원칙'을 지키겠다며 수리 요구에 응하지 않은 사람을 유능하다고 생각했을까? 슬프게도 우린 그 답을 알고 있다. 문제는 이런 사례가 우리 조직 곳곳에 너무 많다는 점이다. 우린 '원칙'을 지키는 사람을 '센스' 없고 '융통성'이 부족한 무능한 사람으로 여기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원칙'을 지켰을 때의 피해도, '융통성' 때문에 터진 사고도 모두 '실무자의 책임'으로 돌리는 데 익숙해져 있기도 하다. 결국 유능과 무능은 조직이 찍는 방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저자들의 말대로라면 정말 유능한 인재는 조금이라도 그런 문화를 바꾸는 이들이다.

"2014년 9월 25일, 안타까운 뉴스를 접했다. 한 80대 여성이 지하철 이수역에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그녀는 지하철과 스크린도어 사이에 낀 채로 몇 미터를 끌려가다 부상을 입고 곧 숨을 거두었다. 왜 열차는 멈추지 않았을까?...대중교통의 연착은 많은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만일 사소한(?) 사항들을 챙기는 과정에서 열차가 늦어진다면...기관사도 그에 따른 (아마도 경제적인) 책임을 지도록 요구받았을 것이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안전'에 대한 요구보다 '효율'에 대한 요구가 기관사에게 더 현실적인 권력으로 작용한 것이다...아무 사고도 일어나지 않는 상황이었다면...오히려 그러한 대응의 결과로 칭찬받지 않았을까?...'유도리'는 우리 직장생활에서 필수적인 덕목이 아니던가. 그런데 '유도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신체나 정신적 조건 때문에 맨 뒤에 오는 사람들은 큰 관심거리가 아니다. 솔직히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지하철 승강장에 나타나지 않기를 원한다.” (책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김종수 외 저)

3. 당신은 다른 삶을 상상해본 적이 없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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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니라 당신을 둘러싼 노동조건이 문제일 수 있다. 여전히 우리는 출산 휴가, 생리 공결, 육아 휴직을 전부 쓰는 사람을 '개념 없다'고 말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 3명 분의 일을 2명, 혹은 1명이 맡아서 하는 구조 때문에 맡은 일을 감당하지 못할 때 다른 직원들에게 심한 부담을 안겨주는 '쓸모 없는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이 과연 '휴가'를 가고 '3명 분의 일을 못하는' 개인의 잘못인 걸까? 어쩌면 우리는 그냥 다른 노동 환경을 상상해본 적이 없을 뿐이라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3명 분의 일을 1명이 해내는 건 뛰어난 거지 결코 평균치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사람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그렇지 못한 나머지를 '일을 못한다'고 말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여기엔 자영업, 제조업, 사무직 모두 힘들어 각자의 자리에 맞지 않는 누군가가 '다른 직업'을 상상하기 힘들어진 현실까지 더해져 있다. 그러나 잊지 말자. 당신이 일을 못한다는 사실이 당신이 마땅히 받아야 하는 존중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말이다. 오늘도 여전히 일을 나가야 하고, 적응해야 하지만, 너무 힘들고 서러워도 자존감까지 다치진 말자. 반복해서 말하지만, 당신 탓만은 아니니까.

"일을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한 시대의 일 잘하는 사람이 다음 시대의 부적응자가 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일 못함'은 왜 유독 문제가 되는가? 우리 시대, 우리 세대의 '일'이 천편일률적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이상 '산업 역군'이 될 수 없다. 자영업을 시작하자니 위험부담이 크다. 가장 넓은 문은 사무직이 되는 것인데, 사무 노동자는 갖가지 편법으로 인해 파리 목숨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러한 세태가 '자괴감'을 우리 시대 사회 초년생들의 일반적 정서로 만든 것이다...부모님들은 자식들의 별볼일 없는 생활이 불만이고 상사들은 신입사원의 패기 없음이 불만이겠지만 어쩌겠는가. 돌파구가 없는데." (책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김종수 외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