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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1월 26일 13시 34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1월 26일 13시 40분 KST

연암 박지원이 우울증을 고친 방법은 지금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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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로 유명하다. 청나라를 다녀온 후 쓴 기행문이다. 우리는 역사 시간에 청나라를 배우자는 ‘북학파’라는 이름으로 그를 배웠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배우려고 했던 인물이다. 그 대상이 비단 청나라에 국한되진 않았다. 본인이 양반이었음에도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을 만나 교감하는 것을 즐겼다. 박지원은 17~18세에 우울증을 앓는다. 그런데 약을 먹고 침을 맞아 고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고쳤다. 그는 어떻게 우울증을 고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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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머와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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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대로 민옹은 탁월한 이야기꾼이었다. 그의 말과 행동은 상식적인 척도로는 도저히 잴 수 없는 기상천외한 것이었다. “그대는 무슨 병인가? 머리가 아픈가?” “아닙니다.” “배가 아픈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병이 든 게 아니구먼.” 그러고는 드디어 문을 열고 들창을 걷어 올리니, 바람이 솔솔 들어와 마음속이 차츰차츰 후련해지면서 예전과 아주 달라졌다. …. 연암은 민옹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저는 단지 밥을 잘 먹지 못하고 밤에 잠을 잘 못 자는 것이 병입니다.” 그러자, 민옹은 벌떡 일어나서 연암에게 경하한다는 예를 행한다. …. 민옹의 진단은 이렇다. “그대는 집이 가난한데 다행히도 밥 먹기를 싫어하니 재산이 남아돌게고, 잠을 못 잔다면 밤까지 겸해 사는 것이니 다행히도 곱절을 사는 셈이야. 재산이 남아돌고 남보다 곱절을 살면 오복 중에 수(壽)와 부(富) 두 가지를 갖춘 거지.” (책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고미숙 저)

우울증을 앓던 박지원이 만난 거리의 철학자는 민옹이다. 즉 민씨 노인이다. 그런데 병을 듣더니 몸이 아픈 게 아니니 병이 아니라고 답을 해 준다. 또한 밥을 못 먹고 잠을 못 자겠다고 하니 축하한다. 그로 인해 재산이 쌓이고 인생을 2배로 살 수 있어서가 이유다. 대단한 유머와 역설이다. 이로 인해 연암은 마음의 부담이 상당히 덜어졌을 것이라 보인다.

2. 밥과 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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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밥상을 들여왔다. 나(연암 박지원)는 신음소리를 내며 인상을 찌푸리고 음식을 들지 못한 채 이것저것 집어서 냄새만 맡고 있었다. 그러자 옹(민옹)이 갑자기 크게 화를 내며 일어나 가려고 하였다. 손님을 앞에 두고 혼자만 먹으려 드니 예의가 아니라는 것. 연암이 다시 음식을 차려오게 하자, 민옹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팔뚝을 걷어 올린 다음 수저를 시원스레 놀려 먹어 대었다.” 그러자 연암도 “입에서 군침이 돌고 막혔던 가슴과 코가 트이면서, 마침내 예전과 같이 밥을 먹게 되었다.” 또 밤이 되자 민옹은 느닷없이 ‘암송내기’를 하자고 한다. 옹은 순식간에 다 외웠다고 하고는 연암에게 빨리 외라고 채근해 댄다. “옹이 자꾸 말을 걸어 몹시 피곤하게 만들어, 나는 더욱 외울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졸리더니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책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고미숙 저)

민옹은 밥을 못 먹던 연암이 수저를 들게 하였고, 잠을 이루지 못하던 연암이 피곤해서 바로 잠들게 하였다. 외우기 시합을 하자고 채근하던 민옹. 이미 자신은 다 외웠으니 빨리 암기하라고 하며 박지원을 피곤하게 만들어 잠들게 하였다. 다음 날 연암이 민씨 노인에게 물어보자, 그 대답이 “나는 처음부터 아예 외우지를 않았다네.”였다. 고단수 중의 고단수다. 약이나 침을 사용하지 않고 연암과 함께 먹고 같이 자면서 그의 병을 낫게 해 주었다.

3. 우울증은 삶을 바꿀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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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이 왜 그 시절 그런 기이한 질병을 앓았는지 그 원인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질병을 앓고 난 이후, 그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확실히 알 수 있다. 주류적 질서로부터 벗어나 저잣거리에서 살아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연암은 평생 과거를 보지 않았다. 부귀공명의 코스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을 테지만, 청년기의 문턱에서 앓았던 이 질병이 결정적인 마디가 되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요컨대, 연암에게 있어 우울증은 인생의 큰 변곡점이었던 셈이다.” (책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고미숙 저)

연암 박지원은 남들과 다른 삶은 산다. 똑똑한 머리에 좋은 집안, 여러 재능을 타고났으면 당연히 과거 시험을 보려고 했을 텐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평생 비주류의 삶을 산다. 자신의 삶을 정해진 길이 아닌 무한한 영역으로 확장시킨다. 죽음 역시 비범했다. 저자는 연암의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이렇게 남겼다. “69세 때 풍비가 와서 꼼짝할 수 없게 되자 연암은 약을 물리친 다음, 친구들을 불러들여 술상을 차리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도록 했다. 친구들의 이야기와 웃음소리를 들으며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다.” 죽는 모습까지 남들과 달랐다. 연암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