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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1월 20일 10시 02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1월 20일 10시 10분 KST

나는 '여성으로'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에 지쳤다

An anti-abortion protester with tape over her mouth demonstrates outside the U.S. Supreme Court before the court handed a victory to abortion rights advocates, striking down a Texas law imposing strict regulations on abortion doctors and facilities in Washington June 27, 2016. REUTERS/Kevin Lamarque
Kevin Lamarque / Reuters
An anti-abortion protester with tape over her mouth demonstrates outside the U.S. Supreme Court before the court handed a victory to abortion rights advocates, striking down a Texas law imposing strict regulations on abortion doctors and facilities in Washington June 27, 2016. REUTERS/Kevin Lamarque

*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 블로거 Tasha Withrow이 쓴 것이다.

6개월쯤 전에 나는 산부인과 의사와 '영구적인 피임'에 대해 의논했다. 나는 19세 때부터 다양한 호르몬 피임약을 사용해 왔다. 여드름, 체중 증가, 우울증 악화, 두통, 생리 기간의 감정 상태 악화 등 여러 부작용을 그때부터 경험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더 이상 이걸 겪고 싶지 않은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자궁 내 피임기구'나 '누바링'(NuvaRing) 같은, 내 몸 안에 장치를 넣어야 하는 피임 방법을 좋아한 적은 없었다. 일단 무언가가 내 몸 속에 오랫동안 들어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싫었다. 그리고 그런 장치가 여성의 생리 주기에 미치는 영향이 불편했다. 여러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눠 봤는데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다고 들었다. 나쁜 말을 하려는 건 아니지만, 내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내가 내 몸에 쓰고 싶은 대안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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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내가 원하는 것이 '난관 결찰술', 즉 '불임 수술'이라고 결정했다. 내가 '100% 원하는 것'이었다. 나는 자라며 결코 아이를 원한 적이 없었다. 나는 아이를 좋아하고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도 좋아하지만, '내 아이'를 원한 적은 없었다. 나는 '어머니'라는 역할을 맡고 싶지 않았다. 나는 놀랍게도 한 번도 임신하지 않고 30살이 되었고, 30살이 되고 나서도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었고 그 목표를 이루려면 여러 해가 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낙태를 강력히 지지하지만, 반드시 필요할 때가 아니면 낙태를 하고 싶지는 않다. 가능한 한 막고 싶다. 그래서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라는 걸 깨달았다.

4년 동안 같은 산부인과를 다녔기 때문에 의사와 가까워졌던 것이 '난관 결찰술' 이야기를 꺼낼 때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는 내게 '다른 피임 방법을 고려해 봤는지' 물었다. 나는 내 생각을 말했다. 그러자 그는 6개월 동안 생각해 본 다음에도 수술을 원하면 일정을 잡자고 했다. 나는 좌절과 흥분을 동시에 느꼈다. 여성으로서 우리 삶의 여러 결정, 특히 '생식권'에 대해 끊임없이 부탁을 하고 허락을 기다려야 한다는 데 좌절을 느꼈다. 이런 시술이나 낙태를 하는 것보다 총을 사는 게 더 쉽다. 내가 내 몸에 대한 행동을 취하는데 대해 깊은 자기 성찰을 해야 하는 것만 같다. 그러나 영구적인 난관 결찰술 같은 시술을 할 때 의사들이 처한 위치를 나는 이해한다. 의사들은 여성이 100% 진심으로 이런 시술을 원한다는 걸 확인하고 싶은 것뿐이다. 그래서 나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내 배우자, 가족,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했고 놀라울 정도였다(내 배우자에겐 예전 관계에서 낳은 두 아이가 있고, 그 아이들은 나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 주었다. 나는 그 두 아이를 무척 사랑하고, 그들과 나의 관계에 대해 지극히 감사한다.). 그들은 뻔한 말들(“아이를 낳기 싫다고? 왜?”, “아이가 생기고 나면 마음이 바뀔 거야.”, “아이가 생기기 전까진 진정한 사랑이 뭔지 알 수 없어.”)을 하는 사람들이지만, 모두 굉장히 나를 응원하고 도와주었다. 나는 놀라며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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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6개월 정도 지난 뒤 나는 열린 마음으로 내 결정을 받아들이는 의사를 만났다. 1월 6일에 나는 자발적 불임 시술인 난관 결찰술을 받았다. 나는 건강 보험이 있었지만, 오바마케어 덕택에 100% 보험 적용이 되었다(고마워요 오바마).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공화당원들은 한밤중에 오바마케어를 없애자는 수정안에 투표했다. 그러면 피임이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게 된다. 또한 가족 계획협회(Planned Parenthood)에 대한 자금 지원이 중단된다(공화당은 여러 해 동안 이걸 시도해 왔다). 나는 우주가 정말 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갑자기 결정을 제 때 내려서 시술을 빨리 받았다는 게 무척 감사하게 느껴졌다. 보험은 있지만, 보험료는 올라가고 혜택은 줄어든다. 그래서 내가 피임을 계속하기로 했다면 내가 비용을 부담해야 했을 것이다. 어떤 종류의 피임이냐에 따라 비쌌을 수도 있다. 자궁 내 피임기구를 쓰기로 했다면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았을 것이며 몇 천 달러를 내가 냈어야 했을 것이다. 내 소득 때문에 나는 병원에 갈 수도 없었을 것이다. 보건소에서 무료 가족 계획을 받기엔 내 소득이 아주 조금 많다. 즉, 나는 아주 재수없는 처지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알기로, 내가 사는 웨스트 버지니아 주에는 가족 계획 시설이 단 하나다. 웹사이트에 의하면 비엔나에 있는데, 내가 사는 곳에서는 몇 시간 거리다. 공화당이 가족 계획 자금 중단에 성공한다면 그곳 역시 멀지 않아 닫을 수도 있다. 웨스트 버지니아의 보건소에서 가족 계획 서비스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복지와 마찬가지로 '소득'에 따라 제공된다. 소득이 적으면 자궁경부암 검사, 성병 검사, 암 검사 등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조금이라도 더 돈을 많이 벌면 자비를 내거나 보험을 써야 한다(물론 보험이 있을 때의 얘기다). 게다가 강간, 근친상간, 산모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가 아니면 연방 지원금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성이 낙태를 하기로 한다면, 보험이 없거나 보험이 낙태에 적용되지 않으면 자기 돈을 써야 한다.

여성이 자신의 생식권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을 이토록 제한하기 위해 공화당원들이 투표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우리가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던 싸움을 또 해야 한다. 그들은 낙태를 불법화하길 원하지만, 여성들에게 원치 않는 임신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주려 하지 않는다. 오바마케어를 축소하려 하고, 다른 보험 회사들은 혜택을 줄이고 보험료는 올리고 있다. 그래서 여성들, 특히 소득이 적은 여성들은 생식 관련이 아니라 전반적인 기본 의료 서비스를 받기도 힘들어 지고 있다. 점점 더 좌절이 커지고, 다음 정권이 들어서면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적으로 100만 이상이 참가하는 '여성행진'이 21일 열린다. 서울에서는 21일 오후 2시부터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진행된다.

그렇지만 나는 이번 토요일(21일)에 워싱턴에서 행진할 것이다. 그 이유는…

내 몸에 대한 완전한 자치권을 갖기 위해 싸우는데 지쳤다.

내가 내 자신과 내 몸에 대해 옳다고 느끼는 것을 하기 위해 남성, 국회의원, 종교적 우파에게 허락을 받는 것에 지쳤다.

소득이 낮은 여성, 유색인종 여성이 기본적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책임이 그들의 탓으로 되는 것에 지쳤다.

매번 내 결정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것에 지쳤다.

여성들은 생식 목적으로만 존재하고, 아이가 없으면 우리는 이기적이고 여성으로서 실패한 것이라는 생각에 지쳤다.

대상으로 보여지는 것, 소유할 수 있는 것, 허락 없이 만져도 되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에 지쳤다.

무엇보다 나는 수 세대 전에 나의 조상들이 했던 싸움을 그대로 해야 하는 것에 지쳤다.

나는 사람들이 “왜?”냐고 물을 때 설명해야 하는 것에 지쳤기 때문에 행진한다.

그러니 여성들이여, 그리고 남성들이여, 함께 연대하여 목소리를 내자. 우리의 존재를 보고 느끼게 하자. 토요일에 만나자!

두 번째 검은 시위 화보

* 허핑턴포스트US의 Why I’m Marching On Washington On January 21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