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2017년 01월 11일 12시 50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1월 11일 12시 51분 KST

베네수엘라 경제가 붕괴하며 뮤지션들이 해외로 옮기고 있다

los mesoneros

성탄절이 또 한 번 지났고, 내가 베네수엘라의 집에서 보내지 못한 또 한 해가 지났다. 내가 가족과 함께 베네수엘라를 떠난 것은 거의 10년 전이고, 그 뒤로 자주 돌아가지 못했다. 당시 성탄절은 가족들의 시간과 동의어였다.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면 친척들 대부분을 초대해 맛있는 베네수엘라 음식을 먹으며 1년 중 최고의 시간을 축하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경제와 정치가 혼란에 빠지면서, 이런 전통들은 모두 버려졌다.

내가 떠난 이래 베네수엘라는 알아보기 힘들 만큼 달라졌다. 최근 성탄절 인사를 드리느라 할머니와 통화했다. 할머니는 내 직계 가족 중 베네수엘라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다. 할머니는 몸이 편찮으시고 약을 구할 수가 없지만, 내 부모님이 미국에서 필요한 약을 보내드린다. 베네수엘라에서 우리 할머니는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venezuela economy

할머니는 사람들이 블록을 휘감을 정도로 줄을 선다고 말했다. 모두 빵, 설탕, 휴지 같은 기본적인 생필품들을 구하려 하고 있다. 줄을 선 사람들이 마침내 가게 안에 들어갔을 때는 남은 게 별로 없을 것이고, 어쩔 수 없이 암시장에서 생필품을 사야할 가능성이 높다. 음악과 잔치 음식이 있던 시절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먹고 노래하고 춤추고, 별 걱정없이 약과 기본적 식품을 구할 수 있었던 때는 좋은 시절이었다.

하지만 세계 최악의 인플레이션, 최고 수준의 폭력 범죄율, 굶주림에 시달리는 베네수엘라에 별로 낙관적인 일은 없어 보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는데 말이다. 내 할머니는 베네수엘라에 남아있지만, 최근 거의 20년 동안 150만 명이 넘는 베네수엘라 인이 더 나은 삶을 찾아 조국을 떠났다. 내 자신도 그랬고, 심지어 경제 붕괴 전에 우리가 우러러보던 뮤지션들 중에도 외국으로 나간 사람들이 있다.

2002년에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에 매장된 석유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강화하려 했을 때,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 기업 페트롤레오스 데 베네수엘라 S.A.(PDVSA)의 석유 전문가 수천 명이 항의 시위에 가담했다. 우리 가족의 이주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내 아버지는 파업에 참여했다가 결국 해고된 PDVSA 직원 40% 중 한 명이었다. 아버지는 베네수엘라에 진출한 일본 기업에서 잠시 일했지만, 정부 측에서는 곧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채용할 수 없다고 기업에 알렸다. 그래서 우리는 카타르로 갔다.

그 이후로 나는 예전 같은 반 친구가 강도를 당하다 총에 맞았다는 이야기, 내 할머니와 고모의 집에 강도가 들어와 총을 겨누고 털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학을 다니는 친구들은 무장 강도가 교실 안에 들어가 휴대 전화와 계산기를 내놓으라고 했다는 말을 했다. 모두 흔히 벌어지는 일이고, 내가 알지 못하는 곳이 된, 달라진 베네수엘라를 보여주는 일들이다.

베네수엘라의 불안정성이 어찌나 심해졌는지, 정치적 반체제를 대표하던 인기 뮤지션들까지도 나라를 떠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상징적이지만 간과해선 안 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베네수엘라 록 밴드 로스 메소네로스는 최근 멕시코로 이주했고, 다른 인기 밴드들도 그들의 뒤를 따랐다.

la vida boheme

라 비다 보에메, 오킬스, 맥클로피디아, 비닐로베르수스를 비롯한 여러 밴드들이 베네수엘라를 떠나야만 했다. 이 뮤지션들은 이제 내 고향과 나 사이의 연결을 규정한다. 지난 20년 동안 뮤지션들 뿐 아니라 엔지니어, 과학자, 학생 등도 베네수엘라를 떠났다.

내가 베네수엘라를 떠난지 3년 뒤부터 나와 베네수엘라가 겪고 있는 일에 대해 말하는 노래들이 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점점 더 멀게 느껴지는 베네수엘라와의 연결을 다시 느끼게 해준 것이 음악이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음악이 반체제의 목소리를 내는 수단으로 간주되었고,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나는 우리 가족이 베네수엘라를 떠나야 했을 때부터야 그걸 진정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베네수엘라 음악에 푹 빠져들었고, 당시 신인이던 라 비다 보에메, 로스 메소네로스 등을 듣기 시작했다. 나뿐 아니라 해외의 다른 베네수엘라 사람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고 들었다.

외국에 나온지 몇 년이 지나서 로스 메소네로스를 들으면 나는 베네수엘라 출신인데도 이 노래에 공감해서는 안되는 아웃사이더가 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인 ‘솔 로호[붉은 태양]’의 가사는 “그리고 우리는 과거의 꿈이 불타는 것을 보았다 … 나는 도망가고 싶지 않다, 탈출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 나는 남아서 모든 걸 바꾸겠다. 모든 게 타오른다.”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집권하고 우리 가족이 베네수엘라에 계속 남을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할 때, 나는 ‘솔 로호’의 가사에 담긴 정서를 경험했다. 당시 나는 로스 메소네로스를 듣지 않았고, 몇 년 뒤에 ‘솔 로호’를 듣고서야 내가 품었던 감정이 말로 표현된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베네수엘라에서의 미래를 상상했지만, 가족과 함께 외국으로 쫓겨나듯 나와야 했다. 음악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로스 메소네로스조차 작년에 외국을 선택해야 했다. 저 노래 가사처럼 우리는 베네수엘라에서 탈출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베네수엘라에 남아 변화를 위해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나보다 똑똑하고 표현을 더 잘하는 사람들이 쇠락해 가는 베네수엘라의 모습을 계속해서 기록했고, 그들 모두 ‘솔 로호’에서 느껴지는 절망감을 표현했다.

nicolas maduro

“한때 라틴 아메리카의 모범이었던 베네수엘라는 이제 추락하고 있는 국가다.” 지난 8월에 타임의 보도다.

워싱턴 포스트의 사설에서는 니콜라스 마두로스 대통령이 2016년에 국민 소환 투표를 막으려고 헌법을 우회하자 베네수엘라를 주저없이 ‘완전한 독재국’이라고 불렀다.

“미국에서 비행기로 3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비교적 크고 발달된 주요 산유국이 서반구에서 두 번째로 전면적인, 선거가 없는 독재국가가 되었다.”

경제 붕괴는 국가가 주도한 가격 통제와 환율 정책 때문에 일어났고, 권력에 굶주린 독재 정부가 사기업들을 몰수해서 더욱 심해졌다.

재능 유출

그리고 경제 침체로 인한 불안정 때문에 해외로 떠나는 뮤지션들이 생겼다. 로스 메소네로스 같은 뮤지션들은 선택을 해야 한다. 여기 남고 음악을 그만둘까, 아니면 떠나서 다시 시작하고 이 기간을 견뎌낼까? 나한테 여기서 음악 활동을 계속할 돈이 있긴 있나?

이 모든 질문들은 2012년 라틴 그래미에 여러 번 후보로 오르고, 전국 투어를 매진시킨 밴드가 고민할 거리는 아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먹을 것을 구하기도 힘들어하는 지금, 로스 메소네로스도 베네수엘라의 변화에 예외일 수는 없다. 그들은 음악을 통해 이 변화가 잠재력의 상실이라고 설명한다.

정말 많은 베네수엘라 인들에게 적용되는 이야기다. 나는 베네수엘라를 떠나 더 안전한 나라로 가서 접시닦이를 하는 변호사들을 만나 보았다. 다년간의 경험을 가진 의사들이 세일즈맨 일을 시작하고 있다. 엄청난 재능이 있는 학생들이 영어 실력 때문에 성공을 못하고 있다.

우리가 기억하는 베네수엘라의 모습은 대부분 사라지고 없다. 크리스마스 저녁 식사 대신 길게 줄을 늘어서서 무가치한 화폐로 살 수 있는 음식이라면 무엇이든 사서 먹는다. 대규모 가족 모임은 이제 스카이프에서 열린다. 모두가 동시에 같은 나라에 모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불꽃놀이 대신 똑같이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총격전이 열린다.

이러한 잠재력 상실의 두려움은 로스 메소네로스가 멕시코에서 발표한 최신 싱글 ‘카이가 라 노체[해질녘]’에 강렬하게 담겨 있다.

“나는 정원이 될 수 있었던 이 정글 출신이다. 눈을 크게 뜨고 있다. 경계하고 있다. 망을 본다. 제대로 된 마음은 주류에 맞선다. 나는 너에게 왔다. 외출의 공포가 우리를 사로잡는다 … 하지만 밤이 되고 당신이 밤새 격리될 때 나는 당신 옆에 있을 것이다.”

최근 멕시코 공연 전에 로스 메소네로스와 통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베네수엘라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었다. 그들은 외국으로 옮기면서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드러머 안드레스 수크레는 인터뷰 당시 마드리드에 있었지만, 내년 투어에는 참여할 거라고 밴드 측은 내게 장담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베네수엘라 인들이 그렇듯, 그들은 농담과 지금의 나라 상태에 대한 진지한 말 사이를 부드럽게 오갔다.

“언젠가 멕시코에 가서 국제 시장에 진출하자는 계획은 원래 있었지만, 나라가 점점 엉망이 되어서 우리가 하고 싶던 일을 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환율 평가 절하와 나라 전체의 경제적 상황 때문에 우리가 예전에 했던 것처럼 생계를 꾸리는 게 불가능해졌다.” 리드 싱어이자 기타리스트인 루이스 히메네스의 말이다.

산업 붕괴

los mesoneros

히메네스의 말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공연 수입이 대단치 않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음악 업계 전체가 붕괴해서, 베네수엘라에서 뮤지션으로 산다는 게 불가능에 가까워졌다는 이야기다.

“투어 자체가 사라진 거나 다름없었고, 페스티벌도 별로 없어졌고, 카라카스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도 힘들어졌다. 인플레이션 때문에 비행기 표값과 호텔 투숙비가 계속 올라가, 매번 프로듀서와 이벤트 기획자들이 점점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다른 국가에서라면 업계 상황이 이렇게 나빠질 경우 국내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밴드는 인기와 조건 악화에 걸맞게 가격을 올릴 것이다. 하지만 몇 주 만에 화폐 가치가 큰 폭으로 평가 절하될 수 있는 나라에서, 내 할머니처럼 먹을 것조차 구하기 힘든 사람들이 많은 나라에서 그건 너무 위험했다.

“예를 들어, 우리 밴드는 2011년에 티켓 1장을 20달러에 파는 게 가능했다 … 지금 20달러면 한 달치 최저 임금이다.”

복잡한 환율 정책 때문에 로스 메소네로스는 스트리밍 서비스,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수익을 올리기도 힘들어서, 기타리스트 후안 이그나시오 수크레는 “밴드들이 의존하는 또 하나의 허파”마저 없었다고 말한다.

우리의 대화는 곧 베네수엘라를 떠난 것에 대한 어려움으로 넘어갔고, 사무적이던 목소리에는 향수가 깃들었다.

“우리 경우는 수백만 명의 베네수엘라 인들이 겪는 것과 비슷하다. 가족과 여자 친구들을 두고 새로운 나라로 오면 분명 좀 외롭다.” 수크레의 말이다.

키보디스트 카를로스 사르디가 끼어들어 “새로운 나라에서 산다는 게 힘들긴 해도, 나는 친구 4명과 같이 왔기 때문에 외롭지 않다.”고 말했다.

수크레는 장난스럽게 다시 끼어들어 “나는 외로워, 나는 외롭다고!”라고 말했다.

내가 해외에서 만난 베네수엘라 인들 대부분이 그랬듯, 이들은 고국에서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시지프스와도 같은 일에 대해 희망적이었다. 현재 멕시코 전역에서 매주 공연을 하며 열심히 활동 중이라고 한다.

“참을성과 겸손함을 가지고 새로운 곳에서 다시 음악을 만들기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여러 해 동안 쌓아올린 경험과 팬 층을 사용할 수 있다. 우리가 베네수엘라에서 거뒀던 성공을 하룻밤 안에 재현할 수는 없다는 걸 이해하는 게 가장 힘들 것이다.” 히메네스의 말이다.

그들은 베네수엘라 전사만이 가질 수 있는 낙관주의를 가지고 예술은 위기의 시대에 잘 자라며, 베네수엘라 밖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음악을 받아들이는 걸 보는 게 즐겁다고 내게 말했다.

로스 메소네로스가 베네수엘라의 붕괴를 인정하는 동시에 미래에 대한 흥분을 보이는 것은 너무나 베네수엘라 인다운 모습이어서, 나는 할머니를 생각했다. 할머니는 언제나 내게 “악은 1천 년을 가지 못한다”며, 마두로가 곧 물러날 거라고 하신다. 할머니가 그러실 때마다 나는 피델 카스트로가 90년을 살았다는 걸 일깨워 드려야 하나 생각하지만 말하지는 않는다. 지금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가진 무기는 오직 희망, 예술, 강한 신념뿐이기 때문이다.

히메네스는 “위기는 영원하지 않다. 우리가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베네수엘라뿐이고, 이건 잠깐이다. 곧 다시 만날 것이다.”라고 한다.

los mesoneros

난 여러 해 전 내게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었던 노래, 내가 향수를 품을 자격이 없다고 느끼게 했던 노래의 나머지 가사를 생각한다.

“불은 꺼졌고 환상은 재만 남았다. 가치는 폐허 속에 사라졌다. 우리는 새로운 현재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 우리는 자라서 다시 태어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실제로 베네수엘라의 미래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 베네수엘라에 있는 사람들이든, 해외로 나온 사람들이든 우린 아직 미래를 구할 수 있다는 걸 안다. 우리는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 나라를 처음부터 재건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할 일이다.

허핑턴포스트US의 As Venezuela’s Economy Collapses, Talent Leaves The Country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