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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1월 13일 11시 50분 KST

IQ테스트의 원래 목적은 '학생 서열화'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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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Q(intelligence quotient) 이야기만큼 흥미로운 것도 없다. 천재적인 과학자의 IQ가 화제가 되기도 하고, 과거의 인물들 IQ를 추정하기도 한다. 우리 말로는 지능지수라고 하는데, 정신연령을 실제 생활연령으로 나눈 수치에 100을 곱한 값이다. 지능검사는 프랑스 심리학자 알프레드 비네(1857~1911)가 1905년 처음 고안했다. 애초에 이 검사는 선천적 지능 테스트 목적은 아니었다. IQ에 대한 이야기는 비네의 연구로부터 시작된다.

intelligence quotient

1. 원래 뇌의 크기가 지능과 관련 있다고 믿었다.

intelligence quotient

“소르본 대학의 심리학실험실 실장이었던 알프레드 비네(1857~1911)는 지능측정 방법을 연구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19세기 말에 선호되던 방법이었던, 같은 프랑스 출신의 위대한 학자 폴 브로카에게 눈길을 돌렸다. 결국 그는 브로카 학파의 기본적 결론(* 필자 주: 지능과 머리 크기 사이에 관계가 있다는 사실)에 아무런 의심도 품지 않고 두개측정을 시작했다. …. 19세기 객관주의의 보배로 간주되었던 두개계측학은 더 이상 찬양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책 ‘인간에 대한 오해’, 스티븐 제이 굴드 저)

19세기 후반 파리 인류학회를 창립했던 의대 교수 폴 브로카의 이론이 대세였다. 그의 말이 이 책에 나온다. “일반적으로 뇌는 노인보다 장년에 다다른 어른이, 여성보다 남성이, 보통 사람보다 걸출한 사람이, 열등한 인종보다 우수한 인종이 더 크다. 다른 조건이 같으면 지능의 발달과 뇌 용량 사이에는 현저한 상관관계가 존재한다.”(책 ‘인간에 대한 오해’, 스티븐 제이 굴드 저) 비네 역시 예외 없이 이 이론을 받아 들였다. 그래서 머리 크기를 재는 두개계측을 하였다. 그런데 실험을 반복해도 뇌의 크기와 지능 사이 상관 관계를 발견할 수 없었다.

2. 비네가 IQ를 탄생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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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네는 1904년에 다시 지능 측정에 도전했는데, 과거의 좌절을 기억하고 다른 방법으로 전환했다. 그는 자신이 두개계측의 ‘의학적’ 접근방식이라고 불렀던 기존의 방법과 롬브로소의 해부학적 낙인 연구를 포기하고, 대신 ‘심리학적’ 방법을 채택했다. …. 1904년에 비네는 교육부장관으로부터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목적을 위한 연구를 위임받았다. 그것은 보통 학급에서 학습성적이 떨어지는 학생들을 식별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으로, 일종의 특별교육의 필요성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비네는 순전히 실용적인 방식을 선택했다. 그는 일상생활과 연관된 단순한 과제들(예컨대 동전 세기나 어떤 얼굴이 ‘더 예쁜지’를 판단하는 것)을 모으기로 했다.” (책 ‘인간에 대한 오해’, 스티븐 제이 굴드 저)

두개계측학에서 기대를 하기 어렵다고 여긴 비네가 새로운 측정 방법을 택한다. 아이들에게 일상 생활과 관련된 단순한 과제들을 준 후에 그 결과값을 모으는 것이다. 테스트는 여러 형태로 진행되었다. 그래야 여러 가지 능력을 확인할 수 있고, 일반적인 능력을 하나의 점수로 뽑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이렇게 IQ가 탄생하였다.

3. 비네는 IQ가 학생 서열화를 하는 것을 거부했다.

intelligence quotient

“비네는 IQ를 선천적인 지능으로 인정하는 것은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IQ를 정신적 가치에 따라 모든 학생을 서열화하는 일반적인 장치로 사용하는 것도 거부했다. 그는 자신의 척도를 오직 교육부장관으로부터 위임받은 한정된 목적에 활용하기 위해서만 고안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특별한 교육을 필요로 하는 능력이 뒤떨어진 아이들-오늘날 우리가 학습불능아 또는 약한 정신지체아라고 부르는 아이들-을 식별하기 위한 실용적인 지침으로 국한했다. …. 비네는 성적이 낮은 원인에 대해 생각하기를 거부했다. 어쨌든 비네의 테스트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책 ‘인간에 대한 오해’, 스티븐 제이 굴드 저)

비네는 자신이 만든 척도의 목적이 아이들에게 딱지를 붙이기 위함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능력을 계발시켜주기 위함임을 강조했다. 특히 유전적으로 결정되어 그것을 뛰어넘거나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비네는 거부했다. 또한 ‘한번 바보는 영원한 바보’라는 모토를 극도로 싫어했다.

4. 지금의 IQ는 미국의 발명품이다.

immigration restriction act

“…. 비네는 자신의 테스트를 이용하기 전에 염두에 두어야 할 세 가지 기본 원리를 강조했다. 그러나 훗날 그의 충고는 미국의 유전적 결정론자들에 의해 모두 무시되었다. 그들은 비네의 척도를 모든 아이들을 테스트하기 위한 틀에 박힌 문서형식의 고안물로 바꾸어버리고, …. IQ의 유전적 결정론은 미국의 독자적인 발명품이다. 이 주장이 평등주의의 전통을 가진 이 나라에서 역설적이라고 생각된다면,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호전적 애국주의를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유럽 남부나 동부에서 밀려오는 이민자들의 값싼(종종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노동력의 유입에 직면한 기존 미국인들의 두려움 그 자체이고, 무엇보다 미국의 완고하고 고유한 인종차별주의를 나타내는 것이다.” (책 ‘인간에 대한 오해’, 스티븐 제이 굴드 저)

우리가 아는 IQ는 비네가 만든 개념이라기보다 미국에서 발명된 개념이다. 유전적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믿음은 다양한 차별 정책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R.M. 여크스(R.M. Yerkes)가 미국 육군을 설득해 175만 명 군인을 테스트해서 유전적 결정론자의 주장을 정당화했고, 1924년에는 열등 유전자 국가에서 오는 이민을 억제하는 이민제한법(Immigration Restriction Act)을 등장시켰다. 물론 오늘날은 다시 IQ가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지진 않는다. 미국조차 마찬가지다.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 동안 IQ는 우리의 사고를 지배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