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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1월 12일 12시 51분 KST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집'의 의미와 가치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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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는 단조롭다. 비록 오랜 기간 동안 대한민국 중산층의 상징이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똑같이 보이는 외형과 내부에 식상함을 느낀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꿈과 현실의 괴리는 있기 마련. 집을 지으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땅의 확보다. 모두 비용과 비례하기 때문이다. 그 덕에 작은 땅에 두 집을 붙여서(혹은 구조적으로 공동 소유할 수 있도록) 짓는 땅콩집(땅콩주택)이 유행하기도 했다. 집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무엇을 위해 우리는 자신의 집을 직접 지으려고 할까? 기억과 이상의 저장소인 집에 대한 알랭 드 보통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house

1. 집에서는 진정한 나를 기억하게 된다.

stockholm home

“매일 하루를 마감하고 스톡홀름 북부 레에 있는 그런 집으로 퇴근할 수 있다고 상상해 보라. 직장에서 보내는 하루는 정신없고 지저분할 수도 있다. …. 그러다 마침내 집에 돌아와 혼자 있게 되어 복도 창 밖 정원 위로 어둠이 깔리는 것을 보면, 서서히 더 진정한 나, 낮 동안 옆으로 늘어진 막 뒤에서 공연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나와 다시 접촉을 하게 된다. …. 우리 주위의 재료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품고 있는 최고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성실과 활력이 지배하는 정신 상태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속으로 해방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책 ‘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저)

저자는 “중세인의 눈으로 보자면 성당은 지상에 세운 신의 집”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그런 종교적 느낌을 그대로 집으로 가져온다고 본다. 바쁜 일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집에서 위로를 얻는다. 그리고 신을 섬기는 곳이 아님에도, 교회나 사원과 마찬가지로 집에서 우리의 진정한 자아를 기억하는 일을 도울 수 있다고 말한다. 집에서 진짜 나를 만나고 있는가?

2. 집 안의 그림이나 의자는 무엇인가를 기억하고 있다.

chair in home

“건축의 기억 능력을 고려할 때 세계 문화의 많은 곳에서 가장 초기의 가장 의미 있는 건축 작품들이 장례와 관련이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약 4천 년 전, 펨브룩셔 서부의 산비탈에서 우리의 신석기 조상 한 무리가 맨손으로 거대한 돌들을 쌓아올린 뒤 그 위에 흙을 덮어 그들의 친족이 묻힌 곳임을 표시했다. …. 우리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해 건축을 하는 것을 기억하고 싶은 욕망때문이다. …. 우리 집안의 그림과 의자들은 신석기 시대의 거대한 무덤과 같다. 다만 우리 자신의 시대, 산 자들의 요구에 맞추어 줄여놓았을 뿐이다. 우리의 집안 설비들 역시 정체성의 기념물이다.” (책 ‘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저)

기억을 간직하기 위한 장소로 집이 적합하다. 우리 가족과 함께 했던 순간들이 집안 구석구석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과거 신석기 시대에는 큰 돌이나 무덤 등이 그런 역할을 했다면, 지금은 그림이나 의자 등 집안을 장식하는 물건들이 그런 것을 담당한다. 사람들이 집안의 장식을 보고 바로 기억을 되살릴지 모르겠으나, 최소한 천천히라도 그런 생각이 떠오르긴 할 것이다. 집은 확실히 기억의 저장소다.

3. 주거 공간에서도 자연적인 것을 꿈꾸곤 한다.

hut home

“역사가들은 18세기 말의 서구가 모든 주요한 예술 형식에서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사람들은 형식적이지 않은 옷, 전원시, 보통 사람들을 그린 소설, 꾸밈없는 건축과 실내장식에 새삼스럽게 열광했다. 그러나 이런 미학적인 변화를 보고 서구의 거주자들 자신이 더 자연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자연스러운 것과 접촉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술에서 자연스러운 것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과학기술과 교역의 발전 덕분에 유럽의 상층 계급들은 이 시기에는 지나치게 안전하게, 절차대로 살게 된다. 교육받은 사람들은 오두막에서 휴일을 보내거나 꽃에 관한 이행연구를 읽으며 이런 과잉을 덜어내려 한다.”(책 ‘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저)

자연을 가까이 하려는 욕구는 본능에 가깝다. 수십 년의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귀향을 하는 것도, 전원주택을 지어 생활하려는 것도 모두 자연에 다가가려 함이다. 18세기 말 유럽도 마찬가지였다. 기술과 산업이 발달했으나 여전히 자연과 함께 하려는 욕망이 강했다. 그 결과 각종 양식들이 자연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비자연에서 자연으로의 강한 힘이 작용하였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프랑스의 한 왕비는 …. 자신의 정원 한쪽 구석에 지어 놓은 농촌 마을에서 소젖을 짜는 것을 지켜보며 주말을 보내곤” 했다고 한다.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우리가 단지 내 혹은 주변의 작은 공원, 녹지 시설에 기뻐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