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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1월 09일 10시 15분 KST

한때 박근혜가 가장 잘했다던 '외교'는 이렇게 엉망진창이 됐다

U.S. President Barack Obama stands behind as South Korean President Park Geun-Hye (L) and Japanese Prime Minister Shinzo Abe shake hands at the end of their trilateral meeting at the Nuclear Security Summit in Washington March 31, 2016.  REUTERS/Kevin Lamarque
Kevin Lamarque / Reuters
U.S. President Barack Obama stands behind as South Korean President Park Geun-Hye (L) and Japanese Prime Minister Shinzo Abe shake hands at the end of their trilateral meeting at the Nuclear Security Summit in Washington March 31, 2016. REUTERS/Kevin Lamarque

초기만 하더라도 외교는 박근혜 정부의 성과가 빛나는, 몇 안되는 분야 중 하나였다. 2013년의 방중은 수교 후 최대 성과라는 (다소 낯간지러운) 평가를 받기도 했고, 2012년 대선 당시 선대위 참여자의 대다수도 2014년초의 설문에서 박근혜 정부의 잘한 점으로 주로 외교를 꼽았다.

출범 4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외교 상황은 처참하다.

중국은 사드 문제로 한류 문화콘텐츠 등을 제재해 왔음을 공식적으로 시인하면서 사드 배치를 일시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위안부 소녀상'을 두고 한국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어쩌다가 박근혜 정부가 가장 잘하던 분야였던 외교는 지금과 같은 최악의 상황을 맞닥뜨린 걸까? 경향신문의 분석기사는 이것이 어느 하루 아침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지난 4년 동안 외교 실패가 축적된 결과라고 평가한다.

흥미롭게도 경향신문은 박근혜 정부가 초기에 대일 강경자세를 고수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고 지적한다:

한·일 등 아시아 동맹국들을 활용해 중국을 봉쇄하려는 아시아 정책을 펴는 미국이 한·일 갈등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박근혜 정부의 대일 강경자세는 방향 설정이 잘못된 데다 지속될 수 없는 실책이었다. 결국 한국은 한·일관계 악화에 따른 외교적 입지 축소와 미국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대일 강경자세를 거둬들였다. (경향신문 1월 9일)

기사는 박근혜 정부가 초기에 대일 강경자세를 취한 까닭을 국내 정치를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전력 논란을 차단하고 국내 정치적 지지를 높이기 위해 국민정서에 영합하는 ‘일본 때리기’에 나선 탓이다." 이때부터 박근혜 정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잃어버렸다고 기사는 평가한다:

출범 초기 박근혜 정부가 지향했던 외교정책의 원칙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강대국의 첨예한 이해관계 앞에서 선택의 압박을 받게 되자 모래성처럼 일거에 허물어졌다. 민간연구소의 한 외교전문가는 “박근혜 정부 초기 한국 외교에 가장 중요한 명제는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에 몰리지 않고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이었는데 한국은 양쪽을 오가다가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혀버렸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 1월 9일)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초강대국이 격돌하는 가운데서 균형을 유지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박근혜 정부가 아니었더라도 한국은 어느 순간에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양극을 오가는 행태로 너무도 빨리 한국 외교의 파국을 가져왔다.

기사가 인용하는 정부의 한 외교소식통의 "다음 정부는 능동적 외교정책을 펴기에 앞서 박근혜 정부에서 뒤틀려버린 외교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작업에 외교적 역량을 소진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는 제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끝날지도 모르는 박근혜 정부의 외교에 대한 최종 성적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