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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1월 08일 08시 46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1월 08일 08시 48분 KST

역사 속에 숨겨진 누드의 역사는 정말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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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명화들을 감상하다 보면 '누드화'가 자주 등장한다. 유럽인들이 우리보다 누드에 대해 더 관대했을 것이라 여기기 쉽다.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랜 기간 동안 서양에서도 누드는 허락된 몇몇의 경우를 빼고는 금기의 대상이었다. 누드라고 다 같은 누드가 아니었다. 그러면 '다른' 누드는 어떤 경우를 의미하는지 그 유형을 알아보았다. '인간의 벗은 몸'을 정직하게 바라보기까지, 서양에서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셈이다.

martyrdom of st sebastian

1. 인간이 아닌 경우

the birth of venus

"...그림 속 성 세바스찬은 거의 알몸입니다. 왕명을 거부한 죄인이라서 옷을 다 벗겼던 것일까요? 이 그림은 인간의 미를 중시하는 르네상스 시기에 그려진 것이지만, 그림 속 누드모델이 성인이나 신화 속 인물이 아니면 여전히 지탄 받던 시절이었습니다. 즉, ‘비너스의 탄생’ 같은 작품이 무사했던 것은, 신화 속 존재를 누드로 그렸기 때문이지요." (책 '미술관에 간 인문학자', 안현배 저)

인간 몸의 형태를 지닌 누드를 그리는데 '인간이 아닌 경우'라는 게 이상하게 들린다. 하지만, 분명 그랬다. 과거 서양에서도 누드화를 그리려면 조건이 하나 붙었다. 그 누드가 신화 속 인물이거나, 그리스도교에서 추앙하는 성인(聖人)이어야 했다. 즉 신 혹은 성인이 아닌 일반인들의 '불완전한' '천한 몸' 따위는 감히 화폭에 담아서는 안 됐고, 또 남들에게 그려 보여줘서도 안 됐다. 르네상스 시기 프랑스와 북부 이탈리아 등지에서 자주 그려진 남자 누드 중 상당수는 성(聖) 세바스찬인 경우가 많다. 로마 대장의 그리스도교 박해에 반대해 묶여 화살을 맞았으나 죽지 않은 그의 행적을 기린다는 이유로 그려진 남자 누드는 '공연음란죄'를 피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누드에도 '급'이 있었던 셈이다.

2. 허구의 존재인 경우

the pastoral concert

"16세기에는 원래 '실재하는 사람들'과 '보이지 않을, 가상의 존재들'이 동시에 등장하는 그림들이 많이 그려졌습니다. 그 때문에 여성의 누드를 그리는 것이 그렇게 문제되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림 속 두 명의 뮤즈는 보이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에 알몸을 하고 있어도 괜찮다는 이야기입니다."(책 '미술관에 간 인문학자', 안현배 저)

신이나 성인(聖人)을 그리지 않고 누드를 그릴 수 있는 다른 방법은 '그림 속 사람들은 보지 못한다고 가정 되는' 상상 속의 존재를 나체로 그리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르네상스 시기 베네치아 화가 티치아노의 ‘전원 합주곡’이다. 남자 두 명과 여자 두 명이 등장하며, 그 중 여자 두 명은 나체로 등장하는 이 그림은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마네의 그림과 달리 이 그림이 조용히 넘어갔던 이유는 그림 속 두 여자가 '진짜 여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풀밭 위의 음악가 두 명에게 찾아온 뮤즈(영감)를 상징하는 존재들일 뿐이다. 반면 ‘풀밭 위의 점심식사’에 등장하는 여성은 현실 속의 여성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숱한 외설 시비에 시달려야 했다. 어차피 다 같이 벗은 몸 누구는 뮤즈라고 넘어가고 누구는 진짜 여자라고 공격받았다는 사실이 어딘가 우습지만, 신화와 상징이 아닌 '진짜 인간의 몸'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수치심을 느낌이 당시 세태였다.

3. 외국 사람인 경우

grand odalisque

"’오달리스크’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반영합니다. 즉, 이 그림의 제목 '오달리스크'는 정확한 고증 없이 그저 자기들이 사는 곳보다 동쪽이면 '오리엔탈하다'는 형용사를 붙이던 당시, 아랍 세계의 문화는 상당히 '관능적'이고, 더 나아가 '퇴폐적'이라고 제멋대로 생각하던 사회 분위기와 맞닿아 있습니다. 오달리스크는 앵그르를 비롯한 신고전주의 화가들이 도덕적인 부담감 없이 여성 누드를 소재로 삼는 데 이용됩니다. 즉, 그 당시 귀족이나 왕족 같은 상류 계급을 대상으로 누드를 그리는 것은 도덕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지만, 퇴폐의 아이콘으로 여겨지던 오달리스크의 벗은 몸을 그리는 것은 문제 삼지 않았던 것이지요."(책 '미술관에 간 인문학자', 안현배 저)

일명 '동양', 그 중에서도 아랍 사람들을 상상하며 그린 누드는 가능했다. 신화나 상징으로도 숨을 수 없을 경우, 유럽 사람들이 당시 가졌던 '우리 세계 바깥에 있다고 여겨지는' 타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이용하는 방식이었다. 그 대표적인 유형이 ‘오달리스크’를 그린 그림들이다. 아랍의 궁전에서 왕의 애첩으로 살던 여자들을 ‘오달리스크’라고 불렀는데, 당시 유럽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이 ‘오달리스크’와 그녀들이 살던 ‘하렘’은 성적 판타지의 대상이었다. 즉, 실제와 상관없이 자신들이 가진 것보다 훨씬 문란하고, 퇴폐적인 공간이 '동양'에 있을 것이란 상상을 통해 자신들의 욕망을 투영했다. 예술가들은 이런 상상을 이용해 '애초에 퇴폐적이고 문란하기에' 부담감 없이 누드를 그려도 되는 대상을 표현한다는 핑계로 이들 ‘오달리스크’들을 그린다. 물론 그 모습은 아랍 사람들이 아닌 백인 여인의 모습에 가까운 경우가 많았다. 눈에 보이는 것과는 달리 '나와 같은 인간의 정직한 벗은 몸'을 그리기까진, 정말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