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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1월 10일 11시 31분 KST

김재규 평전에서 찾아본 김재규의 생각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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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시장만큼 세태를 잘 반영하는 곳도 없다. 2016년도 예외는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자서전을 발행했던 출판사가 거센 항의를 받으며 절판했다고 JTBC에서 보도된 바 있다. 이와 반대로 시국 상황에 의해 주목을 받은 책도 있었다. 바로 김재규 평전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다. 2013년에 출간되었으니, 한참 박근혜 정부가 기세 등등할 때 나온 책이다. 출간된 지 몇 년이 지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대형 서점 매대 곳곳에서 이 책이 눈에 띈다. 이 책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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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재규는 애초에 스스로 권력을 잡을 생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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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은 야심가들이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항상 자신의 명령과 권위가 가장 잘 통하는 장소에서 일을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전두환이 자신의 시나리오를 시작하기 위해 자신이 사령관이던 보안사령부에서 참모들을 불러 모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김재규는 자신이 부장이던 중앙정보부로 향하지 않았다. …. 차는 (중앙정보부가 있던) 남산을 지나쳐서 육본 벙커로 갔다. 김재규는 육군참모총장인 정승화에게 비상계엄을 선포하게 하고 계엄사령부가 3권을 장악하고 난 이후에 계엄사령부를 혁명위원회로 바꾸자고 생각했다. 그는 정승화가 반대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자유민주주의의 회복은 전국민이 열망하는 것인데 그 걸림돌인 박정희가 죽은 마당에 반대할 이유가 있겠는가’라는 생각으로 애써 사태를 낙관하려고 했다. ….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권력은 박정희가 죽자 현저하게 약화되어버렸다. 평소 김재규 앞에서 설설 기던 장관과 장군들이 김재규를 그다지 의식하지 않았다. 국무위원들은 이 중대한 사태의 처리를 둘러싸고 자기들끼리 중구난방의 입씨름을 벌였다. …. 김계원은 그사이에 국방장관보좌관실로 가서 정승화를 불러달라고 했다. 국방부장관 노재현과 정승화가 들어오자 김계원이 말했다. “김재규가 범인입니다. 중앙정보부장이니 소란 피우면 곤란합니다. 날쌘 자들을 골라서 사고 없이 빨리 체포해야 합니다.” (책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문영심 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자신이 권력을 장악할 계획이 없었다. 육군참모총장 정승화와 함께 순순히 육본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관료들은 군인들의 눈치를 살핀다. 원칙적으로는 경찰이나 검찰이 다루어야 하는 형사사건임에도 군인들이 맡기로 결정지어진다. 법보다 무력이 우선이었던 유신 체제의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하필 정승화 총장은 보안사령관 전두환 소장과 헌병감 김진기 소장에게 김재규 체포를 맡긴다. 전두환이 역사의 중심에 서게 된 시발점이다.

2. 김재규는 모순적이어서 실패할 수밖에 없는 혁명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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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가 혁명의 완성 단계인 ‘신질서 수립’에 착수하지 못한 것은 스스로가 갖고 있는 한계 때문이었다. 혁명을 완수하려면 자기가 옳다는 자기 확신과 함께 권력을 거머쥐려는 의지가 강렬해야 한다. 그런데 그는 ‘나는 독재가 싫어서 독재를 타도한 사람이다. 나는 군인이고 혁명가다, 내가 만일 집권하게 되면 나도 틀림없이 독재를 한다, 독재가 싫다고 혁명한 사람이 다시 독재할 요인을 만들 턱이 없다’ 그렇게 진술하고 있다. 그는 또 ‘대통령을 희생시켰지만 대통령의 무덤 위에 올라설 정도로 도덕관이 타락되어 있지 않다’라고 진술했다. 김재규는 민주주의에 대해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고,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서 유신체제를 타도하는 유일한 길은 박정희 살해 밖에 없다는 점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논리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박정희를 제거한 이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책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문영심 저)

책의 내용대로라면 김재규는 상당히 양심적이었던 것 같다. 유신 체제 유지에 일조했다는 반성, 그리고 자신이 혁명을 시작했지만 정권을 잡으면 자신도 독재를 할 것이라는 두려움 등이 그것이다. 또한 대통령을 암살하고 그의 무덤 위에 올라갈 생각이 없다고 스스로 밝힌 것 역시 그런 그의 성품을 느낄 수 있다. 끝까지 각하라는 호칭을 버리지 못한 것 역시 그랬다. 저자의 말대로 “김재규는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수호하려는 의지는 있었지만 여전히 박정희의 부하인 유신정권의 중앙정부부장 김재규라는 자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의 혁명이 실패한 결정적인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3. 김재규가 사형 전날 남긴 유언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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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5월23일, 아침이군요. 오늘은 내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 말을 남기고 갈 수 있는 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는 1심, 2심, 3심 – 보통군법회의, 고등군법회의, 대법원재판까지 3심을 거쳤지만 또 한 차례의 재판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건 제4심인데 제4심은 하늘이 심판하는 것입니다. 변호사도 필요 없고 판사도 필요 없고 하늘이 판결을 내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는 재판은 오판이 있을 수 있지만 하늘이 하는 재판은 절대 오판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재판이 나에게 남아 있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데 하늘의 심판인 제4심에서 이미 나는 이겼다는 것입니다. 내가 목적했던 민주혁명은 완전히 성공했고 그래서 자유민주주의가 이 나라에 회복됐고 보장되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의심할 수 없이 확신하고 있습니다. …. 자유민주주의 회복의 대혁명을 가로막는 세력들에 대해서 진심으로 부탁하고 싶은 것은 사사로운 마음을 버리고 오로지 국가와 민족을 위하고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 똑바로 판단하고 행동해달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 내가 명확하게 해두고 싶은 것이 한두 가지 있습니다. 내가 집권욕을 가지고 10.26 혁명을 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나는 1972년 10월에 10월 유신이 반포된 직후부터 네 차례에 걸쳐서 혁명을 구상했었고, 물리적인 혁명이 아니라 박 대통령 스스로 이것을 시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수백 번의 건의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 내 동지들에 대해서 여러분들에게 확실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 이 동지들이 나와 같은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자기의 죽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 이상으로 확고부동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책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문영심 저)

김재규의 마지막 유언은 울림이 크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열망이 그대로 담겨 있다. 신군부가 1980년 5월 18일 광주를 무참히 짓밟고 있을 때 녹음된 내용이라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한 명도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을 따라준 부하들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고마움도 함께 느껴진다. 김재규가 남긴 유언, 자유민주주의가 이 나라가 확실히 보장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