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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1월 02일 13시 38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1월 02일 13시 43분 KST

역사를 바꾼 역대 헌법재판소의 4가지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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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기로다. 헌법재판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심사에 여론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다행히 헌법재판소에선 재판 심리에 신속을 기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하며 관심에 부응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재판의 결론이 어느 쪽으로 나든, 그 결론이 또 하나의 중대한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라는 점 하나는 확실해 보인다. 이번만은 아니다. 1987년 6월 항쟁의 산물로 1988년 설립된 헌법재판소는 그간 여론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들에 대해 길고 긴 판결문으로 중요한 흔적을 남겨왔다. 헌법재판소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대표적인 4가지 판결을 돌아보았다. 사람들은 그 때처럼, 판결에 임한 헌법재판소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korea constitutional court

1.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 전두환 내란 행위 공소시효에 대한 판결

kim young sam

김영삼 정권 시절, 12.12 군사 쿠데타 피해자들과 5.18 광주민주화 운동 피해자들은 전두환, 노태우로 대표되는 정치군인들을 내란죄로 고소하지만, 검찰에 의해 불기소 처분을 받는다. '고도의 정치행위'에 검찰이 개입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 유명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이론이다. 때문에 피해자들은 검찰의 불기소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헌법소원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하게 된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 수뇌부들에 대한 처벌 여부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달린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허무했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이 내란 또는 외환의 죄 이외에는 재임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헌법 조문을 '내란 죄에 대해선 재임 중에도 공소시효가 그대로 진행된다'고 해석했고, 때문에 12.12 군사 쿠데타는 공소시효 만료 때문에 다룰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다. 1995년 1월 20일의 일이었다. 그러나 1996년 2월 16일, 헌재는 유학성 등이 5.18 특별법에 대해 위헌성을 제기하여 진행된 위헌법률심판에서 합헌 판결을 내려 12.12 군사 쿠데타의 공소시효 유지를 인정하게 된다. "똑같은 재판관들이 불과 1년여 만에 자신들이 내세웠던 논리를 스스로 부정해야 했던 당시 판결은 헌법재판소의 신뢰를 상당부분 잃게 만든 결정적 계기로 평가 받고 있다."(책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 이범준 저)

"...도대체 1995년 1월 20일과...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간단하다. 그 사이에 대한민국을 바꾼 새로운 힘이 밀려왔다. 그것은 권력자나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이 만든 힘이 아니었다. 민중들이 만들어낸 기득권의 상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물결이었다. 이 힘 앞에 기존의 질서를 기존의 논리로 수호하려던 권력과 법리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헌법정신의 실현은 기계적으로 법리를 실현하는 과정이 아니라 해석을 둘러싼 끊임없는 투쟁 과정이다. 이 해석투쟁이야말로 바로 대한민국을 바꾸는 보이지 않는 힘인 것이다." (책 '그 순간 대한민국이 바뀌었다:헌법재판소의 주요 판결로 본 우리의 현재', 김욱 저)

2. 모든 금융 거래는 실명으로만 한다. : 금융실명제 긴급재정경제명령에 대한 판결

kim young sam

1993년 8월 12일, 김영삼 대통령은 헌법 제76조 1항의 규정에 의거해 모든 금융 거래를 실명으로만 할 것을 지시하는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령한다. 그렇지만 이 명령은 8월 16일 한 청구인에 의해 헌법소원의 대상이 된다. 긴급한 상황이란 요건을 갖추지 않았음에도 명령을 발령하여 정책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했다는 이유였다. 헌법재판소는 그러나 이 헌법소원에 대해 기각 판결을 내린다. 긴급명령권을 발동할 만큼 당시 상황이 '중대한 재정, 경제상의 위기(헌법 제76조 1항)'였는지, 또 ‘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었는지’ 대해 둘 다 '그렇다'는 결론을 내렸다. 중대한 위기는 꼭 갑작스럽게 찾아온 위기만이 아닌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까지도 포함하며,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입법 논의가 진행되었을 경우 심각한 부작용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었다는 것이 결론을 뒷받침하는 주요 논지였다. 헌법재판소의 이 판결을 통해 금융실명제는 법적인 정당성을 확보하게 되었고, 이는 한국 사회의 부정부패 척결에 일대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몇 가지 점에서 의미 있는 결정이다. 하나는 이른바 통치행위의 관념과 그 헌법적 한계를 명확히 했다는 것이다. 통치행위에 대한 관념은 인정하되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관련된 사항은 헌법소원(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는 판시는 논란이 되어온 학설 대립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다음으로...헌법재판소는 위기가 현재의 위기이긴 하지만 순간적인 위기가 아니라 누적된 위기로 해석했고, 국회의 집회도 단순히 물리적인 집회 가능성이 아니라 국회에서의 논의 가능성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했다...이러한 헌법재판소의 확립된 결정례는 앞으로 우리가 헌법정신에 따라 위기에 대처하고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책 '그 순간 대한민국이 바뀌었다:헌법재판소의 주요 판결로 본 우리의 현재', 김욱 저)

3.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임은 관습헌법이다. : 신행정수도 특별법에 대한 판결

korea sejong city

2003년 12월 29일, 국회는 청와대와 정부부처를 충청권에 옮겨 새로운 행정수도를 건설하기 위한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통과시킨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었던 이 특별법은 변호사 이석연에 의해 헌법소원의 대상이 된다. 국가 안위에 대한 중요 사안을 국민투표를 거치지 않고 진행해 헌법 제72조를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변호사 이석연의 입장과도, 참여정부의 입장과도 달랐다.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임은 600년간 이어져온 '관습헌법'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성문헌법 개정절차를 거치지 않은 특별법은 헌법 제130조(개헌절차를 명시)를 위반한 법이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 판결로 인해 헌법재판소가 수도의 기준으로 제시한 '국회'와 '청와대'는 정식 개헌 절차 없이는 옮길 수 없는 기관이 되었고, 당초 계획하고는 많이 달라진 지금의 '세종 시'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후 벌어진 논쟁의 뜨거움과 영향의 규모 면 모두에 있어 헌법재판소가 만들어낸 '역사적' 판결 중 하나임엔 틀림이 없다.

"헌재의 위헌결정은 5단계로 이뤄진다. 1단계, 수도란 무엇인가. 적어도 국회와 청와대가 있어 정치와 행정의 중추적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다...2단계, 신행정도시가 수도이전인가...수도이전이다. 3단계, 수도가 서울인 점이 관습헌법인가...관습헌법이다. 4단계, 관습헌법은 어떻게 개정하는가. 관습헌법 요건인 합의성이 깨지거나 성문헌법 개정절차를 거쳐서 개정되는 거이다. 5단계, 특별법에 의한 수도이전은 위헌인가...위헌이다. 개헌절차를 명시한 헌법 130조 위반이다." (책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 이범준 저)

4. 헌정사 최초의 대통령 탄핵 심판 :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에 대한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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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12일, 노무현 대통령은 헌법 제65조에 따라 국회가 가결시킨 탄핵 소추 안에 의해 직무가 정지된다. 선거법 위반이 주된 이유였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추 안을 기각시킨다. 노무현 대통령은 제17대 총선을 앞두고 한 기자회견에서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해 공무원의 정치 중립을 규정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9조를 위반했다. 그리고 이를 지적한 선관위에 이의를 제기해 헌법 66조 2항과 69조(대통령의 헌법준수 의무) 또한 위반했다. 그러나 그것이 대통령에서 파면될 정도로 '중대한' 위반 사항은 아니다. 이것이 헌재 판결의 요지였다. 참고로 당시 판결문에 예시로 나온 '중대한' 위반 사항은 '뇌물수수·공금횡령 등 부정부패, 명백히 국익을 해한 경우, 다른 헌법기관의 권한을 침해한 경우, 국가조직을 이용한 국민탄압, 국가조직을 이용한 부정선거' 5가지였다. 12년 만에 두 번째로 이뤄진 탄핵 심판에서 어떻게 적용될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이러한 탄핵의 전체 과정 속에서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어쩌면 대통령이라는 "공직자의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법 위반"에 대한 판단도 결국 국민들의 몫이라는 교훈인지 모른다. 설령 정치적·법적·도덕적 잘못이 있었다 해도 그 직접적 피해당사자일 수밖에 없는 국민이 다수의 여론으로 탄핵에 이를 정도는 아니라는 판단을 한다면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법리'도 그에 따르는 것이 순리일 수밖에 없다는 교훈이다."(책 '그 순간 대한민국이 바뀌었다:헌법재판소의 주요 판결로 본 우리의 현재', 김욱 저)

4가지 사례에서 나타나듯, 헌법재판소는 사법적 성격과 정치적 성격을 동시에 갖는다. 법 중의 법, 헌법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그 헌법을 만든 국민의 의사를 함께 살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역사를 바꾼 건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아니다. 그 판결을 이끌어낸 우리들이다. 지금의 우리는 헌법 조문의 무엇을 현실로 끌어와야 하는지, 다 함께 고민해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