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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30일 10시 59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30일 10시 59분 KST

모든 어린이가 읽어야 할 어두운 고전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의 귀한 교훈

watership d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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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리처드 애덤스가 작년에 가디언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역사상 가장 폭력적인 ‘말하는 토끼 책’을 쓴 것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의 이 말은 절제한 표현일 것이다. 그가 1972년에 낸 모험 소설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는 어린이에게 맞춰 쉽게 쓴 책이 아니다. 그뿐 아니라, 어린이들을 어떤 식으로든 이 세상의 잔혹하고 우울한 현실에서 보호하기를 거부한 책이다. 어린 독자들에게 상실, 장애물, 혼란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다 해도 삶의 일부라는 명백하고 소중한 교훈을 주기로 결심한 작가의 책이다.

12월 24일에 96세를 일기로 사망한 애덤스는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의 탄생에 대해 여러 번 이야기했다. 평생 소설을 써 본 적이 없는 영국 공무원이던 그는 1960년대말에 두 딸을 학교에 데려다 주며 토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는 “옛날에 헤이즐과 파이버라는 토끼가 있었단다.”라며 이야기를 시작해, 독, 덫, 개 등 토끼들의 어둠을 담은 이야기를 딸들에게 해주었다.

딸들의 격려로 애덤스는 놀라울 정도로 잔혹한 토끼 이야기를 써서 출판사에 가져갔다. 7번 거절당한 뒤(“그들은 문장이 너무 성인 대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큰 어린이들은 토끼 이야기라고 안 좋아할 거라고 했다!” 애덤스가 레딧 AMA에 설명했다) 렉스 콜링스라는 작은 출판사에서 책을 낼 수 있었다. 이 책을 수백만 권 판 렉스 콜링스는 운이 좋았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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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즐과 파이버 형제는 400페이지가 넘는 애덤스의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애덤스가 어린 시절에 살았던 버크셔 다운스를 닮은 전원에 산다. 파이버가 본 종말론적 예견에 따라 그들은 다른 토끼들과 함께 새로운 살 곳을 찾으러 가기로 한다. 토끼들의 여정은 결코 무난하거나 편하지 않다. 그래서 세심하게 의인화된 뚜렷한 캐릭터들은 결코 맹목적으로 용감하지는 않다.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에서 특히 강렬한 부분은 중반에 파이버가 본의 아니게 헤이즐과 헤어지고 나서 경험하는 순수한 공포와 불안을 묘사한 부분이다.

파이버는 땅 속에서 잠들었다가 한낮의 더위에 잠에서 깨고, 머리 위의 흙이 말라가는 동안 안절부절 못하며 몸을 긁는다. 천장에서 흙이 떨어지자 파이버는 자다 벌떡 깨서 도망치려 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원래 누워있던 곳으로 돌아온다. 파이버는 잠에서 깰 때마다 헤이즐을 생각하고, 그때마다 작고 힘없는 토끼 헤이즐이 아침 해가 뜰 무렵 사라졌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괴로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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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토끼들이 등장하고, 어렸을 때 접한 사람들이 많은 책이라는 이유로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를 어린이 책으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다. 애덤스는 ‘어린이 책’이라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 “나는 어린이 책이라는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은 책이고 책일 뿐이다.”

1974년, 뉴욕 타임스의 리처드 길먼은 이 책이 어떤 독자를 상정한 것인지 직접적으로 질문하며, “어린이와 성인 소설의 경계가 흐려지는 나이인 13, 14세 이하의 어린이들 중에서 토끼들이 등장하는 426페이지짜리 대서사시의 우화적 전략을 끝까지 읽을 정도의 참을성을 가진 독자가 많을 거라곤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길먼이 어린이들의 독서 능력을 믿지 않은 건 그렇다 쳐도, 그의 비판은 핵심을 짚지 못했다. 성인이 되기 전의 어린이들에겐 참을성이 있든 없든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 같은 책을 읽도록 권해야 한다. 토끼의 눈으로 본 인류라는 건 13, 14세 미만의 독자들에게 반드시 보여주어야 할 판타지다. 이런 뒤틀리고 낯선 플롯은 수십 년 동안 머리에 남아, 나이가 들고 파이버가 겪는 것 같은 순간에 더 잘 공감하게 될수록 더 명징하고 슬퍼진다. 천천히 고통스럽게 펼쳐지는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 말하는 토끼가 등장하는 가상의 책이라는 걸 잊게 되기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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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은 언짢아지고, 흥분하고, 습격 당하는 걸 좋아한다. 어렸을 때 언짢은 이야기를 들으며 울었던 게 기억나지만, 다행히 내 부모님은 현명하셔서 계속 읽어주셨다.” 애덤스가 2015년 가디언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물론 모든 부모가 현명하지는 않다. 자녀들에게 삶의 가혹한 현실을 가리려는 부모도 많다. 그 본능을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어린이들은 육체적, 경제적, 심리적 상실을 대한다. 비통함과 억울함을 직접 겪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성실한 노력과 끈기, 믿음이 늘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는 걸 이해해야 하게 된다. 그렇지만 안전한 위치의 어린이들은 그렇지 않다.

고맙게도 픽션은 우리에게 감정이입을 선물해 준다. 당신을 보호하는 부모가 줄 수 없을지도 모르는 감정이입이다. 애덤스 자신에게도 자녀가 있었지만, 그의 이야기가 자기 딸들에게 심어줄 수도 있는 공포를 의식하고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의 독자들로부터 거리를 유지했다. 그는 글을 통해 위안이나 안정감을 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어렸을 때 읽으며 슬퍼하고 무서워했던 에드거 앨런 포, 아서 코난 도일, 앨저넌 블랙우드의 이야기들과 같은 이야기를 만들려 했다. 그에게 차갑고 괴로운 걱정을 친숙하게 만들어 준 이야기들이었다.

그 이유는? 애덤스는 헤이즐과 파이버의 이야기를 처음 만들기 시작할 때 자신이 고전이 될 작품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책 초반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한다.

불안과 공포의 시간의 끝을 맞기 위해! 우리 위에 뜬 구름이 걷히고 흩어지는 것을 느끼기 위해- 마음을 둔하게 만들고 행복을 기억에 불과하게 만든 구름을! 이것은 최소한 거의 모든 산 사람이 느껴야 할 하나의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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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핑턴포스트US의 The Invaluable Lessons Of ‘Watership Down,’ A Dark Classic Every Kid Should Read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