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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1월 01일 16시 45분 KST

대리운전기사가 직접 밝힌 대리기사의 애환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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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있는 성인 남성 중 대리운전 이용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리의 의미를 고민해 본 사람은 드물다. 애써 외면했을 수도 있고, 특별한 느낌이 없었을 수 있다. 전작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에서 자신의 처지를 신랄하게 드러내며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고발했던 저자가 이번에는 ‘대리사회’로 또 다시 고발에 나선다. 우리 스스로 주체적인 사람인 것처럼 느끼고 운전대를 잡고 있지만, 사실은 이미 누군가가 조수석에 누군가(진짜 차 주인)가 자리를 잡고 있다고 밝힌다. 실제 대리기사 일을 하며 쓴 글이라 그 느낌이 생생하다.

chauffer service

1. 타인의 운전석은 을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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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운전석과 다름없는 ‘을의 공간’은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차의 주인과 대리기사와 같은 역설의 관계 역시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그 어디에서, 주체의 욕망은 쉽게도 타인을 잡아먹는다. 예컨대 의사 결정권자는 언제나 자유롭게 회의 안건을 내고 소통하자고 하지만 그 누구도 화답하기는 쉽지 않다. 이미 상상과 수용 가능한 범위가 제한되어 있음을 모두가 안다. …. 이처럼 우리는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부터 시작해 교사,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을의 공간’에서 순응하는 방법을 주로 배워왔다. 그렇게 이 사회는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이 된다. 모든 개인은 구체와 피주체의 자리를 오가면서 주체가 되기를 욕망하고, 타인에게 순응을 강요한다. 그런데 그것은 사회가 개인에게 보내는 욕망과 그대로 일치한다. 특히 국가는 순응하는 몸을 가진 국민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책 ‘대리사회’, 김민섭 저)

저자는 대리기사 일을 하면서 자신의 몸이 점차 상대방이 말하는 대로 수용하고 긍정하는 간편한 대화의 방식, 즉 ‘순응’이 익숙해졌다고 털어 놓는다. 아무리 핸들을 잡고 있더라도 타인의 자리에 앉아있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는 한, 그런 마음가짐이 가지는 것이 편할 수밖에 없다. 주체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 매우 괴로워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상황이 대리기사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가와 개인, 회사와 개인 관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이 경우 대리국민, 대리직원이 양산된다.

2. 호칭은 한 인간을 대리하는 수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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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시간 동안 나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조금씩 떠올렸다. 첫 손님은 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아저씨’라고 불렀고, 나는 그를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에게, 그는 나에게, 누구도 자신을 어떻게 호칭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도 자연스럽게 나는 아저씨가 되고 그는 사장님이 되었다. …. 그러한 호칭에는 듣는 대상의 자존감이나 주체성을 갉아먹는 힘이 있었다. 모든 관계는 호칭에서부터 그 범위가 상상되고, 확장 또는 축소된다. 호칭을 결정할 자유를 빼앗겼을 때부터 나의 신체는 이미 나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운전석에서 내리면서는 나를 되찾아온 것처럼 후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나의 또 다른 운전석’들’이 떠올랐다. …. 호칭은 한 인간의 주체성을 대리하는 수단이 된다. 자신을 그 공간의 주체라고 믿게 만드는 동시에, 그를 둘러싼 여러 구조적 문제들을 덮어버린다. 나 역시 내가 속한 공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나는 그 구성원이라는 환상에 한동안 빠져 있었다. 그 환각에 익숙해질 때, 우리 모두는 ‘대리’가 된다. 그 공간에서는 더 이상 온전한 나로 존재할 수 없다. 누군가의 욕망을 대리하며 ‘가짜 주인’이 되어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책 ‘대리사회’, 김민섭 저)

호칭 문제는 만만치 않다. 특히 서로 이름을 쉽게 부르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저자는 호칭이 한 인간의 주체성을 대리하는 수단이 된다고 지적한다. 자신이 비정규직 시간강사를 하면서 ‘교수님’, ‘선생님’이라고 불렸던 경험을 털어놓는다. 4대보험이 보장되지 않는 4개월짜리 계약직 노동자이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정규직 교수가 된 듯한 환각에 빠졌다고 한다. 호칭 뒤에 숨은 진짜 나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놓친 것이다. 차라리 ‘아저씨’로 불리는 대리기사가 시간강사 시절보다 더욱 주체적인 ‘나’를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적어도 호칭이 주는 환각이 없어서일 것이다.

3. 대리기사 하면서 가장 무서웠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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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운전을 하면서 제일 무서웠던 사람은 나에게 욕을 하거나, 하대하거나, 만취했거나 하는 부류가 아니다. 별로 취하지도 않았고 매너도 괜찮았던 그는, 나에게 정말 무서운 말을 건넸다. “제가 오래돼서 브레이크가 잘 안 잡힙니다, 하하하.” 나는 설마 농답이겠지, 하고 아아 그렇군요, 대답하고는 운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브레이크를 평소보다 조금 힘주어 밟았는데 차가 서지 않았다. …. 그래서 순수한 분노가 일었다. 나는 나를 기다리고 있을 가족에게 안전하게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저 이거 진짜 …. 안 먹는군요”라고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자 그는 “네네, 좀 미리 더 세게 밟으시면 됩니다”하고 답했다. “아, 예 …. 미리, 세게, 알겠습니다.” 얼마나 브레이크를 세게 밟아댔는지 차에서 내려서는 발가락부터 허벅지까지 아팠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 (책 ‘대리사회’, 김민섭 저)

대리운전을 하면 별 사람을 다 만날 것이다. (아마도 술이 잔뜩 취했을) 모르는 사람을 (주로) 어두운 밤에 밀폐된 공간에서 만나는 일은 쉽지 않을 듯싶다. 그런데 저자는 가장 무서웠던 손님은 브레이크가 거의 고장 난 차를 맡겼던 이를 꼽았다. 아무래도 목숨이 달려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대리기사의 애환이 느껴진다. 목숨의 위협까지 받았건만, 변변한 항의조차 하지 못했다. 저자의 말대로 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의 어려움이 체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