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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7일 10시 25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27일 10시 25분 KST

할머니가 게이인 나에게 준 아주 특별한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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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할머니는 평생 아주 고되게 일하셨다. 8명의 자녀들에게 음식, 옷, 기회를 주기 위해 여러 직업을 가지셨다. 알루미늄 제조사 알코아에서 여러 해 동안 일하신 할아버지도 여러 직업을 가지셨다. 십여 년 전에 알츠하이머 병 합병증으로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두 분은 결혼 후 56년 동안 같이 사셨다.

나는 작년 여름에 결혼했다고 글을 쓴 적이 있다. 작은 결혼식이었고 우리는 조촐하게 치르려 했다. 그게 잘 되지 않아 우리는 완전히 공개적인 식을 올렸다. 나는 일부러 가족들을 많이 초대하지 않았다. 내 혈육들은 형제 자매, 나와 가장 가깝고 나를 지지해주는 가족들인 사촌 한 명, 이모 한 명이 전부였다.

나는 내 섹슈얼리티를 숨기지는 않았지만, 가족들의 부탁으로 작은 고향 마을을 방문할 때면 늘 얼버무렸다. 내 남편 데이비드를 만나기 전까지는 나는 가족 모임이나 연말에 아무도 집에 데려가지 않았다. 사실 나는 가족들 중 유일한 ‘싱글’이었고, 명절에 우리 가족의 작은 집에 모일 때면 나는 소파에서 자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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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에 할머니가 보내주신 크리스마스 장식 용품 상자를 받았다. 살림을 줄이고 계셨는데 버리기는 싫으셨던 것이다. 그 중에는 내가 여러 해에 걸쳐 할머니나 할아버지께 드린 물건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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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에 에릭의 할머니가 보낸 크리스마스 장식. 지난 1998년에 에릭이 할머니에게 선물한 것이다

할머니는 사랑스러운 메모를 적어 함께 보내셨다. 나는 할머니에게 공식적으로 커밍아웃을 한 적은 없다. 내 이모들 중에는 여러 해 동안 ‘특별한 친구’를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할머니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할머니가 내가 게이라는 걸 알고 계시다는 건 가족들을 통해서 들었지만, 우리는 그 주제는 피했다. 찾아뵐 때면 얼버무렸고, 내 연애 생활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중성 대명사를 썼다.

추수감사절에 보내신 메모에서 할머니는 컴퓨터도 없고, 인터넷도 안 쓰고, ‘페이스북’도 안 하지만, 데비 고모가 내 결혼식에 대해 들려주었다고 쓰셨다. 할머니는 내 소식이 그리웠다고 하셨다. 솔직히 나는 데이비드를 만난 이후로는 작년에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낸 게 전부였다. 데이비드를 만나기 전에는 매달 한 번 정도는 편지를 쓰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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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가 내 삶에서 너무나 중요한 부분이 되어, 나는 데이비드 이야기를 하지 않고 할머니에게 뭔가를 적어 보낼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의 메모를 읽고 나서 나는 이를 악물고 말씀을 드려야 할 때가 되었다고 결심했다. 더 이상 숨을 수는 없다. 나는 우리 크리스마스 카드에 메모를 넣어 보냈다.

편지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할머니,

더 빨리 편지 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저는 브루클린에서 잘 지내고 있어요. 저 올해 여름에 결혼했어요. 결혼식은 아주 조촐했고 가까운 친구들, 엄마 아빠, 형제 자매들만 초대했어요. 내가 게이인 것, 게이 결혼에 대해 할머니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몰랐어요. 엄마, 아빠, 우리 가족에게 있어 편한 일은 아니라는 걸 알아요. 로체스터에서 나이지리아 남자랑 결혼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그들이 아니라 나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결심했어요. 데이비드는 사회복지사고 가끔 모델로 일해요. 저는 일 외에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데이비드와 함께 쇼에 자주 가요. 편지 더 자주 드릴게요. 크리스마스 선물은 회사에서 할머니에게 바로 보내도록 주문했으니 곧 받으실 거예요.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뉴 이어

사랑해요,

에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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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과 데이비드가 할머니에게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

내 새 성도 적었다. 봉투에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에 넣는 내 손은 떨렸다. 할머니는 어떻게 반응하실까? 내가 할머니에게 말씀드렸다는 걸 엄마 아빠가 알면 뭐라고 하실까. 두 분 모두 아직 내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었다.

할머니는 나를 실망스키지 않았다. 곧 답장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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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답장

에릭과 친구에게,

네가 보낸 선물 두 개를 12월 9일 금요일에 받았다. 아직 열어 보지 않았어. 크리스마스 선물은 크리스마스가 되어야 열어보거든. 정말 고맙다. 근처 사는 손주들보다 너에게서 더 자주 소식을 듣는다. 앤서니는 2주에 한 번 정도 전화하고, 10월에 결혼식 때문에 왔을 때 나를 만나러 왔어.

나는 컴퓨터가 없고, 이메일, 페이스북을 쓰지 않아서, 데비 고모가 페이스북에서 네 결혼식을 보고 얘기해줘서 알았어. 너희 엄마도 말이 없더구나. 하루는 네 아빠가 혼자 찾아왔어. 네 아빠는 모든 걸 다 받아들이고, 자기가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 별로 걱정하지 않는 것 같았어.

내가 85년을 사는 동안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뀌었고, 앞으로 일어날 변화는 상상도 못하겠어. 너희 할아버지가 11년 전에 세상을 뜨기 전까지 우리는 56년 동안 부부로 살았지. 신은 우리 모두를 다르게 만드셨고 받아들이기 더 힘든 일들이 있다.

여기선 잘 지내고 있고, 나는 매일 내 가족과 친구들에게 감사하며 지낸단다.

지금도 월요일에는 카드를, 화요일에는 셔플 보드를 하고 한 달에 두 번씩 춤을 춰. 아일랜드 가수를 보러 온타리오의 세인트 캐서린스에 버스를 타고 다녀왔단다. 어제는 버스를 타고 모리스버그에 가서 연극을 봤어.

여기에 눈이 3인치가 내려서 아침 8시쯤에 차를 옮겼어.

사랑, 행복, 기도를 담아, 할머니가.

추신 – 다시 한 번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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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추수감사절에 할머니가 에릭에게 보낸 천사 캔들 홀더

내가 들었던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처음 들었던 감정은 안도감이었던 것 같다. 눈물도 조금 났다. 내 삶이 어떤 사람들에겐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특히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다양성이 부족하고 다른 사람들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작은 마을에서 자란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 편지가 ‘에릭과 친구에게’로 시작하는 것만 봐도 눈물과 웃음이 났다. 돌아가신 고모에겐 여러 해 동안 함께 살았던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지금도 우리 가족의 중요한 부분인 그 ‘친구’를 사랑한다.

나는 이제 부모님을 만나러 갈 때 데이비드를 두고 갈 필요가 없고, 할머니가 오실 때 숨게 할 필요도 없어서 기쁘다. 데이비드가 나온 우리 가족 사진을 할머니에게 보낼 수도 있다. 데이비드를 만난 이후 이 모든 것이 내겐 골칫거리였다. 내 형제 자매들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우리는 늘 가족 사진을 찍어서 할머니께 한 장 보내드렸기 때문이다.

나는 거짓말하는 게 싫다. 숨는 게 싫다. 이제 다 공개할 수 있다.

그게 할머니가 주신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모두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난 이제 크리스마스 이브 예배에 참석하러 간다.

허핑턴포스트US의 A Special Gift From My Grandmother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