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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6일 12시 41분 KST

최초의 '유색인' 패션지 표지 모델이었던 치나 마차도가 87세의 나이로 사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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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모델과 패션 디렉터로 활동했던 치나 마차도가 86세의 나이로 뉴욕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패션계는 획기적인 아이콘 하나를 잃은 셈이다.

마차도는 1959년 최초로 하퍼스 바자의 표지를 장식한 유색인 모델로, 당시 그의 등장은 획기적이었다. 주요 미국 패션 잡지에 백인이 아닌 사람이 선 것은 최초였기 때문. 마차도의 아버지는 포르투갈 출신, 어머니는 인도인과 중국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W매거진의 에디터 스테파노 툰치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마차도는 독자들이 다른 문화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최초의 모델이었다"라고 전했다.

마차도는 지난 18일, 자신의 생일인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기 딱 일주일 전에 사망했다. 사망 당시 그녀의 곁에는 두 번째 남편인 리카르도 로싸와 두 딸, 그리고 두 손자가 있었다.

마차도는 1929년 중국 상해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노엘리 다수자 마차도. 모델으로서 그녀의 이름은 '치나(Chee-na)'로 발음되는데, 이는 남아메리카 지역에서 아시아 여성을 경멸적으로 부르는 표현인 '치니타(Chinita)'를 간략히 묘사한 것이다. 뉴욕 매거진에 따르면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은 일본의 침략이 이어지던 시기에 사업과 재산을 몰수당하고, 남아메리카로 이주하게 된다.

마차도의 이야기에는 이런 것들이 빠질 수 없다: 스페인 유명 투우사였던 루이스 도밍힌과의 열정적인 로맨스, 모델로서의 굉장한 경력, 하퍼스 바자의 패션 디렉터이자 동시에 여성 잡지 리어스의 공동 창작자, 뉴욕 타임즈가 밝힌 "업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모델" 등.

마차도의 경력은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됐다. 그녀는 처음에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인식하지 못했다. 2011년 마차도는 뉴욕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백인이 아니었기에 그 어떤 이미지도 없었다. 우리는 우리가 멋지다고 말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고 전했다. 또 "그래서 나는 내 자신이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마차도는 모델로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 중반 지방시와 발렌시아가는 그녀를 주요 모델로 삼았고, CNN에 따르면 마차도는 가장 많은 돈을 버는 모델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인종차별주의를 종종 겪었다. 마차도는 뉴욕 매거진에 이런 사실들은 대부분 숨겨졌다고 고백했다.

실제로 하퍼스 바자가 획기적인 표지를 공개했을 때 그 당시 출판사는 백인 여성이 모델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대했던 바 있다. 이에 사진 촬영을 담당한 포토그래퍼 리차드 아베돈이 마차도의 사진을 쓰지 않으면 잡지와 계약을 포기하겠다고 전했고, 마차도의 사진은 하퍼스 바자의 표지를 장식할 수 있었다. 아베돈은 20년이 지나도록 그 사건에 대해 마차도에게 말하지 않았다.

마차도는 1962년 모델 일에서 은퇴했으나 지난 2011년, 50년 만에 81세의 나이로 IMG 모엘과 계약을 맺었다. 같은 해 마차도는 뉴욕 매거진의 표지를 장식하고 '바니 뉴욕'의 가을 광고 캠페인에 출연했다. CNN은 마차도가 '보그'지에 패션을 확산시켰다고 보도했다.

이후 마차도는 뉴욕 매거진의 2016년 10월호, 보그 매거진의 10월호에 등장했다. 지난 달에는 레이밴 화보를 촬영했으며, 가장 최근에는 "활동하는 여성을 위한" 모직 코트와 망토의 브랜드 라인인 '치나' 출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마차도의 다채로운 삶과 장벽을 뛰어넘는 경력을 요약하자면, 그녀 스스로의 말로 가장 쉽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생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제가 사람들과 함께, 다른 모든 것들과 함께하는 방식이에요. 저는 살아남을 겁니다."

- W 매거진 (2010. 3. 1.)

허핑턴포스트US의 Honoring Life Of China Machado, First Non-White Model In A Major Magazine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