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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7일 12시 22분 KST

진시황이 유일하게 의심하지 않았던 장군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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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 춘추전국시대의 오랜 혼란을 정리한 인물이다. 천하를 통일하여 스스로 황제라 칭하였다. 전국시대 7개 나라 중 자신의 진나라 외에는 모두 멸망시켰기에 적도 그만큼 많았다. 자연히 의심이 넘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의견에 토를 다는 것도 싫어했다. 유가 사상가들의 책을 불 태우고 사람은 땅에 파 묻었다. 그의 부하는 늘 목숨을 걸고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진시황 밑에서 대군을 이끌면서 의심도 받지 않고 끝까지 권력을 누린 장군이 있다. 왕전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어떻게 처신을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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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왕전은 천하통일에 공을 여럿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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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가 전국 시대를 평정하고 제국을 세우는 데 왕전은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는 조나라 왕을 항복시키고, 조나라 땅을 평정해 진나라에 복속시켰다. 아울러 그 해 연나라가 형가를 보내 시황제를 죽이려 하자 왕전은 연나라를 공격해 평정하는 공을 세웠다.” (책 ‘남자의 인생’, 원재훈 저)

왕전은 공을 여럿 세운 장수였다. 진시황의 입장에선 소중하면서 경계해야 할 존재였다. 전쟁에서 공을 세우면 따르는 부하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왕전이 자신의 공을 내세우며 으스댔다면 진시황이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2. 왕전은 초나라 공격을 위해 60만 대군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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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의 시황제는 왕전과 당시 떠오르는 신예 장수 이신에게 초나라를 공략하는 데 군사가 얼마나 필요하냐고 물었다. 이신은 20만 명, 왕전은 60만 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왕은 …. 이신을 발탁했다. …. 왕전의 예견대로 이신은 대패했다. 다급해진 진나라 시황제는 버선발로 왕전에게 뛰어갔다. …. 왕은 장군에게 간절하게 부탁했고, 왕전은 마지못해 응하는 척하면서 결국 군사 60만 명을 취한다.” (책 ‘남자의 인생’, 원재훈 저)

왕전은 무리해서 자신의 기회를 챙기지 않았다. 결국 자기에게 기회가 돌아올 것을 알았다. 이신이 실패를 했기 때문에 진시황의 왕전에 대한 의지는 더욱 커졌다. 그만큼 진시황은 급했고 왕전은 유리한 입장에서 군대를 물려받았다.

3. 60만 대군을 이끄는 것은 목숨을 내놓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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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왕전은 전장으로 가면서 훌륭한 논밭과 택지, 정원과 연못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왕전은 시황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포악한 성격의 시황제는 다른 사람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을 믿고 대군을 맡겼다. 이때 권력에 아무런 뜻이 없다는 걸 각인시키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왕전에겐 이런 계산이 있었던 것이다. …. 뛰어난 장수로서 적을 대적하는 것보다 군주를 모시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다.” (책 ‘남자의 인생’, 원재훈 저)

역사 상 숱한 장군들이 왕들에게 끝내 버림 받는다. 믿음을 주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왕전은 그렇게 될 수 있음을 잘 알았다. 믿음을 주는 게 왜 중요한지, 어떻게 해야 믿음을 줄 수 있는지를 알았다. 단지 전쟁터에서 잘 싸우는 것만으로는 왕에게 100% 신뢰를 줄 수 없음을 깨닫고 있었다.

4. 꾀 많은 처세술로 자신의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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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전쟁터에서도 다섯 차례나 사람을 보내 재산을 달라고 요구했다. 자신은 재산이 있으면 아무런 사심 없이 살아갈 사람이라는 것을 계속 확인시켜준 것이다. 시황제는 자기가 보기에는 쌀 한 톨에 불과한 재산을 원하는 대장군의 모습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하면서 그에 대한 경계를 풀었다. …. 왕전은 이신을 대신해 초나라를 공격한다. 왕전의 전략대로 전쟁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왕전은 초나라를 정복해 왕 부추를 사로잡았다. …. 더불어 시황제에게 자신은 권력에 아무런 뜻이 없음을 확인시킨 덕분에 왕전은 한 재산 챙겨서 편안한 말년을 보내고 천수를 누렸다. 시황제는 재위 26년에 중국을 통일했다. 이때 왕전과 그 아들의 공로가 단연 돋보였다.”(책 ‘남자의 인생’, 원재훈 저)

왕전은 비굴해 보이는 전략을 택했다. 특히 적은 재산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였다. 천하를 노리고 큰 권력을 잡는 것이 목표였던 진시황에게는 이런 왕전의 태도가 민망스러울 정도였다. 그 덕분에 왕전은 편안한 말년을 보냈다. 사마천은 왕전의 죄악이 전쟁에서 자행한 살상이라고 지적한다. 어찌 되었든 그는 군인이었고 당시는 대혼란기였다. 그것으로 죄가 조금 덜어질지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처세 하나만큼은 최고였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