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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1일 12시 47분 KST

호텔 이름이 제목인 소설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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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이라는 공간은 꽤 특수하다. 우리는 특별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그 곳을 가지만, ‘집’과 같은 안락함을 바라기도 한다. 일탈적 공간이면서 일상의 연장이다. 게다가 누구나 사용할 수 있고,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일정 공간을 공유하기 때문에 열린 공간이지만, 객실로 들어가면 적어도 숙박하는 기간 내에는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는 공간이 된다. 이 역설적인 상황이 ‘호텔’이라는 공간을 더욱 매력적이고 신비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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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구성의 3요소로 우리는 인물, 사건, 배경을 든다. 그 중 배경은 특히 소설의 분위기를 구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때로는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소설의 분위기 형성은 물론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호텔’이라는 특수하고 구체적인 공간적 배경을 통해 형상화한 작품들을 소개한다.

1. 우리는 누구나 가면을 쓰고 있다, ‘매스커레이드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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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실감하는 건데 호텔이라는 곳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에요. 이제는 다들 뭔가 딴 속셈들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에요.” 그의 말에 나오미는 얼굴이 빙긋이 풀어졌다. “예전에 선배에게 들은 말이 있어요. 호텔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손님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다, 그걸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라고요.” “가면……” “호텔리어는 손님의 맨얼굴이 훤히 보여도 그 가면을 존중해드려야 해요. 결코 그걸 벗기려고 해서는 안 되죠. 어떤 의미에서 손님들은 가면무도회를 즐기기 위해 호텔을 찾으시는 거니까요.” … 호텔 안에서 가면을 쏘고 있는 것은 손님들뿐만이 아니다. 새삼 생각했다.”(책 ‘매스커레이드 호텔’, 히가시노 게이고 저)

제목의 ‘매스커레이드(masquerade)는 ‘가장(假裝)’, ‘가식(假飾)’이라는 뜻이면서, ‘가면 무도회’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책은 도쿄 시내의 한 특급호텔(코르테시아 도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왜 호텔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았을까? 작가는 인간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있다는 전제 하에 그러한 인간의 특성이 극대화 되는 공간이 호텔이라고 생각했다. 평소와는 다른, 혹은 평소에는 억누르고 있던 본성이 드러나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가짜 이름이나 주소를 사용할 수 있고, 객실 내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아주 내밀하기 때문이다.

도쿄 시내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살인 사건. 사건들의 연쇄성에 대해 수사하던 형사들은 이후의 살인사건이 바로 이 ‘코르테시아 호텔’에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을 발견한다. 형사들은 이 호텔에서 ‘잠입수사’를 진행하게 되고, 호텔을 찾는 사람들의 가면을 벗겨 범인을 찾아야 하는 형사 ‘닛타’와 고객의 가면 쓴 모습을 지켜야 하는 호텔리어 ‘나오미’의 만남, 갈등, 협력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2. 당신의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드립니다, ‘하트브레이크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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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은 조용했다. 입구 맞은편 창문은 거리를 향해 나 있지만 커튼이 쳐 있다. 커튼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통해 수많은 먼지 입자들이 보였다. 안쪽에는 자물쇠가 세 개나 달려 있다. … 옅은 먼지 냄새가 났다. 언제 마지막으로 사람이 머물렀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 세상의 모든 하트브레이크 호텔은 연결되어 있다. 콘래드가 근 10년 동안 준비하고 있다는 꿈의 영화, '하트브레이크 호텔'을 완성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 ‘하트브레이크 호텔 – 당신의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드립니다.’ 광고 카피 한 번 촌스럽다. 요란한 핑크빛으로 장식된 문구 아래에는 통나무로 된 펜션이 우거진 숲 속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주는 건 사립탐정이 하는 일이 아닐까?”(책 ‘하트브레이크 호텔’, 서진 저)

연작 소설이라고 해야 할 지, 장편 소설이라고 해야 할 지 애매한 부분이 있다. 각 장의 이야기는 등장인물이나 사건, 시공간적 배경이 상이하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있다. 바로 ‘하트브레이크 호텔’. 부산, 도쿄, 샌프란시스코, 마이애미 등 여러 도시를 배경으로 이야기들이 진행되지만 모두 이야기의 중심은 ‘하트브레이크 호텔’이라는 이름을 가진 허름한 숙박시설이다.

단순히 공간의 이름과 외관만을 통일시킨 것은 아니다. 각 장을 읽다 보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역할을 하는 ‘황령산 드라이브’를 제외하고) 독립적 이야기라는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결국 ‘사랑’과 ‘열망’이라는 키워드로 묶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랑’과 ‘열망’이 발현되는 장소가 바로 ‘하트브레이크 호텔’이다. 사랑에 대해 열망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기억에 남을 정도로 강렬한 경험은 아마 호텔처럼, 타인은 보지 못하는 아주 은밀한 공간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이 작품의 이야기들은 은밀하다 못해 신비감을 줄 정도여서, 이 책을 읽는 당신은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꽤 놀라게 된다.

3. 당신은 무엇을 기다리나요, ‘록스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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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지중해 서부에 위치한 마요르카 섬 동쪽 끝자락에 있는 그녀의 작은 호텔을 ‘록스’라고 불렀다. 숙박업을 시작하고 전 세계 투숙객의 사랑을 받은 지도 어느덧 50년이 넘었다. 덕분에 루루는 언제나 생기가 넘쳤고 행복을 느끼며 지냈다. … “여러분처럼 진실하고 소중한 친구를 뒀다니 제가 굉장한 행운을 타고난 모양이에요. 이중에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매년 잊지 않고 록스를 찾아주신 분들도 있습니다. 제가 이 섬에 온 이후로, 평생을 함께 해온 친구들이죠.” … 물론 루루의 친구 중에서는 인생의 어려움을 겪게 되어 여름에 몇 주간을 록스의 방을 차지한 채 밥을 먹고 심지어 주렁주렁 아이들까지 끌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루루는 그런 어려운 친구들에게서는 한사코 돈을 받지 않았다.”(책 ‘록스 호텔’, 피터 니콜스 저)

특이한 구성의 작품이다. 보통 소설은 시간적 순서에 따르거나, 혹은 회상이 중간중간 들어가는 정도로 구성이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은 10년 정도의 주기를 두고 과거로 돌아가는 구성을 취한다. 즉, ‘현재’가 가장 첫 부분에 나오는 것이다. 정열적으로 사랑했지만 순간의 오해로 헤어지게 된 ‘제럴드’와 ‘루루’가 오랜만에 마주치고, 다투다 사고를 당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요르카 섬에서 제럴드와 루루는 만나 사랑에 빠졌고, 헤어진 후에도 서로를 찾지는 않지만 마주칠 수 있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각자 가정을 이루고 몇 십 년을 보낸다. 두 사람이 헤어지고 루루는 ‘록스’ 운영을 시작했고, 그 호텔은 활발하고 사람 만나기 좋아하는 루루의 성격을 반영하듯 ‘열린 공간’이었다. 루루의 친구들이 다니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장소이기도 하고, 마을의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놀러 가는 곳이기도 하다. 루루는 그렇게 열려있는 공간, 호텔 록스에서 누구를 기다린 것일까. 제럴드는 왜 딸과 함께 영국으로 가지 않았을까? 그 상상은 독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