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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03일 07시 16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03일 07시 16분 KST

김제동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내란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

한겨레

[토요판] 커버스토리

이진순의 열림, ‘만민공동회’ 김제동

김제동이 작정하고 할 말을 쏟아냈다. 다시는 국민의 주권을 정치엘리트나 소수 기득권층에게 위임할 수 없으며, ‘반시민행위특별처벌위원회’라도 만들어서 특권남용과 부정부패에 대한 발본색원에 나서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서울 서래마을 그의 자택에서 다섯 시간에 걸쳐 인터뷰에 응한 김제동은, 이 시국이 헌법정신에 입각해서 대한민국을 새롭게 설계하는 데 시민들이 직접 주체로 나서야 하는 혁명의 시기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가 최근 출간한 책 <그럴 때 있으시죠?>에 김제동이 남긴 서명은 ‘2016년, 아직 모든 것이 사라지지는 않은 달’이란 문구이다. 사라졌어야 할 모든 것이 또 한 번의 변신을 통해 살아남으려 안간힘 쓰는 달, 순리대로 변화하기를 바라던 순진한 기대와 믿음은 여지없이 배반당했으나 아직 희망의 불씨는 뜨겁게 살아남아 사라지지 않은 달. 그 둘 중 무엇이 더 오래 살아남을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2016년 12월 ‘개와 늑대의 시간’, 아직 모든 것이 사라지지 않은 달이다.

큰 물은 가장 낮은 곳에서 모인다. 큰 물은 선두를 다투지 않고 자리를 탐하지 않는다. 먼저 내달리던 물이 빈 웅덩이를 채우면 뒷물이 그 곁을 스치며 새로운 선두가 된다. 부드러운 힘으로 단단한 것들을 깨고 갈아,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거대하고 육중한 존재로 완성된다.

한 달이 넘도록 주말마다 광장을 채우는 시민들의 촛불이 바로 그 물과 같다. 사람들은 더 많은 촛불들이 올 수 있도록 촘촘히 자신의 자리를 좁히고 다른 이에게 설 곳을 내준다. 입추의 여지가 없는 대열 속에서도 유모차 탄 아기나 휠체어 탄 장애인이 지나갈 길을 열어 주고, 촛농이 다른 이의 옷에 떨어지지 않도록 자신의 장갑으로 감싼다.

때로 두서없고 장황한 연설, 진부하거나 생소한 주장이 나와도 시민들은 촛불을 높이 들어 변함없는 환호와 격려를 보낸다. 형편없이 갈라지는 가수의 음성에도 뜨겁게 화답하고 목소리를 합한다. 무대 스크린의 노랫말이 멀어서 보이지도 않는데, 한마디도 따라 부를 수 없는 노래에 사람들은 흥얼흥얼 박자를 맞춘다. 행사가 지루하고 불편하고 어설퍼도 사람들은 쉬 자리를 뜨지 않는다. 그들은 구경 삼아 놀러 나온 게 아니니까. 그들은 이 거대한 촛불바다의 기획자이고 관리자이며 홍보요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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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장소인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제동씨와 이진순씨가 이야기를 나누며 인근의 김제동씨 자택으로 걸어가고 있다.

김제동(42)의 ‘만민공동회’는 바닥을 지키는 촛불시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토론회이다. 미리 예정된 연사와 뮤지션들의 무대로 꾸며지는 일반 집회와 달리, 김제동의 토론회는 현장에서 즉석으로 발언자를 정한다. 무대를 비워놓은 채 김제동은 바닥에 쭈그려 앉은 시민들 곁으로 다가가 말을 건넨다. 각양각색인 그들 사연에 맞장구를 치고, 변죽을 울리며, 좌중의 경청을 유도한다.

“저는 이번 사태를 보면서 오히려 이런 생각을 합니다. ‘3년 반 동안 이 땅의 진짜 대통령이 누구인지 밝혀졌다.’ 위에 있는 사람들이 아무도 우리에게 신경을 써주지 않았음에도 대한민국이 3년 반 동안 이어졌다는 건, 이 땅의 주인이 시민 여러분이었다는 게 증명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국가원수에 준하는 박수,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2016. 11.12. 광화문광장에서 김제동)

김제동을 만나고 싶었다. 전문 방송인, 유명 연예인 김제동이 아니라, 분노와 투지로 촛불 대열에 합류한 ‘시민 김제동’을 나는 만나고 싶었다. 그가 시민의 한 사람으로 촛불광장에 서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가 보는 촛불시민들의 가슴속 동력은 무엇인지, 촛불항쟁의 도도한 물결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인지 그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지난달 23일,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 그의 자택에서 다섯 시간에 걸쳐 긴 대화를 나눴다.

-지난 12일 오후에 광화문광장에서 만민공동회 진행하시는 모습 잘 봤습니다. 그렇게 토론회 진행하고 나서 그 이후엔 어디 계셨습니까?

“거기서 하루 종일 있었죠.”

-그냥 인파 속에서 촛불집회 참석하신 거예요?

“네. 그럼요.”

-진행자로서가 아니라, 군중의 일원이 돼서 촛불집회에 참여할 때는 어떤 느낌이세요? 솔직히 좀 지루하지 않나요?(웃음)

“지금 행사 준비하시는 분들 노고도 굉장하죠. 근데 요즘엔 발언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니까 사람들의 목소리를 조금 더 내주면 좋겠다 싶어요. 저도 사실 친구들, 동네 후배들하고 앉아 있어 보면, 되게 춥고 되게 허리 아프고 엉덩이 아프거든요. 거기 앉아 있는 이들이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아야 할 사람, 계몽을 받아야 할 사람은 아니잖아요. 조명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 무대가 아니라, 이분들 계신 곳이 무대죠. 침묵도 말이라고 하잖아요. 그 사람들이 서 있는 모습, 앉아 있는 모습, 그 말없음 자체가 그분들의 말이고 마음인 거죠. 그걸 잘 헤아려야 할 것 같아요.”

-방송에 데뷔한 게 2002년도니까 햇수로 15년째 되시는군요. 인기 진행자에서 이른바 소셜테이너(사회적 발언 하는 연예인)로 찍혔다가 요즘엔 시민 의견을 대변하는 오피니언 리더가 되셨어요. 최근엔 전국 100여 군데에서 ‘김제동클럽’이란 청년네트워크 모임도 시작했고요. 자신의 주된 역할과 정체성은 무어라고 생각하세요?

“오피니언 리더라는 말 전 별로 안좋아해요. 여론을 선도하겠다는 발상을 하는 순간 사회자로서 낙제라고 전 생각해요.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서 그 의견을 정리해주고, ‘이게 맞냐?’고 물어보고….”

-흥분하거나 술 취한 발언자가 나서서 얘기할 때도 그렇게 정리해 주시는 걸 봤어요.

“어떤 한 사람의 선지자가 이야기하는 것이 진리가 아니라, 대화하고 토론하는 과정 자체가 진리거든요. 그게 민주주의 핵심이고요. 저의 역할은, 말하는 사람들(스피커)의 목소리를 증폭시켜내는 앰프 스피커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말마다 만민공동회라는 이름으로 촛불집회 현장에서 토론회를 이끌어가고 있는데, 김제동씨가 여기에 사회자로 섭외된 게 아니라, 본인이 직접 주관하는 토론회죠?

“네.”

-지난번 사회 보신 만민공동회에서도 ‘오늘이 장사 대목인데 생업을 접고 왔다’고 한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김제동씨에게도 요즘이 최고로 바쁜 철 아닌가요? 전문진행자에겐 지금 같은 연말 시즌이 1년 중 가장 대목일 텐데. 생업을 접고 이런 돈 안 되는 행사를 계속하시는 이유가 뭐예요?

“매년 연말 토크콘서트를 여는데, 올해엔 만민공동회로 대체하고 있는 거죠. 이걸 ‘생업 포기’라고 말하긴 어려운 것이, 제가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웃음) 지금까지도 많이 벌었고 주중 행사에서도 많이 받습니다. 생업이라고 말하기엔 염치없죠. 우리나라 48~49%가 월급 200만원이 안 된대요. 소득 하위계층들은 실질소득이 80만원 미만이고요.”

-특이하시네요.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순탄하게 운이 뻗었을 경우를 상상하면서 현재의 자기와 비교하잖아요. ‘아, 그때 그 집을 안 팔았다면’ ‘그때 거기서 잘리지만 않았더라면…’ 하고요. 2009년 고 노무현 대통령 노제 사회를 본 이후, 맡고 있던 방송에서 하차하거나 예정되었던 프로그램이 무산되었는데, 아, 그때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하고 생각해 본 적 없어요?

“그걸 피해받았다고 얘기할 자격은 없습니다. 계속해서 마이크 들고 무대에 섰고 돈도 벌었고요. 제가 어떤 적극적 용기나 신념을 가진 사람은 아니에요. 일제 때 태어났다면 적극적 친일을 하진 않았겠지만, 적극적 항일을 했을 가능성도 좀 떨어져요.(웃음) 우리 조상 중에 보면, 장터에서 누가 짐 맡겼는데 순사가 다가와서 갑자기 짐보따리 풀라고 해 풀어보니 그 안에서 태극기 나와서 한 3일씩 구치소 들어갔다가 나오고, 이런 분들 있어요. 그런데 해방되고 나면 다 독립운동했다고 그러잖아요. 고초를 겪었다고. 실질적으론 독립운동한 것도 아닌데. 제가 ‘딱 그 정도 인물’인 거예요.”

-‘딱 그 정도 인물’은 아닌 것 같은데요.(웃음) 방송인이면서 방송을 할 수 없는 것만큼 큰 억압이 있을까요? 그런 압박에 어쨌든 고개 숙이지 않은 거잖아요.

“하이고! 우리 헌법 12조 2항에 보면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이렇게 되어 있잖아요. 그거 한줄 넣으려고 얼마나 많은 선배 시민들이 고문을 받았겠어요? 그런 보이지 않는 음덕이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 사실 면목 없는 거죠. 아마 일제 때처럼 잡아가거나 고문했으면 전 이거 안 했을 거예요.(웃음) ‘딱 그 정도 인간’이라니까요.(웃음)”

김제동은 2009년 이후 단단히 미운털이 박힌 사람이다. 2012년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민간인 불법사찰을 지시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김제동이 사찰 대상자 리스트에 올라 있음이 확인되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그가 투표소 밖에서 인증샷을 찍은 것을 두고선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져서, 평범한 투표 격려 사진에 대해 과도한 사법조치라는 비난이 일었다. 올해 8월 성주에서 사드 배치에 대한 반대 연설을 한 것도 논란이 되었다. 김제동은 “나더러 ‘종북’이라고 하는데, 나는 ‘경북’이다!”라는 말로 상투적인 이념공세를 조롱했다. 그는 통쾌한 ‘핵사이다’ 발언으로 사람들의 막힌 가슴을 뚫어주지만, 그만큼 구설이 끊이지 않는다.

-성주 발언 이후 10월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백승주 의원이 김제동씨를 증인으로 출석요구 하는 해프닝이 있었죠. 결국 증인 채택은 무산되었지만, 김제동씨가 방송 중에 ‘군사령관 부인을 아주머니로 불렀다가 영창을 갔다’고 발언한 걸 두고 군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한동안 시비가 붙었어요. 그 이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난 부를 테면 불러보라고 했죠. 더 얘기가 없었어요. 제가 그 건에 대해서 시시콜콜 답하지 않은 건, 나름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그런 질문에 일일이 대답하기 시작하면, 우리가 풍자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사실을 적시해 해명해야 하는 전례로 남을 수 있어요. 양반탈 쓰고 광대가 춤출 때, 매번 광대의 대사가 참인지 거짓인지 증명해야 하나요? 그럼 풍자는 못 하는 거죠.”

-결국 논쟁은 흐지부지된 건가요?

“많은 예비역들이 당시 군기교육대든 영창이든 유치장이든, 부당한 처우가 비일비재했다는 점을 증언해 주면서, 제게 공감을 표시해 주셨죠.”

김제동은 1974년생, 경북 영천에서 누나 다섯을 위로 하고 막내 외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가 백일도 되기 전 돌아가셨다. 가난한 집 외아들로 공장 다니는 누나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군 입대 후 문선대에서 활동하고 전역 후에는 레크리에이션 강사, 대구 야구장 아나운서 등을 하다가 2002년 <윤도현의 러브레터> 보조진행자로 방송에 첫선을 보였다.

-제가 이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김제동씨 데뷔 때부터 최근까지 주요 작품이나 강연을 유튜브로 열심히 뒤져가며 며칠을 지새웠습니다. 저로서는 ‘김제동이란 사람이 방송계 입문 이후, 과연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했을까?’가 굉장히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상당히 뜻밖의 발견을 하게 되었어요.

“(빙그레 웃으며) 뭐죠? 궁금하네요.”

-찬찬히 살펴보니, 김제동씨는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크게 변한 게 없더라고요. 하하하!

“동의합니다.(웃음)”

-저 같은 시청자 입장에서, 김제동이란 사람에 대한 생각이, 처음엔 재치 있는 입담꾼으로 알았다가, 점점 인간적인 면도 있네, 그러다가 아, 이분이 정치 얘기도 하네… 하면서 변해왔을 뿐이지, 정작 김제동씨 스스로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는 거예요. 무대조명 아래 서기보다는 관객 곁으로 다가가 말을 건네는 게 훨씬 편한 사람, 자신을 낮추면서 상대의 마음을 여는 대화 코드, 상처받은 이들에게 깊이 공명하는 공감능력. 이런 건 그냥 타고난 건가요? 어떻게 살면 그렇게 돼요?

“(한동안 침묵) 콤플렉스가 되게 많고요… 그냥 떠오르는 것대로 얘기하자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그 충격으로 젖이 안 나왔대요. 백일도 되기 전부터 옆집 아줌마 젖을 먹으며 자랐고요, 태생적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살았다는 무의식이 깊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자라서는 공장 다니는 누나들 보살핌을 받았고요.”

누군가의 헌신으로 자라왔다는 심리적 부채감과 엄한 어머니 밑에서 억눌린 자존감 때문일까. 김제동은 예민하고 주눅 든 소년이었다. 네다섯살 때, 타고 놀던 플라스틱 말이 부서져서 못 쓰게 되자 그걸 껴안고 목 놓아 울던 아이는 다시는 고기를 입에 대지 않는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자신에 대한 지나친 혹독함과 우울감은 그의 삶을 오래도록 지배했지만, 그것은 동시에 그가 상처받은 사람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커다란 자산이 되었다.

-얼마 전 김제동씨가 진행하는 <톡투유>에서, ‘자살 충동을 이겨내고 음악에 마음을 붙였다’는 한 남학생에게 ‘고맙다. 참 고맙다’를 거듭 말하시는 걸 보고는 울컥했어요. 그 목소리에서 진정성이 느껴졌거든요. 비슷한 경험이 있으신 거죠?

“물론이죠. 제가 돈도 빼앗기고 지질하고 비루한 아이였기 때문에, 인간의 근원적 고귀함이나 존엄을 다른 사람들에게서 발견할 때 내 안의 고귀함이나 존엄도 다시 생각하게 돼요. 저는 정말로, 이런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우리 동네 알바하는 친구 6500원 받고 알바 세 개 하는데 ‘시급 만원이 되면 어떨 것 같으냐?’니까 ‘그러면 되~게 행복할 것’ 같대요. 아니, 이런 거 행복하게 못 해줄 이유가 있나요? 자영업자들은 돈 없으니까 이런 친구들 시급을 국가에서 4천원씩만 보조해 주면 그 돈이 다 어디 가겠어요? 동네 삼겹살집 가서 소주 먹고 쓸 거 아녜요? 나라에서 몇 조 단위로 날려버리면서, 이 친구들 행복하게 해주기가 그리 어려운가요?”

-혹시 대학 다닐 때 운동권이었나요?(웃음)

“시위 딱 한 번 했어요.”

-언제요?

“우리 학교 매점 우동 값 낮출 때. 그때 아~무 일도 안 했기 때문에 지금 벌받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웃음)”

-그런데 헌법을 어떻게 그렇게 줄줄이 외우세요? 집회에서도 헌법을 전문부터 시작해서 줄줄이 조항마다 외면서 설명하시던데요. 혹시 사법시험 준비한 적 있어요?

“아뇨. 최근에 헌법 처음 봤어요. 문유석 판사 칼럼 중에 헌법의 아름다움에 대해 쓴 글이 있었어요. 그래서 <헌법사용설명서>란 책을 구해서 처음 읽어봤는데… 헌법이란 게 되게 두껍고 재미없을 줄 알았어요. 그게 어딨더라? 제가 요즘도 갖고 다니는데.”

그가 냉큼 일어나 가방을 뒤지더니 손바닥 크기의 작은 헌법책을 꺼내놓았다. 여러 번 펼쳐본 듯, 둥글게 말리고 손때가 묻은 포켓판 헌법이었다.

-빨간색 표지에, 꼭 무슨 불온 삐라(전단) 같네요.(웃음)

“이래 뵈어도 이게 헌법재판소에서 나온 거예요. 요즘엔 예산 부족으로 안 나온다고 들었어요. 최순실씨가 이런 걸 했어야 했는데.(웃음) 여하튼 이래서 헌법을 읽어봤는데, 일단 전문(前文) 전체가 단 한 문장으로 되어 있으면서, 앞뒤 대구가 착 맞아떨어지는 게 시처럼 감동적이었고요. 제일 가슴을 때렸던 건 그거였어요. 처음 시작하는 문구.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대한민국으로 시작할 줄 알았거든요.”

-아, 정말 그렇군요. ‘우리 대한국민은…’

“개별적 존재인 국민을 향한 주권선언같이 들렸어요. 우리 개인의 존재가 이런 유구한 역사와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니, 거지로 돌아다니면서 살다가 상속문서 발견한 공주나 왕자가 된 느낌이랄까. 굉장히 깊은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어요. 그 전문의 마지막 구절엔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란 말이 들어가요. 그 대목에서 세월호 아이들이 떠올랐어요. 우리와 아이들의 안전을 확보해 주는 것, 그것이 헌법의 목표구나….”

-개헌해서 권력배분하자는 정치인들도 우리 헌법을 그렇게 유심히 봤을까요?

“130조까지 있는 헌법 중에서 ‘권력’이란 단어는 1조 2항에 딱 한번 나와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권력’이란 말은 국민한테 짝지어서 딱 한번 그렇게 나오고요, 나머지는 다 ‘권한’이에요. 사법부의 권한, 대통령의 권한, 행정부의 권한…. 그러니 ‘권력을 잡는다’, ‘권력 교체’라는 말 자체가 다 반헌법적인 표현인 거예요. 헌법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전 헌법의 최종 해석권자는 늘 국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왜냐면 헌법의 주인이 명시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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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아니고요?

“국민 개개인이 헌법에 대해서 해석을 하면, 헌법재판소에서 그 민의를 모아서 최종 해석을 내리는 거라고 전 생각해요. 헌법은 국민들을 위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남긴 든든한 상속문서죠. 시민들의 든든한 빽!”

김제동은 헌법 얘기가 나오면 말이 길어진다고 스스로 경계를 하면서도, 집안족보 자랑하는 유림보다도 더 열렬하게, 성경의 주옥같은 구절에 매료된 사제보다도 더 신실하게 헌법 조문별로 의미와 가치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헌법의 모든 조항을 보지 않고 읊조렸고 조항별 순서와 구성이 왜 그런지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했다. 김제동의 헌법특강 덕에 나는 헌법 23조 재산권이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해야 한다”는 단서조항이 붙는 권리라는 점, 37조 1항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는 포괄적 보호규정이 있단 사실을 배웠다. 헌법에 대해 내가 들은 강의 중 가장 열정적이고 희열에 찬 강의였다.

-요즘 연설 때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내란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던데,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시죠?

형법 87조에서 국헌문란행위는 내란죄라고 되어 있어요. 국헌문란이란 뭐냐? ‘헌법과 법률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서 그 권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에요. 이번 사태를 보세요. 모든 행정부서에 들어가서 그 권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고 그 일가에 의해서만 권능을 행사하게 했잖아요. 대체 이게 내란죄가 아니면 뭐가 내란죄라는 거예요? 종편 나와서 그렇게 떠들던 법학전문가들은 다 어디 갔죠? (프랑스혁명에서) 루이 16세가 반역죄잖아요. 국헌문란에 의한 내란죄라고 봅니다. 탄핵소추는 그래서 마땅하고요. 사법처리해야죠.”

-그런데 지금 많은 국민들이 갑갑해하는 문제는, 대통령과 청와대뿐만 아니라 행정부 전체, 그리고 소위 국민의 대의기구라고 하는 입법부조차도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잖아요? 대한민국 사회에 오랫동안 누적된 전반적인 구시대적 특권 체제를 깨버리지 못한다면, 무슨 변화가 있을까 싶은데요.

“그래서 이번이 정말로 좋은 기회라니까요. 이번만큼 적기가 없어요. 지금 정치권만 합의를 못 했지, 이렇게 모든 시민들이 압도적 지지로 어떤 한 사안에 대해 합의한 일이 대통령 직선제 이후 있었나요? 지금이야말로, 국회와 시민사회가 특위라도 구성해서 과거 반민특위에서 청산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기회라고 봐요. 우리가 반민특위 때 처벌을 제대로 못 했기 때문에, 난파하는 배에서 쥐새끼들 먼저 도망치듯이 배만 바꾸면서 여러 정부를 거쳐 이때껏 그들이 특권을 연장해왔잖아요. 저는 이번에 반민특위에 준하는 방식으로, 반시민행위특별처벌위원회 같은 걸 만들어서 불법을 저지른 사람이나 기관은 반드시 거기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고 봐요.”

-결국은 해결 주체의 문제인데 재벌이나 부패 언론처럼 뿌리 깊은 특권비리 공조세력에 손댈 정당이 있을까요?

“기존 정치권이 제대로 못하고 있죠. 그래서 예전 같으면 ‘아, 얘들 다 똑같아’ 하는 정치혐오에 빠졌을 텐데 이젠 좀 달라지는 것 같아요. ‘너희가 안 하면 우리가 해야겠네!’ 하고 시민들이 직접 뛰어들 마음을 먹어야죠.”

-그건 혁명에 준하는 상황에서나 통할 수 있는 얘깁니다.

“‘혁명에 준하는’ 상황이 아니에요. ‘혁명’이에요. 혁명이 별거예요? 우리 농사짓다가 지력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한해 농사 쉬거나 확 갈아엎어야죠. 그리고 봄 준비 어떻게 해요? 겨울에 논둑에 불을 질러요. 창조적 파괴라는 게 그런 거잖아요. 이번 겨울은 부패한 기득권 세력의 말기, 각 개인이 가지는 존엄과 자부심이 한껏 드러나는 계절이 될 거라고 믿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일주일 뒤,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가 있었다. 그에게 소감을 묻는 추가 질문을 보냈다. 잠시 후,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번 토요일도 쉬기는 글렀어요.

“주7일 근무해야죠. 국민을 투명인간 취급하네요.”

-대통령은 물러날 의지가 없단 걸로 해석해야겠죠?

“‘물러날 의지가 있다’, ‘없다’ 해석을 두고 혼란이 일어나길 바라는 거 아녜요? 그런 분열이 목표겠죠.”

-실제로 정당들은 그 의도대로 갈팡질팡하고 있어요.

“국민이 무어라 하든, 해결은 자기들 몫이라고 믿는 엘리트 정치권의 의식이죠. 대통령은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게 목표고, 국회의원은 자기 배지를 지키는 게 목표고. 그 점에 관해선 의견 일치네요. 하이고, 사람들 다 죽고 대통령 하면 뭐할라꼬? 그래서 국회의원 하면 뭐할낀데? 그게 대체 뭐라고! 내 참!”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요?

“유모차 타고 나오는 아이들, 교복 입고 나오는 아이들을 보세요. 아이들이 어른들한테 지금 묻는 거예요. “우리가 나갈 세상을 또 이렇게 만들 거냐?”고요. 우리는 물러가고 그 아이들이 살 세상인데. 적어도 그 아이들이 꿈꾸는 세상의 초석은 닦아주고 가야죠. 이게 결국은… (한동안 침묵한 뒤) 세월호의 아이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후배들이 살 세상도 그리 만들 거냐?’ 전 그게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의 질문에 책임 있는 답을 내놓는 것. 어른 대접 받을 자격도 없지만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 아닐까요?”

녹취 심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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