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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05일 09시 01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05일 09시 01분 KST

팬티와 관련된 몇 가지 이상한 사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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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티는 중요하다. 농담 같겠지만 사실이다. 단순히 위생상 이유만은 아니다. 팬티가 오직 위생을 위한 것이었다면, 우리 군대는 63만여 장병들에게 보급하는 팬티에 굳이 '브레이브 맨'이란 명칭을 붙이진 않았을 것이다. 또, 세상에 그렇게 다양한 디자인의 팬티가 나오는 일 또한 없었을 것이다. 팬티는 지극히 문화적인 상품이며, 동시에 정치 경제적인 맥락을 가지고 있다. '팬티 인문학'의 저자 요네하라 마리가 "속옷은, 특히 하반신에 입는 속옷은 사회와 개인, 집단과 개인, 개인과 개인 사이를 분리하는 최후의 물리적 장벽이다."(책 '팬티인문학', 요네하라 마리 저)라고 주장한 이유다. 사회적 변화가 한 개인의 가장 내밀한 영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팬티'를 매개체로 벌어진 역사적 사례들을 통해 알아보았다. 글을 다 읽고 난 후, 어쩌면 새삼스레 당신의 겉옷 속을 확인해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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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초의 팬티는 '끈 팬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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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는 맛있어 보이고 아름다운 그 열매를 따서 한입 깨문 뒤 아담에게도 먹였습니다. 그러자 두 사람은...알몸이었던 것이...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그래서 부끄러운 부분을..."선생님! 그 잎은 왜 안 떨어지나요?"" (책 '팬티 인문학', 요네하라 마리 저)

성경 ‘창세기’에 의하면,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먹은 후 알몸인 사실이 부끄러워 무화과나무 잎사귀로 중요한 부분을 가렸다고 한다. 아마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최초의 '팬티'일 것이다. 그렇다면 책에서처럼 유치원생의 눈으로 질문을 던져보자, 무화과나무 잎사귀 하나가 중요 부위에 '딱'하고 붙을 수 있었을까? 접착제도 없는데?

성경을 자세히 읽으면 답을 찾을 수 있다. 아담과 이브는 잎을 '엮어서' 허리를 감쌌다는 것이다. 이 때 팬티의 형태는 끈으로 식물의 잎을 엮어 늘어뜨려 앞부분만을 가린 '에이프런(apron)' 형태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즉, 인류 최초의 팬티는 '(허리)끈 팬티'였던 셈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실제 이런 종류의 팬티를 입고 다니는 아프리카 파리족 등의 경우 그 동기가 '부끄러워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신령한 잎으로 악령을 쫓아내기 위한 주술적 의미에서 이런 팬티를 입는다고 한다. 어쩌면 인류의 첫 팬티는 부끄러움 때문도 위생 때문도 아닌 '종교적 이유' 때문에 생겨났을지도 모른다.

2. 소련에서 '예쁜' 팬티를 입을 수 있는 권리는 아무나 가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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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몇몇 소설과 에세이를 통해 소련 여성들에게 폴란드나 독일, 혹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만든 속옷이 상당히 귀중품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그때 처음으로 소련에서는 레이스가 달린 밝은 색의 화려한 팬티는 생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행에 좌우되지 않는 튼튼한 팬티만이 사회주의에 어울린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었을까?" (책 '팬티 인문학', 요네하라 마리 저)

놀랍게도 소련에선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팬티가 생산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국가에서 생산계획을 짜고 공장을 지어 따로 생산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품목이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때문에 5,60년대까지 소련은 충분한 수량의 팬티를 공급하지 못했고, 당연히 레이스 달린 '예쁜' 팬티는 사치품 중의 사치품이었다. 고위간부의 부인 정도는 되어야 입을 수 있는 귀한 물건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학교에서 배운 바느질로 직접 팬티를 '만들어' 입었다. 사회주의 조국의 운명이 전쟁과 자본주의의 습격으로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해 있는 중에 '팬티는 무슨 놈의' 팬티냐고 윗사람들이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이 때문에 당시 소련의 여인들이 미래의 애인과 밤을 보낼 때를 대비해 비장한 마음으로 한 푼 두 푼 돈을 모아 동독, 폴란드, 체코 등지에서 만든 '비싸고 예쁜' 팬티를 사기도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국가가 모든 생산을 통제하던 시절의 웃픈 이야기다.

3. 일본에선 팬티가 '민족의 얼'로 여겨진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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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훈도시를 일본 정신의 상징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훈도시를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여기며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이는 일본의 훈도시가 일본인에게 어떻게 작용해왔는가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다."(책 '팬티 인문학', 요네하라 마리 저)

훈도시는 천을 가랑이 사이에 끼워 중요 부분을 가리는 일본의 남성용 속옷이다. 그런데 이 훈도시가 특이하게도 단순한 속옷이 아닌 '민족의 얼'로 취급되던 시절이 있었다. 1920년대, 일본이 금융공황과 더불어 극단적인 군국주의로 치달아 갈 때 ‘훈도시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을 지키는 핵심(호리오카 후미요시)이므로 마음만이라도 항상 훈도시로 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급부상하였다. 애국심, 일본 정신 등의 추상적인 개념을 '훈도시'란 물건에 대입해 '눈에 보이는 어떤 것'으로 만들고자 했던 의도가 엿보인다. 흥미롭게도 훈도시 형태의 속옷은 일본 외에 아프리카, 남태평양 등 남방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된다. 만들어진 상징이 사실에 근거하진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4. 팬티는 의외로 '계급'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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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층 소방수'처럼 신분이 낮은 사람들에게만 이런 알몸 확보가 가능했던 건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동시대에 좀 더 높은 신분의 사람들도 이런 모습이었다는 글을 찾아냈다...알몸에 수치심을 느끼는 쪽은 알몸을 드러낸 쪽이 아니다. 오히려 알몸을 볼 수밖에 없는 여자 쪽이 수치심을 느끼고 있다..."(책 '팬티 인문학', 요네하라 마리 저)

우리는 보통 문명과 비문명을 가르는 가늠자로 '옷'을 꼽는다. 타인 앞에서 자신의 알몸을 보여주는 걸 부끄러워하느냐 아니냐가 문명의 기준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저자가 제시하는 사례에 따르면 그 '부끄러움'이라는 것도 어느 신분의 사람과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일본 돈 1만 엔에 나오는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의 회고록 속에는, 청년 유키치와 친구들이 술을 마시려고 찾아낸 장소에 여자 시종들이 모여있자 한 친구가 알몸으로 다가가 누워버려 이들을 쫓아내버렸다는 일화가 나온다. 반면 유키치는 하녀가 자신을 부르는 줄 알고 알몸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그 집의 "안주인"과 마주쳤는데, 그 사실이 40년이 지난 지금도 부끄럽다고 적고 있다. 결국 알몸을 보이는 걸 부끄러워하는 감정은 나와 평등하거나, 더 높은 사람을 만났을 때에나 생겨나는 감정이다. 그 이외의 경우, 오히려 부끄러움을 느껴야만 하는 쪽은 그 알몸을 보는 아랫사람들이다. 푸른 기와집의 치부가 낱낱이 벗겨지고 있다. 그런데도 부끄러움을 느끼는 쪽이 그들이 아닌 우리들인 이유는 어쩌면 그들 눈에 우리가 '주권자'가 아닌 '아랫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