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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11일 09시 40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4월 11일 09시 41분 KST

임재준 서울대병원 교수가 1년간 '15분 진료' 실험을 한 이유

기획 ㅣ 대형병원 ‘3분 진료’ 그만!

“외래를 찾은 환자가 자신의 질환 상태에 대해 궁금한 것을 충분히 묻고 이에 대해 의사는 자세히 설명하는 진료, 즉 ‘정상적인’ 진료를 해보고 싶어서 시작했습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아 환자는 의사를 더 신뢰하게 되고 저 역시 환자의 만족도가 커졌다는 느낌이 들어 진료 뒤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지난 8일 오후 서울대병원 연구실에서 만난 임재준(사진) 호흡기내과 교수는 지난해 3월부터 외래진료 시간을 별도로 만들어 서울대병원을 처음으로 찾은 초진환자를 적어도 15분 동안은 진료하고 있다. 임 교수는 매주 목요일 오후 7명의 초진환자를 2시간에 걸쳐 진료한다. 지방의 몇몇 국립대병원을 제외하면 주요 대학병원의 외래진료 시간이 보통 3~4분인 것에 견줘 4~5배 긴 셈이다. 나머지 진료시간대에는 임 교수 역시 80명에 가까운 환자를 보기 때문에 환자 1명당 4~5분씩만 진료하고 있다. 임 교수는 “부산에서 올라온 한 환자는 ‘케이티엑스를 타고 왕복 5시간 넘게 걸려 왔다. 차비도 수만원이다. 15분 진료도 짧다’고 말하더라”며 “사실 환자의 병력이나 기존의 검사 이력, 영상검사 등을 모두 보고 신체검진과 청진을 하는 등 기본적인 진찰만 해도 15분이 짧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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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찾는 환자는 진단이 어렵고 잘 낫지 않는 호흡기 분야 만성질환으로 주로 비결핵성항산균증이나 만성기침을 앓는 환자들이다. 비결핵성항산균증은 1년 넘게 약물치료를 해야 하고, 치료를 한 뒤에도 절반가량은 재발한다. 이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소문난 ‘명의’나 ‘비방’을 찾아 돈과 시간을 헛되이 쓰기도 한다. 의사의 자세한 설명을 통해 환자가 이 질환에 대해 충분히 이해해야 잘못된 치료로 인한 부작용을 겪지 않고 의료비 낭비 등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임 교수는 “지방의 동네의원이나 병원은 물론이고 다른 대학병원을 다니다가 온 환자들이 대부분”이라며 “많은 경우 복사해 온 진료기록만 수십장이고 여기에 영상검사기록까지 있기 때문에 3분 진료로는 환자의 병력과 증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짧은 진료시간은 환자에게도 불만이지만 의사에게도 집중력 저하나 감정 상태 악화를 가져온다. 지난해 나온 논문을 보면 평균 4.7분마다 환자 한명씩 진료하는 46명의 의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절반가량의 의사는 외래진료 뒤 감정 상태가 악화됐고, 의사 3명 가운데 1명이 진료 뒤 집중력이 떨어졌다.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진료하다 보니 자칫 오진을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임 교수의 ‘15분 진료 실험’은 별도 진료비 체계를 갖추거나 병원 차원에서 제도화된 게 아니다. 자칫 다른 의사들의 비난을 받을 우려도 있다. 임 교수는 “충분한 설명에 대한 보상이 없고 건강보험 진료만으로는 병원 경영이 되지 않는 현 체계에서는 한계가 있다. 짧은 진료시간을 개선할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나온 연구 결과를 보면 의사의 진찰은 대학병원의 경우 원가에 견줘 보상받는 비율(원가보존율)이 50~60% 수준으로 오히려 손해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비급여 진료)는 이 비율이 150%를 넘는다. 병원 입장에서는 의사 1인당 외래환자를 더 늘리고, 비급여 진료를 더 많이 해야 경영에 도움이 되는 셈이다.

임 교수의 실험은 아직 미약하지만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4월부터 서울대 암병원에서도 암맞춤치료센터를 열고 위암, 대장암, 간암 등 몇몇 암 환자를 대상으로 15분 진료를 시작했다. 또 분당서울대병원에서는 중환자실에 입원했던 환자를 대상으로 퇴원 뒤 외래진료를 찾으면 15분가량 진료하는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

임 교수는 “오스트레일리아나 미국 등 다른 나라 의사들이 한국의 진료시간을 보면 너무 짧다며 놀란다. 환자나 의사 모두를 위해 충분한 진료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야 고가의 검사에만 의존하는 현 체계가 변할 수 있고 동시에 환자와 의사 사이의 신뢰가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대학병원의 많은 의사들은 궁금한 점에 대해 설명을 더 듣고 싶어 하는 환자들을 진료실 밖으로 내보내는 데에 미안함을 느끼고 있다. 환자와 의사 모두를 위해 대학병원뿐만 아니라 전체 병원의 진료시간이 충분히 확보되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