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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03일 16시 25분 KST

나고르노-카라바흐 : 당신이 몰랐던 또 하나의 화약고

David Mdzinarishvili / Reuters
A man stands near a wall decorated with national flag of Nagorno Karabakh in Stepanakert October 28, 2009. REUTERS/David Mdzinarishvili (AZERBAIJAN SOCIETY)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와 이슬람권인 아제르바이잔 사이에 위치한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아제르바이잔 영토에 속하지만 아르메니아가 실효지배중인 영토 분쟁 지역이다.

관련기사 :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20년만에 최대 무력충돌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 물결이 주변 지역으로 번져가던 19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등이 속한 캅카스(코카서스) 지역이 소련에 복속된 직후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아르메니아공화국으로 귀속됐으나 이후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행정 편의주의에 따라 1924년 아제르바이잔 영토 내 자치지역으로 바뀌었다.

이에따라 약 20%에 불과한 나고르노-카라바흐의 무슬림 아제르바이잔인들이 약 80%에 달하는 기독교인 아르메니아인들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 분쟁의 불씨가 됐다.

1988년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가 아르메니아로의 귀속을 선언했고, 1989년에는 아르메니아가 이 지역을 병합하기로 결정했다.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은 1991년 마침내 '나고르노-카라바흐 독립공화국'을 선포했지만 아제르바이잔이 이를 승인하지 않으면서 양측 간에 무력 충돌이 벌어졌다.

1992년 러시아군이 아제르바이잔에서 철수하자 아르메니아는 이 지역에서 전면전을 전개했다. 그 결과 아르메니아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과 그 주변의 일부 아제르바이잔 영토까지 점령하면서 분쟁 지역에 대한 통제력을 굳혀갔다.

이후로도 계속된 무력 충돌로 1994년 휴전이 성립되기까지 약 3만 명이 숨지고 1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유혈 사태는 1994년 5월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CIS. 옛 소련권 국가 모임) 의원 총회의 중재로 키르기스스탄 수도 비슈케크에서 열린 협상에서 휴전이 성립되면서 일단 중단됐다.

무력 충돌 후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잃었고 아르메니아가 실효지배하게 됐다.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이 분쟁 지역을 장악하고 아르메니아로부터 무기와 자금을 지원받고 있다.

nagorno karabakh

nagorno karabakh

아르메니아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독립 공화국으로 인정할 것과 아르메니아와 공화국에 대한 연결 통로의 안전을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아르메니아를 제외한 국제사회는 여전히 나고르노-카라바흐의 독립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아제르바이잔이 영토 통합성을 내세우며 이 지역에 대한 주권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면서 국경지역에서 양측 군인들 간 총격 사건이 발생하는 등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간 정상회담이 여러 차례 개최됐으나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국제사회는 1992년부터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내에 러시아·미국·프랑스가 주도하는 민스크 그룹을 구성해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 해결을 위한 중재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민스크 그룹 공동의장국인 미국과 러시아, 주변 강국인 터키 등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사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러시아는 같은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 지원을 통해 캅카스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카스피해와 인근 지역에 매장된 풍부한 지하자원을 노려 아제르바이잔과의 연대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터키도 인종·종교적 유대를 지닌 아제르바이잔을 지원하고 있다.

일각에선 2일 벌어진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무력 충돌도 러시아와 갈등 관계에 있는 터키가 아제르바이잔을 부추겨 선제공격을 하도록 하면서 발생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