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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13일 08시 50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3월 13일 09시 15분 KST

'태양의 후예'에는 자부심이 아닌 열등감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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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김은숙 작가가 집필해온 일련의 드라마에서 리얼리티를 찾는 게 의미가 있을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다 느낄 것이다. 아무도 <상속자들>(2013)을 보면서 재벌가 자제들의 학교생활을 가늠하지 않을 것이고, <신사의 품격>(2012)에서 대한민국 40대 비혼 남성의 삶을 읽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김은숙 드라마에서 시공간이나 주인공의 배역은 그럴싸한 멜로와 판타지를 가능케 하는 배경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작가 자신도 이미 <온에어>(2008) 속 페르소나인 서영은(송윤아) 작가의 입을 빌려 “드라마란 95%의 상투에 5%의 신선함이면 된다고 본다”는 고백을 한 바 있지 않나. 그걸 뻔히 알면서도, 김은숙이 김원석 작가와 공동 집필한 최신작 <태양의 후예>(2016·한국방송)를 보고 있노라면 자꾸 입맛이 쓰다. <태양의 후예>가 내포한 아제국주의적 세계관의 위험성에 대해선 이미 황진미 평론가가 10일 '태양의 후예, 왠지 군국주의 냄새가…'에서 지적한 바 있으니 건너뛴다 하더라도, 한국인이 지닌 콤플렉스를 기괴한 방식으로 해소하려는 태도에 대해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극중 아프가니스탄에서 인질극이 벌어지자 한국은 연합작전의 일환으로 유시진 대위(송중기)가 이끄는 특전사 팀을 파병한다. 한미연합군의 인질 구출작전 훈련 중 한국군은 실수로 부비트랩을 건드리고, 미군 델타포스 소속 대위는 한국군을 향해 인종차별적인 언사를 내뱉으며 시비를 건다. 이에 발끈한 유시진 대위는 미군과 한바탕 몸싸움을 벌이는데, 체격 차이가 제법 남에도 불구하고 호각지세다. 적전에서 연합군끼리 저렇게 분열해도 되나 싶은 순간 말문을 뗀 서대영 상사(진구)는 “연합작전에서 처음 만난 특수부대원들은 서로를 신뢰하고 목숨을 맡겨도 되는지 가늠하기 위해 싸움을 한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지만, 실제 작전지역에서 훈련 도중 개싸움을 했다간 어느 쪽이든 영창을 피하기 어렵다. 게다가 오랜 인종차별의 역사를 거쳐온 미군이 강경한 윤리규정을 통해 인종차별적 언사를 엄격하게 제재하고 있다는 점 따윈 반영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러면 어떤가. 어차피 제작진이 이 장면을 통해 노린 것은 리얼리티가 아니라, 유시진과 거구의 미군의 한판 싸움을 보여줌으로써 비록 체구가 작아도 미군에게 밀리지 않는 실력을 지닌 한국군에 대한 자부심을 채우는 것이었을 텐데.

‘미군에 뒤지지 않는 한국군’이란 판타지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정작 실전에 들어갔을 때 부비트랩을 건드릴 뻔한 건 한국군이 아니라 델타포스고, 그것을 발견한 유시진 대위가 부비트랩을 건드리려는 미군 발치에 화급히 실탄을 사격해 저지하는 장면으로 아프가니스탄 에피소드가 마무리된다. 이 모든 무리수와 고증 오류가 고작 ‘미군 최정예 부대 델타포스와 붙어도 기량이 떨어지지 않는 한국 특전사’, ‘한국군을 우습게 본 미군에게 고스란히 굴욕을 돌려줘 체면을 세운 한국군’이라는 판타지를 완성하기 위해 동원된 것이다. 물론 한국의 특수부대 수준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수준이고, 자국의 군대 훈련 수준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 그 자체를 크게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태양의 후예>는 그 자부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타국의 군대 수준을 터무니없이 깎아내린다. 나의 한계를 극복해냈다는 것에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더 센 상대’와의 비교를 통해 ‘뒤지지 않는다’는 걸 입증해야 비로소 채워지는 자부심, 보통 이런 걸 우리는 ‘열등감’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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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부터 드라마는 가상의 국가 ‘우르크’에 유엔 평화유지군 소속으로 파병된 모우루 부대로 그 배경을 옮긴다. 아이들이 먹을 게 없어 쇠붙이를 빨고 있는 것을 본 의료봉사단 소속 의사 강모연(송혜교)은 아이에게 초콜릿바를 건네고, 그 모습을 본 우르크의 아이들은 벌떼처럼 몰려들어 초콜릿을 달라고 손을 내민다. 맞다. 한국인의 뇌리에 그리 유쾌하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기브 미 쪼꼬렛’의 반복이다. 단 이번엔 우리가 초콜릿을 구걸하는 쪽이 아니라 베푸는 쪽이다. <태양의 후예>는 한국인들이 전쟁과 관련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수치스러운 기억 중 하나를 꺼내, 한국의 전쟁고아들이 서 있던 자리에 가상의 국가 속 난민 꼬마들을 대신 세워 한국인에게 초콜릿을 구걸하게 만듦으로써 그 기억을 노골적으로 윤색한다. 한국인의 콤플렉스를 가상의 국가를 동원해 그에 대한 우위를 픽션으로 꾸며내는 것을 통해 초극하려 하는 행위, 보통 이런 걸 우리는 ‘자위’라고 부른다.

<태양의 후예> 제작발표회에서 김은숙 작가는 본인이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걸 안다면서도 이렇게 덧붙였다. “자기 일을 책임감 있게 잘하는 인물을 그렸는데, 누구나 그래야 한다는 걸 알지만 누구나 그러지 못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행보가 내가 만든 최고의 판타지다.” 말하자면 현실이 따라가지 못하는 지점을 “이랬으면 좋겠다”는 이상향 삼아 그려낸 판타지란 뜻이다.

그래서일까. <태양의 후예>는 곳곳이 주인공들이 자신의 직업이 지닌 책임감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장면투성이다. 잠깐 방심한 사이 “군인은 늘 수의를 입고 산다. 이름 모를 전선에서 조국을 위해 죽어갈 때 그 자리가 무덤이 되고 군복은 수의가 된다. 그만한 각오로 입어야 한다. 그런 각오라면 매 순간 명예로워라. 안 그럴 이유가 없다”라거나, “생명은 존엄하고 그 이상을 넘어선 가치는 없다고 생각해요” 따위의 대사들이 화면 위를 가로질러 간다. 각각 송중기와 송혜교의 육신을 빌려 발화되는 이 명언들에 취해 극을 따라가다 보면 현실 속 문제점들은 죄다 휘발되어 사라져 버린다.



요컨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파병된 아크 부대의 파병목적이 원전 수출과 연계되어 파병된 세일즈 파병이 아니었느냐는 논란, 국제연합(UN)의 요청이 아닌 미국의 요청으로 이라크전에 파병을 했던 썩 유쾌하지 않은 과거, 위의 두 차례의 파병이 현행 ‘국제연합 평화유지군(UN PKO) 법’으로는 그 법적 근거가 미비하다는 문제점, 해서 한국군의 해외파병 요건의 제약을 대폭 완화하는 ‘국군의 해외파견 참여에 관한 법률안’이 2013년 새누리당 송영근 의원 대표 발의로 제출되어 현재 국회 법사위 심사 중이라는 사실과, 그 법안을 결사반대 중인 시민단체의 저항이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 같은 찜찜한 것들은 <태양의 후예>를 통해 싹 잊힐 수 있는 것이다. 한국군이 현지에서 저렇게 환영받고 신뢰받는다는데. 송중기나 진구와 같은 참군인들이 현지 주민들을 위해 인도적인 활동에 매진하고, 송혜교와 같은 의사가 여진의 위험을 무릅쓰고 재난 현장에서 사람들을 치료한다는데. 미국에 대한 자격지심, ‘기브 미 쪼꼬렛’의 비참한 기억, 그 뒷맛이 영 씁쓸했던 해외 파병의 기억 같은 것들은 픽션의 층위에서 사르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가상의 자부심이 들어찬다. 시쳇말로 ‘국뽕’(국가와 히로뽕을 합친 단어. 애국주의를 조롱하는 속어)이 차오르는 것이다.

역사를 공유하는 공동체로서의 국가가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자부심 또한 무형의 자산이라 친다면 손상된 자부심을 회복하는 것은 국가 구성원들 모두의 자산 증대에 기여하는 일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현실에서의 개선이 아닌 픽션을 통한 정신 승리, 과거의 자신과 비교해 더 나아갔음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타자를 호출해 비교함으로써 우위를 확인하며 안도하는 천박함, 수치스러웠던 기억을 윤색하는 도피를 통해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것은 위험한 징조다. 서른여섯의 청년 진중권이 이렇게 일갈한 것이 벌써 18년 전의 일이다. “파시스트의 세계관이 예술적이라는 얘기는, 그들이 현실과 허구를 마구 넘나든다는 뜻에서다. 물론 ‘진리’를 위해서가 아니다. 대중으로 하여금 허구를 현실로 착각하게 만들기 위해서다.”(<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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