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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08일 09시 41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3월 08일 09시 41분 KST

벤 카슨은 충동과 내분으로 자멸했다

Republican presidential candidate Ben Carson speaks at the National Religious Broadcasters convention Friday, Feb. 26, 2016, in Nashville, Tenn. (AP Photo/Mark Humphrey)
ASSOCIATED PRESS
Republican presidential candidate Ben Carson speaks at the National Religious Broadcasters convention Friday, Feb. 26, 2016, in Nashville, Tenn. (AP Photo/Mark Humphrey)

"분명 그에게는 백악관에 들어갈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기회를 너무 쉽게 날려 버렸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2일 '트럼프 대세론'을 깰 수 있는 유일한 공화당 대선 주자로 꼽혔던 벤 카슨이 자기 파괴적인 충동과 통제하기 힘든 캠프의 보좌진들로 인해 결국 경선을 포기하게 됐다며 이렇게 평했다.

공화당 대선 주자 가운데 유일한 흑인으로 신경외과 의사 출신인 카슨은 희망에 찬 보수의 메시지를 들고나와 복음주의자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지난 10월 지지율이 28%까지 오르며 미국 대선판을 출렁이게 했다.

하지만 그는 불과 4개월여만인 지난 1일 '슈퍼 화요일' 대회전 11개 주 경선에서 주자 5명 가운데 꼴찌를 하면서 결국 경선에서 중도에 하차했다.

카슨의 실패기는 대권을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시사점을 준다. 이질적 인사들로 급조된 캠프 내 갈등을 조절하는 데 실패하고, 지지율만을 생각해 충동적 발언을 할 경우 그 끝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이다.

폴리티코는 그의 실패가 사실 오래전부터 예고된 것이었다고 분석했다.

30년 동안 존스 홉킨스의 수술실에서 수많은 의사를 지휘하면서 샴쌍둥이 분리 수술과 같은 복잡한 수술에 성공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미국의 현안들을 여러 전문가와 조율해 잘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가 성립돼야 그의 대선 가도는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카슨은 실망스럽게도 능력 있는 캠프 내 인사들의 반목을 수습하는 데 실패했다.

처음부터 카슨의 캠프는 뒤죽박죽이었다. 단적인 예가 지난해 5월 3일 그의 대선 출마 선언이다.

1984년 레이건 선거 캠프 때부터 대선판을 누빈 선거 전문가 배리 베넷과 더그 와츠 공보책임자는 카슨의 고향인 디트로이트에서 의미 있는 대선 출정식을 하기로 하고 언론에도 사전에 알렸다. 기자들이 모두 디트로이트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바로 전날 사전 녹화된 카슨의 출마선언 동영상이 한 방송의 전파를 탔다. 녹화된 장소는 카슨의 거주지인 플로리다의 집이었다. 카슨의 오랜 측근이자 미디어 전문가인 암스트롱 윌리엄스의 작품이었다. 거액의 돈과 갖은 공을 들여 출정식을 준비한 베넷과 와츠를 보기 좋게 물 먹인 것이었다.

와츠는 "그때가 (분열의)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나쁜 전조는 계속 이어졌다. 지난 6월에는 20여 년간 우정을 쌓아온 친구이자 카슨의 초기 선거캠프 핵심멤버인 테리 질이 카슨의 동성애 발언에 반발해 캠프를 떠났다. 카슨은 동성애자를 짐승에 비교하는가 하면 "감옥에 갈 때는 이성애자였는데 나올 때는 동성애자가 된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었다.

그런 캠프 내 갈등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은 상승했고, 고공 지지율이 유지될 때는 갈등이 외부로 표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지지율이 가라앉기 시작하자 곧바로 보좌진들의 캠프 이탈이 줄을 이었다.

12월 한 달 동안 공동선거사무장이자 선거자금 모금 총책이던 빌 밀스가 캠프를 떠났고, 이어 베넷 선거사무장과 와츠 공보책임자도 전격 사퇴했다. 고위급 참모들 외에 실무진들의 사퇴도 줄을 이었다. 카슨은 예비역 육군 대장인 로버트 디즈를 캠프 총책임자로 임명해 사태를 수습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후 캠프는 거의 패닉 상태가 됐다.

카슨의 충동적 발언과 외교ㆍ안보 비전 부재도 그의 주요한 실패 원인이었다.

그는 트럼프와의 2파전 구도로 선거 국면이 전개되자 상대적으로 온건했던 이미지를 버리고 강경 돌출 발언을 쏟아냈다. 총기 소지를 옹호하는 발언 중에 유대인들이 총기를 소지할 수 있었다면 홀로코스트는 없었을 것이라는 말을 하는가 하면, 낙태 여성을 노예 주에 비유하며 낙태가 전면 금지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파리 사태 이후 외교 안보 분야에 대한 후보들의 비전이 시선을 끌고 있는 와중에 나온 발언들은 점입가경이었다. 그는 "광견병에 걸린 미친개가 이웃에 돌아다니면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시리아 난민들을 미친개에 비유하는 발언을 했다.

또 미 국무부가 워싱턴 소재 비영리 이슬람 권익단체인 '미국이슬람관계위원회'(CAIR)에 대한 즉각적인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 내 반무슬림 정서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발언들이었다.

나아가 시리아 사태를 언급하면서 "중국이 거기에 있다"고 말했다가 양국 당국이 이를 부인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뉴욕타임스(NYT)는 "그가 미국의 외교정책을 이끌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할 정도였다.

그의 지지도가 급락하기 시작한 것이 파리 사태 이후이니 그의 외교 안보 비전 부재와 생뚱맞은 돌출 발언들이 그의 하락세를 이끈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당초 카슨 캠프는 제2의 오바마를 꿈꿨다. 같은 흑인이고 당의 주류도 아니면서 대중의 높은 지지를 받은 것도 비슷했다.

공보책임자였던 와츠는 "우리는 캠프를 차리면서 오바마의 선거운동 관련 책자를 모두 읽었다. 종교적 추종자와 같은 심정으로 2007년 오바마의 도전을 온전히 공부했다"고 술회할 정도였다.

그러나 카슨 캠프는 오바마 캠프가 주류와 비주류 간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조화를 모색한 반면 카슨은 그러지 못했고, 결국 그는 실패했다.

카슨의 친구이자 측근이었던 질은 선거캠프에 보낸 이메일에서 "벤(카슨)은 하나님이 이 경선을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가 사악한 인간들에게 둘러싸이면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실지 이제는 알겠다"고 했다. 판은 엎어졌는데도 그들 간의 갈등과 반목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