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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26일 07시 42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2월 26일 09시 27분 KST

중국 반발에도 사드에 ‘올인'한 한국, 미국-중국 대화에 ‘오리알' 신세?

업데이트 : 2016년 2월25일 14:25 (기사 보강)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 이후 서둘러 한국 정부가 꺼낸 한반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 카드가 ‘실패’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사드 배치를 전격 추진하며 미국 쪽으로 기울었지만, 정작 미국과 중국은 한국을 빼고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사드 반드시 배치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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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에 따르면 25일(현지시간), 해리 해리스 미국 태평양사령관은 “한국과 미국이 사드 배치문제를 협의하기로 합의한 것인지, 양국이 아직 사드를 배치하기로 합의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사드 배치를 협의하기로 합의했다고 반드시 배치하는 것은 아니다. 협의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봐야 한다.”

미국 측의 이런 발언은 ‘중국이 반대와는 무관하게 사드는 한미동맹의 방어권 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이라는 기존 미국 입장과는 사뭇 달라진 것이다.

이틀 전인 23일에도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북한의) 비핵화만 이룰 수 있다면 사드는 필요없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을 방문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을 한 뒤 기자회견에서 꺼낸 말이었다.

그동안 한국과 미국은 사드 배치와 대북제재는 전혀 다른 사안이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과 ‘막후협상’을 통해 두 문제를 연계시키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한국을 빼고 말이다.


사드는 미국의 ‘협상전략’이었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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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현지시간),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회담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악수하는 모습. ⓒAP

미국은 왜 달라진 걸까?

가장 유력한 설명은 중국을 대북제재 대열에 끌어들이기 위해 미국이 한반도 사드배치를 ‘협상카드’로 삼았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중국의 심기까지 거스르며 추진했던 사드가 미국에게는 그저 하나의 중국 압박용 수단이었다는 것. 그런 낌새는 이미 곳곳에서 감지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국방부가 지난 7일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에 맞서 서둘러 사드 배치를 발표한 이후 3주간 한미 논의는 한 걸음도 못 떼고 있다. 그 사이 미중 양국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에 합의하면서, 사드 배치가 한반도의 안보가 아닌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정치적 협상 카드라는 정황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한국일보 2월26일)

미국의 이런 태도는 처음이 아니다. 중국이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에 강력히 반발하며 적극적으로 나서자, 미국은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과 사드 배치의 연계처리 방침을 내비치며 절충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중략)

그러나 한국 정부는 미-중 간 사드 배치를 놓고 전개되는 미묘한 기류 변화를 외면했다. 외교부는 24일, 미-중 외무장관 회담 뒤에도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 문제는 유엔 대북제재 결의 채택과 별개의 사안”이라고 기존 견해를 고수했다. 최종건 연세대 교수는 “사드 문제가 미-중 간 게임이라는 국제정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강경 일변도로 앞만 보고 내달리다 일어난 참사”라고 말했다. (한겨레 2월24일)

대북제재에 미온적이던 중국이 한미 양국의 사드 배치 논의 이후 적극적으로 대북제재에 나섰다는 사실을 근거로 '사드 압박'이 통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이런 대중 압박 전략을 한국도 공유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 한국 정부는 일찌감치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 해가며 앞만 보고 달려왔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안보 분야의 전문가는 26일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중국이 사드 배치에 극렬하게 반대할 것이라는 건 예측 가능했던 일"이라며 "자위권 차원의 방어적 조치라는 말로 중국을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협력을 끌어낼 방안이 우리에게 있는지 의문"이라며 "사드 배치 문제와 관련해서는 전략적 모호성을 계속 유지하면서 미국이 먼저 나서도록 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뉴시스 2월26일)

중앙일보는 26일자 사설에서 “이런 판에 우리만 앞뒤 보지 않고 사드 배치를 밀어붙이다 없던 일이 되면 그런 낭패가 없다”며 “미·중 고공전 끝에 사드 배치가 유야무야된다면 얻는 것 없이 중국 인심만 잃는 꼴이 된다”고 지적했다.

"좀 더 지켜볼 일이지만 미국이 사드 카드를 신중하게 다룰 분위기라면 우리 역시 이에 맞게 유연하게 대응하는 게 옳다. 바람이 바뀐 줄도 모르면서 불로 치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중앙일보 사설 2월26일)


미국의 ‘입’만 바라보는 한국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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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지난 18일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이 정례 브리핑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당장이라도 사드가 배치될 것 같던 분위기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미국이 ‘속도조절’에 나서면서부터다. 미국이 중국과 ‘막후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낌새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시점이었다.

한미 간 사드 배치 관련 실무회의는 아직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국방부는 회의가 계속 연기되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고,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미국 측에서 직접 설명하라’고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겨레가 25일 전한 국방부 브리핑 현장을 살펴보자.

Q. 사실 이것은 부대변인한테 물어볼 것은 아니고 주한미군한테 물어볼 것이지만 자기들이 먼저 요청해 놓고 이제 와서 조금 있다가 논의해보자,라고 뒤로 발을 빼는 것은 대단히 무례한 행동 아닌가요? 국방부 입장에서 무례하다고 느끼지 않습니까?

A.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협의를 해 가는 과정에서, 또 상대가 있는 것이니까 또 상대의 어느 정도의 입장들 그런 것들이 조율되는 과정, 이런 것들을 우리가 배려하는 차원이고, 또 같은 파트너적인 측면에서 그런 나름의 프로세스를 가져간다, 그렇게 이해를 하시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상대가 있으니까 예의를 지켜야 되잖아요. 우리는 배려만 해줍니까?

A. 충분히 알겠습니다.

Q. 뭐라고 좀 하세요. 영어로.

A. 기자님이야 영어를 워낙 잘하시는 분이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영어가 짧아서…영어공부 좀 하고 확인해 보겠습니다. (한겨레 2월25일)


‘강경대응’ 앞장섰던 한국, 낙동강 오리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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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미국과 중국의 ‘대화’에 중대한 진전이 이뤄지자 입장이 난처해진 건 바로 한국 정부다. 북핵문제를 둘러싼 외교전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잃고 미국-중국의 입김에 끌려다니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기 때문. 조선일보는 사드를 둘러싼 세 나라의 외교전을 ‘사드 삼국지’로 표현하며 이렇게 전했다.

그러나 중국을 끌어내는 '지렛대'로 사드를 활용했다는 측면과 더불어 "안보리 제재와 무관하게 국민 안전을 위해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라던 우리 정부의 논리가 모순에 빠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우리 정부에는 협박만 하고 '거래'는 미국과만 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복잡한 다차원 외교전이 벌어지고 있다. (조선일보 2월25일)

KBS는 "덜컥 사드 배치를 공식 협의하겠다고 발표한 국방부가 너무 일찍 카드를 보여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며 이렇게 우려했다.

사드 포대는 어디까지나 미군의 전략 자산입니다. 우리가 필요하다고 미국이 즉각 배치해 줄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카드로만 활용하다가 접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국제 관계의 냉혹한 현실입니다. 스카파로티 사령관이 공동실무단은 앞으로 1주일 이내에 첫 회의를 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미 미중이 외교적 거래를 하기 시작한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국익은 손상될 우려가 큽니다. (KBS뉴스 2월26일)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의 고위 관계자가 한국을 잇따라 방문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26~27일)와 우다웨이 중국 한반도사무특별대표(28일)가 한국을 전격 방문하는 것. 동아일보 등에 따르면, 이는 모두 예정에 없던 일정이었다.

한겨레는 이 상황을 이렇게 해석했다.

러셀 차관보와 우다웨이 대표의 잇단 방한은, 양국이 외교장관 담판을 통해 ‘제재 국면의 신속한 마무리와 제재 이후 대화 재개 방안 논의’ 쪽으로 가닥을 잡고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 필요성에 공감한 데 따른 후속 조처로 보인다. 북한의 핵실험·로켓발사에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미·중이 경쟁적으로 ‘설득 외교’에 나선 형국이다. (한겨레 2월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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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시계를 뒤로 돌려보자.

지난 2월초 한국과 미국이 사드 배치 협의 개시 사실을 알린 이후, 중국은 강력한 반대 의사를 분명하게 밝혀왔다. 이보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이 1월 대국민 담화에서 처음으로 한반도 사드 배치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직후에도 중국은 민감하게 반응한 바 있다.

지난해 9월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관 이후 ‘역대 최고’라던 한중관계의 자취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박 대통령이 사드 배치를 공식화한 순간부터 어쩌면 이미 예견되어 있었던 일이다.

지난 2월, 언론들은 중국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분노가 사드 협의를 개시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그 뒤 박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에 곧바로 중국이 강하게 반대했던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사드·THAAD)' 배치 협상 개시를 결정했다. 외교가에서는 이 결정의 배경에도 중국에 대한 박 대통령의 '분노'가 깔려 있다는 말이 나온다. 외교 당국자는 "박 대통령에게 '안팎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국 전승절 기념식에도 참석했는데 중국이 이럴 수 있느냐'는 섭섭함이 최근 결정에 묻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2월13일)

어쩌면, 우리는 지금 대통령의 '분노'와 냉혹한 국제외교의 현실이 얽힌 한 편의 비극을 목격하고 있는 걸까?


박근혜 대통령 국정연설, 2016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