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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17일 04시 27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2월 17일 04시 29분 KST

린다김에게 5천만 원 빌려주고 뺨 맞은 정 씨의 사연

"어이. 권 장관. 양아치 짓 하면 안 돼. 이번 무기는 말이야…"

호텔 방에 들어서자 화가 난 듯한 목소리의 통화음이 들렸다. 중저음의 다소 어눌한 말투였다. '어눌한 말투'는 전화를 끊고서 곧바로 다른 사람과 영어로 통화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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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세점에 화장품 납품을 하는 정모(32)씨는 통화 내용을 듣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장관'을 윽박지르는 중년 여성이 눈앞에 있었다.

정씨는 부업으로 관광 가이드 일도 했다. 중년 여성은 그가 얼마 전 외국인 전용 호텔 카지노에 중국인 관광객들을 안내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이정희(가명·58·여)를 통해 소개받았다.

"아는 언니가 있는데 유명한 사람이야. 돈을 급하게 써야 한다네. 이틀 만 5천만원을 빌려주면 이자로 500만원을 주겠대"

대전에서 서울로 이사를 앞둔 정씨는 지난해 12월 15일 이정희의 말에 집 보증금을 치를 현금을 들고 인천 영종도의 한 카지노 호텔로 차를 몰았다.

이정희의 말대로 호텔 방에서 전화 통화를 끝내고 고개를 돌린 중년 여성은 유명인이었다. '무기 로비스트' 린다 김(본명 김귀옥·63)이었다.

린다 김은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0년대 중반 군 무기 도입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한 여성 로비스트로 세간에 이름을 알렸다.

그는 1995∼1997년 군 관계자들로부터 공대지유도탄, 항공전자 장비 구매사업 등 2급 군사비밀을 불법으로 빼내고 백두사업(군 통신감청 정찰기 도입사업)과 관련해 군 관계자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군사기밀보호법 위반)로 2000년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으나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린다 김의 통화 내용을 듣고 위압감을 느낀 정씨는 "돈을 빌려 드릴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하고서 호텔 방을 빠져나왔다. 곧 이정희가 다시 전화를 걸어와 붙잡았다.

그는 강원도 춘천의 땅 계약서를 보여주며 자신이 직접 보증을 서겠다고 했다. 계약서에는 평생 보지 못한 12억원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다시 이정희를 따라 호텔방에 들어서자 린다 김은 벼락같이 화를 냈다.

"내가 누군지 몰라. 이 시계가 1억8천만원짜리야. 반지는 15캐럿이고. 미국에서 그랜드 호텔도 운영하고 있어. 너 이런 식이면 한국에 못 산다. 좋게좋게 돈 주고 가. 정희야 문 닫아."

린다 김은 노트 한 장을 찢어 차용증을 썼다. 린다 김이 쓰고 지장도 찍었다. 돈은 이틀 뒤인 같은 달 17일 오후 1시까지 돌려받기로 했다.

정씨는 차용증을 들고 호텔방을 빠져나왔지만, 돈을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호텔 로비 소파에 앉아 다음 날 새벽까지 7시간 동안 불안에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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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자정쯤 린다 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호텔 로비에서 다시 만났다.

"카지노에서 1억5천만원을 날렸어. 5천만원만 더 밀어줘. 그러면 10억원을 줄게"

정씨는 핑계를 대며 "더는 돈이 없다"고 거절했다.

17일 오후 1시. 돈을 돌려받기로 한 시각이 돼 정씨는 영종도 호텔 방에 찾아갔다.

빌려간 5천만원을 달라는 정씨의 말에 린다 김은 "못 주겠다"며 정씨를 한 차례 밀치고선 뺨을 휘갈겼다고 정씨는 전했다.

"왜 때리냐"고 맞서다 겁이 나 호텔 방에서 뛰쳐나온 정씨는 곧장 112에 신고했다. 출동한 인천 중부경찰서 공항지구대 경찰관이 호텔 로비에 도착했고, 사실 확인을 위해 호텔 방으로 전화를 걸었다.

린다 김 대신 로비로 내려온 이정희는 정씨에게 귀엣말을 했다.

"너 이렇게 하면 돈 못 받는다. 저 언니가 돈 해준다고 하니 경찰관들 빨리 보내"

정씨는 다시 이 말을 믿고 경찰관들을 돌려보냈다.

호텔 방에 다시 올라가자 린다 김은 5천만원을 더 빌려주지 않고 자신을 갖고 놀았다며 적반하장이었다.

"싸가지(싹수) 없는 놈. 무릎 꿇고 빌면 돈 돌려줄게. 꿇어"

돈을 받아야 하는 처지인 정씨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호텔 방에서 무릎을 꿇고 사정했다.

"이모님. 제발 돈 좀 돌려주세요. 제가 죄송해요. 저한테는 정말 큰돈입니다"

린다 김은 며칠 안에 돈을 갚을 테니 돌아가라고 했다.

그러나 5천만원과 이자를 대신 줄 거라며 린다 김이 연락처를 알려준 '마포 조박사' 등 지인 2명은 2개월이 지난 최근까지도 정씨를 사채업자로 몰며 돈을 돌려주지 않았다.

그 사이 린다 김은 정씨의 문자 메시지와 휴대전화를 수차례 피했다.

정씨는 최근 린다 김의 욕설 등이 담긴 음성 녹취록과 전치 2주 진단서 등을 토대로 인천지검에 사기 및 폭행 혐의로 그를 고소했다. 검찰은 사건이 벌어진 호텔 관할의 인천 중부경찰서에 고소장을 넘겼다.

경찰은 조만간 린다 김을 피고소인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다.

정씨는 16일 "돈을 빌려 가 놓고선 갚지 않고 오히려 큰소리를 치며 굴욕을 줬다"며 "당시에는 돈 때문에 참았지만 지금은 돈을 돌려받는 것보다도 가해자가 꼭 처벌을 받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린다 김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5천만원을 빌리기로 하면서 500만원 선이자를 먼저 떼고 4천500만원을 받았다"며 "돈을 빌린 것은 맞지만 중간에 감정이 나빠져 돌려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호텔방에서 통화는 권 장관이 아니라 권 장군과 한 것"이라며 "호텔방에서 어깨를 한 차례 때린 적은 있지만 무릎을 꿇린 사실은 없고, 정씨에 대해 법적 대응도 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