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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11일 17시 54분 KST

"동성애 차별법 없다" : 외교부는 미국 정부 LGBT인권특사에게 거짓말을 했나

성소수자들의 인권 상황을 둘러보러 한국에 온 미국 성소수자(LGBT) 인권특사에게 외교부가 제대로 된 사실을 전달하지 않았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이 대표적인 차별법으로 꼽는 ‘군대 내 동성간 성행위’ 처벌 조항이 있는데도 ‘차별 규정이 없어졌다’고 인권특사 쪽에 설명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랜디 베리 미국 국무부 성소수자 인권특사는 11일 김조광수 감독,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방송인 하리수씨 등 국내 유명 성소수자들과 함께한 오찬 자리에서 “외교부로부터 ‘한국에는 동성애 차별 조항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참석자들은 “합의한 동성간 성행위도 처벌하는 규정이 군 형법에 있는데도 외교부가 명백한 거짓말을 했다”고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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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무부의 랜디 베리 성소수자 인권 특사가 11일 서울시내 한 식당에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방송인 하리수, 김조광수·김승환 부부 등과 오찬을 갖기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베리 특사 쪽에선 “비보도를 전제로 한 오찬이었기 때문에 사실을 확인해줄 수 없다”며 말을 아꼈지만, 이장근 외교부 국제기구국 심의관은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정부의 기본적인 성소수자 인권과 차별 금지 노력을 설명하는 가운데, 2013년 군 형법이 개정돼 동성애 차별 규정이 없어졌다고 전달했다”며 이를 인정했다. 그는 “(성소수자 단체를 중심으로) 논란이 있는 건 알지만 그렇게(‘동성애 차별 규정이 없어졌다’고) 보는 게 군 형법을 담당하는 국방부의 입장”이라고 즉답을 회피했다.

군 형법 92조 6항은 “(군인 또는 군인에 준하는 사람에게)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하는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으로 형사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013년 법 개정으로 ‘계간’(鷄姦)이라는 용어가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으로 표현만 바뀌었을 뿐 처벌 규정은 그대로 남은 것이다. 이 조항을 적용하면 성폭행이 아닌 합의한 성관계도 처벌할 수 있다는 점에서,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위헌’ 의견을 낼 정도로 동성애 차별 규정이라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이날 오찬에 참석한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의 류민희 변호사 역시 “2011년과 2015년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위한 결의안이 나왔는데 의장국으로서 한국 정부가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베리 특사는 지난해 2월 미 국무부가 성소수자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처음으로 임명한 인권특사로, 각국 성소수자들이 받는 차별과 폭력을 방지하고 미국의 인권외교를 알리고 있다. 베리 특사도 공개적인 동성애자다. 베리 특사의 이번 방한은 베트남·일본 등 아시아 5개국 방문 일정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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