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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12일 14시 12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1월 12일 20시 19분 KST

옛날 기사에서 찾은 양향자 상무의 인생 스토리

12일 더민주당에 입당한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는 청년들을 향해 "'나처럼 노력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실제로 밑바닥에서 시작해 최고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 성공 신화의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관련기사 : "'나처럼 노력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동영상)

양 전 상무가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2013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그룹이 발표한 임원인사에서 상무로 승진하면서 '삼성전자 최초 상고 출신 여성 임원'이 된 것.

삼성전자는 당시 "메모리 설계 전문가로 메모리 제품설계 자동화 추진을 통해 개발기간 단축에 기여"했다는 점을 승진 인사 배경으로 꼽았다.

"일은 해야겠는데 애 봐줄 사람은 없고 결국 출근해서 애들을 면회실에 맡겨 놓고 일했던 일화는 지금도 유명합니다"

올해 삼성 임원인사에서 상무로 승진한 양향자 삼성전자 부장 얘기다. 남들에게는 전설처럼 회자되는 얘기지만 어쩌면 본인에게는 가장 가슴 아팠던 장면일 지도 모른다. 5일 단행된 삼성 임원 인사는 이처럼 사연 많은 여성들의 성공 스토리가 눈길을 끈다. (머니투데이 2013년 12월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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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향자는 대학교수를 꿈꿨으나 집안 형편 때문에 인문계고 진학을 포기하고 광주여상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는 대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선택해야만 했다.

학교 추천으로 1985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그의 첫 직함(?)은 '연구원 보조'였다. 대졸 연구원들의 업무를 보조하는 역할이었다.

2014년 1월에 게시된 삼성그룹 공식 블로그 글에 따르면, 양 전 상무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제가 처음 여상을 졸업하고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연구원 보조 일을 했잖아요. 카피에서부터 회로가 만들어지는데, 도면으로 드로잉하는 굉장히 단순한 업무를 시작했었죠. 그때 당시 차장님이 한 분 계셨는데, 그분이 연구원들과 회의할 때 항상 저를 배제하지 않으셨어요. 그럴 때마다 제가 느낀 건, ‘아, 나도 공부하고 싶다’, ‘나도 저걸 알아야겠다’ 이런 생각. 그분을 시작으로 나머지 선배님들이 한 분씩 맡아 가면서 부문별로 가르쳐 주셨어요.

서글프잖아요, 연구원 보조로만 있기엔. 그 당시에 일본 기업에서 한창 반도체가 많이 들어왔는데, 저에게는 봐야 할 자료가 넘쳐 난 거예요. 근데 모르잖아요, 저는. 까막눈이고. 그 사람들하고 뭔가를 같이 하고 싶었어요. 나도 중요한 일을 하고 싶고, 후배들도 도와주고 싶고… 내가 제대로 안 돼 있으면, 항상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었어요." (삼성전자 공식 블로그 2014년 1월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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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편견과 텃세를 뚫고 공부에 매달렸다. 시작은 일본어였다. 당시만 해도 일본이 반도체 업계 1위를 달리던 때라, '일본어를 알아야 기술을 익힐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2014년 1월15일자 동아일보에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사연이 담겨 있다.

18세 말단 직원은 겁도 없이 사내(社內) 일본어 학습반에 들어갔다. “고졸인 네가 공부를 할 수 있겠느냐”는 강사의 비아냥거림과 대졸 연구원들의 텃세를 견뎌가며 매일 3시간씩 공부했다. 주말에도 기숙사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공부했다. 그리고 3개월 만에 가장 먼저 일본어 자격증을 땄다.

일본어를 기가 막히게 하는 여사원이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연구원들이 번역이 필요한 일본 서적을 들고 찾아오기 시작했다. 기술 자료를 밤새워 번역하다 보니 반도체 설계 업무에 대한 이해는 덤으로 따라왔다. 어느덧 반도체 설계 업무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이 됐다. (동아일보 2014년 1월15일)


동아일보의 이 기사에 따르면, 양 전 상무는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의 첫 번째 임신부이기도 했다. 1990년대 초의 일이다.

1995년 사내 대학인 삼성전자기술대학에서 반도체공학 학사를 받았고, 2005년 한국디지털대 인문학 학사, 2008년 성균관대 전기전자컴퓨터공학 석사까지 취득했다. 독학으로 일어와 중국어도 습득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삼성의 별'이라는 임원을 달았다. 지난 5일, 삼성전자 정기 임원 인사에서 상무로 승진한 것이다. 남들보다 1년이나 빠른 '발탁 승진'이었다. (조선일보 2014년 1월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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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전 상무는 상무 승진 후 삼성전자 공식 블로그와 가진 인터뷰에서 "제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네까짓 게 뭔데’라는 말이에요"라고 과거를 회상했다.

지난해 8월 발행된 삼성사내외보 '삼성앤유'에 따르면, 당시 양 상무는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앞으로의 계획, 목표하는 바를 묻는 말에 “보다 이타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공부해서 남 주자’는 뜻이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에요. 성적이건 스펙이건 그것이 단순히 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함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많은 젊은 친구들이 스스로는 모자람이 채워지는 행복을 느끼고, 사회에서는 멋진 일꾼으로 자라났으면 합니다.” (삼성앤유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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