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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08일 08시 50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1월 08일 09시 46분 KST

성희롱 피해자에서 '변호사'로 변신한 '이변'이 건네는 직설

예민해도 괜찮아

이은의 지음/북스코프·1만2800원

그의 사무실 탁자엔 늘 넉넉하게 티슈가 준비돼 있다. 거울도 있다. 찾아와 우는 사람들이 많고 때로 같이 울기도 하는 까닭이다. 한참 울고 난 피해자가 눈물 닦고 얼굴을 정돈하는 데는 거울이 요긴하다.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에서 이제는 성희롱사건 피해자를 돕는 변호사로 변신한 이은의씨가 책을 냈다. 그는 삼성전기에서 대리 직급으로 일하던 2005년 상사의 성희롱을 회사에 알렸다. 철저한 조사보다는 되레 불이익을 주는 회사를 상대로 2008년부터 4년의 투쟁 끝에 승소했다. 12년을 일한 그곳을 관두고 2011년 서른일곱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입학해 법을 공부했다. 지난 봄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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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무실에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들이 수없이 찾아온 건 자연스러웠다. 그가 변호사가 된 걸 “용케 알고” 온 이들도 있지만, 그가 로스쿨 학생이었을 때부터 비슷한 성희롱 피해자들의 상담이 쇄도했으니 말이다. 그는 직장내 성희롱 사건뿐 아니라 각종 성폭력 사건, 이른바 갑·을 권력관계에 따른 피해사건을 맡고 있다.

이 2년차 변호사가 낸 <예민해도 괜찮아>는 서로 눈물 닦아주며 “힘겹고 외롭지만 그만둘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 “용기를 내서 싸우도록 함께 웃고 울어주는 사람”의 이야기다.

성폭력 혹은 성차별을 겪고 문제제기를 한 뒤에도 ‘무사히’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피해자를 흔히 사회는 ‘생존자’라 부른다. 지은이는 담담히 얘기한다. “사람들은 나를 생존자라 불렀지만 나는 그저 조금 더 행복해졌을 뿐이다. 나를 무엇으로 부르든 좋았다”고.

<예민해도 괜찮아>는 지은이가 자기 삶을 통해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도, 예민하게 행동해도 괜찮다”고 얘기하는 책이다. 그를 찾아온 성폭력 피해 의뢰인이 가해 주체들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것만으로 웃음을 찾아가는 모습도 증언한다.

그는 “여느 청춘들처럼 불안하고 초조한 시절을 겪었으나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에서 눈을 거두고 나니 조금씩 배짱이 생겼다”고 했다. 일상의 크고 작은 폭력과 차별 앞에서 “뭐라굽쇼?” 하고 대꾸하는 배짱이다. 성희롱은 권력 관계 속에서 강자가 약자에게 행하는 폭력이다. 가령 “성희롱인 듯 아닌 듯 불쾌한 터치”를 당했거나 목격했다면, 과연 그런 행위를 거꾸로 내가 상급자에게 할 수 있는지를 따져보자고 한다. 현실에서 나보다 강한 자에게 “노”라고 하긴 쉽지 않지만, 일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노”라고 말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효과 빠른 대응이 될 터이기 때문이다. 그 “노”는 예민해서가 아니라 용기가 있어서 하는 행동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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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그가 맡았던 사건 사례를 주된 축 삼아 로스쿨 재학 시절 얘기, 이 사회에서 약자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 여전히 남성 중심인 사회에 대한 뾰족한 비판을 담았다. 이를테면 여성가족부를 향해서 이 부처가 존재하는 이유는 가족이 아니라 여성에 있음을, ‘육아·출산부’가 아니라 ‘여성부’가 되어야 함을 짚는 대목은 국내 여성계가 힘 모아 실현해야 할 숙제이지 싶다.

그 자신의 표현대로 “파란만장 이 대리”였던 그는 지금 “좌충우돌 이 변(변호사)으로” 살고 있다. 그가 행간마다 새기는 것은 약자들의 연대다. 그 연대가 회사를 상대로 싸우던 시절 얼마나 자신에게 큰 힘이 됐는지도 들려준다. 그는 성희롱 고지 뒤 타 부서로 전출되고 왕따를 당했다. “그 기간에 주변 부서 계약직 언니들한테 받았던 위로는 추운 겨울에 덧입은 털조끼처럼 따뜻했다. (…) 뻔히 증거자료로 쓰일 설문지에 답을 해주는 여직원들이, 해외공장에 근무하면서도 증언해준 업무파트너가 있었다.”

그는 로스쿨 시절, 나이 어린 여자동기한테 ‘교수님 술을 따르라’ 권하는 남자동기에게 “그만하라”고 말했다가, 또 다른 남자동기한테 “넌 보톡스나 맞고 오라”는 언어폭력을 겪었다. 그 사안을 공론에 부쳤다가 때아니게 ‘외로운 마녀’로 등극했다 한다. 그 과정에서 연대와 침묵·외면을 동시에 체험하며 곱씹은 것도 연대의 소중함을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마녀가 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런데 마녀가 다수가 되면 마녀는 마녀가 아니다. 그냥 여성이 된다. 그냥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된다.

그의 글은 읽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쪽에 이를 만큼 술술 잘도 읽힌다. 힘은 진솔함이다. 폭력을 사유하고 맞서온 삶의 힘이다. 재벌기업이라는 거대 강자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하여 마침내 이겼으며, 나아가 자신이 겪었던 피해를 지금 당하고 있는 이들과 손 맞잡은 기록이기에 글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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