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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9일 10시 56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12월 29일 11시 06분 KST

굴욕외교? 최선의 결과? 위안부 협상을 바라보는 시각들

연합뉴스

28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도출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안’은 다양한 평가와 해석을 낳고 있다. ‘굴욕외교’라는 비판도 있고, ‘최선의 결과’라는 평가도 있다. 합의문 안에서도 평가가 엇갈리는 부분이 있고, 일치하는 내용도 있다. 이번 합의가 나오게 된 배경과 과정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각이 교차한다.

우선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대하는 ‘원칙론’과 ‘현실론’ 중 한국 정부가 ‘현실론’을 택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일본에 대한 인식, 역사적 관점,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신뢰 여부 등에 따라 이에 대한 평가는 서로 다를 수 있다.

다만 분명한 건 “위안부 문제는 한·일 양국과 피해 당사자들의 입장, 한일청구권협정 해석 문제, 국민 여론, 양국관계 등 서로 충돌하는 사안들이 얽힌 대표적인 ‘복잡계’”(경향신문 사설)라는 점이다.



I. 총평

29일자 주요 일간지들 대부분은 ‘한계는 있지만, 성과가 적지 않았다’는 평가를 내렸다. “국제법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론적 요구와 기대를 모두 충족할 최선책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한국일보 사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번 타결 내용은 실질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양보를 끌어냈다는 외교부의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중앙일보 사설)는 것.

그럼에도 협상 상대가 있는 외교에서는 본질적으로 완승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일본의 법적 책임 불인정 등 아쉬운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적잖은 수확이 있기에 양국의 노력은 인정해줄 만하다. 일본 내 친한 인사들조차 일본의 어느 정권이라도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못할 거라고 단언한다. (중앙일보 사설 12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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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8일 오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장관 회담을 마치고 청와대를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이나 시민사회단체, 야당 등은 이번 합의를 ‘굴욕외교’로 규정하며 반발하고 나섰다. 한겨레도 사설을 통해 “원칙에 어긋나는 내용을 ‘외교적 해법’이라며 국민에게 강요해선 안 된다”며 “새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진정으로 위안부 문제의 최종 해결을 바란다면 해야 할 일은 어렵지 않다. 복잡한 논리를 펼칠 게 아니라 법적 책임을 흔쾌하게 인정하면 된다. (중략) 아무리 한-일 외교관계가 중요하더라도 문제를 얼버무리는 식으로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 두 나라는 위안부 문제의 최종 해결을 언급할 게 아니라 진정한 해법을 위해 새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12월29일)

더불어민주당의 이종걸 원내대표는 "한일 합의는 50년전 박정희 전 대통령이 3억원에 도장찍었던 제1차 굴욕 한일협정에 이은 제2차 굴욕 한일협정이라고 단정한다"며 "부녀가 대를 이어 일본에 두차례나 식민지배 면죄부를 줬다"고 말했다.



II. 합의문 쟁점별 평가

이번 합의의 주요 쟁점들을 살펴보면 엇갈린 시각차가 두드러진다. 기본적으로 합의문에는 ‘해석의 여지’가 많다. 원칙론에 따르자면 한국 정부가 일본에 끌려간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지만, 현실론에 비춰보면 일종의 타협을 이룬 결과로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1. 법적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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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뒤에 시민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합의'를 반대하는 메시지를 들고 서 있다. ⓒ연합뉴스

그동안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해왔던 단체들은 일본이 ‘법적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위안부 문제가 일본의 ‘국가범죄’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시인해야 한다는 것. 이 부분은 늘 핵심 쟁점이었다.

역대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법적책임이 해소됐다는 입장을 유지해왔으며, ‘도의적 책임’을 인정하는 수준에서 유감의 뜻을 밝혀왔다.

반면 한국 정부는 협정이 맺어진 당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전혀 공론화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법적책임을 인정할 것을 줄곧 일본에 요구해왔다.

이번 합의문에 ‘법적책임’이라는 단어는 명시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는 문구가 담겼을 뿐이다.

무엇보다 이번 합의는 전시 일본 정부·군이 위안소 제도를 운영한 사실과 이런 사실이 전시에 여성의 인권을 유린한 반인도적 국가범죄임을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피해자 할머니와 정대협은 물론 유엔 등 국제사회의 인식을 회피·우회했다. (한겨레 12월29일)

하지만 '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이란 표현 자체는 지난 2012년 이명박 정부 시절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사이토 쓰요시(齋藤勁) 일본 관방부장관의 물밑 교섭에서 합의됐던 문안이다. 당시 사정에 밝은 전직 관리는 "겨우 이 표현을 얻어내려고 3년이나 허비한 거라면 실망스럽다"고도 했다. (조선일보 12월29일)

반면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책임을 분명하게 밝혔다는 점을 강조한다. ‘도의적’이라는 표현 없이 일본 정부가 책임을 공식 인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 이를 ‘외교적 지혜’로 해석하는 의견도 있다.

한국 정부는 고노 담화에도 없던 일본 정부의 책임을 명문화한 것을 성과로 보고 있다. 고노 담화는 ‘일본 정부는 사죄와 반성의 심정을 말씀드린다’고 했을 뿐 정부의 책임을 명시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도의적’ 등의 수식어 없이 책임을 분명하게 인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중앙일보 12월29일)

‘사사에 안’이나 아시아여성기금 사업 당시 일본 총리 서한에는 ‘도의적 책임’이라는 언급만 있었다. 외교부는 “책임 앞에 수식어가 없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책임을 최초로 분명히 인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신각수 전 외교부 차관은 “우리는 법적 책임이 있다고, 일본은 없다고 해석할 수 있게끔 외교적 지혜를 발휘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동아일보 12월29일)

일본의 법적책임 인정은 기존 조약 등 국제법을 고려할 때 애초부터 불가능한 요구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1965년의 청구권 협정의 본질이 식민지 지배 피해 보상이 아니라 양국 간 재산권 정리였고, 한일기본조약에서 한일합병조약의 효력에 대해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라고 봉합한 것 모두가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한국이 제14조국(전승국)이 아닌 제4조국(신생독립국)이었던 데 따른 불가피한 결과였다. 따라서 65년 기본조약 체제의 전면 수정, 나아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전면 부정이 아니고서는 외교 협상에서 꺼내어 들 카드이기 어려웠다. (한국일보 사설 12월29일)


2. 배상, 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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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88) 할머니가 서울 마포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적책임 인정 여부는 일본이 내놓을 돈의 성격과도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이 부분 역시 합의문에 ‘배상’이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다. “일본 정부의 예산에 의해 모든 전(前) 위안부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진행하기로 한다”는 내용이 있을 뿐이다.

피해자 할머니들과 관련 단체들은 강력히 반발한다.

이용수 할머니는 2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뉴스쇼에서보상은 어디까지나 ‘너희가 끝까지 지금 돈 벌러 간 것 아니냐. 그러니까 조금 준다’는 그게 보상이고, 죄에 대한 책임이 배상이다. 그러니까 배상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해 한국 정부가 설립하는 재단에 일본 정부가 10억엔 규모의 예산을 출연하기로 한 데 대해서도 정대협은 “그 의무를 슬그머니 피해국 정부에 떠넘기고 손을 떼겠다는 의도”라고 평가했다. (한겨레 12월29일)

기시다 외무상은 협상 타결 직후 일본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돈이 “배상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일한 간의 재산 청구권에 대한 법적 입장(배상 문제는 최종 종결됐다는 것)은 과거와 아무런 변함이 없다”는 것.

반면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예산이 투입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역시도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발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 당국자는 "과거 아시아여성기금에도 일본 정부의 예산이 일부 투입됐지만, 피해자에게 직접 지원되는 자금은 민간 모금으로 마련됐고, 일본 정부 예산은 인도적 사업에 쓰였다"며 이번에는 피해자 지원에 일본 정부 예산이 투입된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연합뉴스 12월28일)

그러나 이번엔 한국 정부가 만든 재단에 일본 정부가 정부 예산으로 이 돈을 제공하기로 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이 돈을 일본 정부가 위안부 제도를 만들고 운영한 데 대한 사죄의 증거로 해석할 여지가 생긴 셈이다. 이는 아시아여성기금의 실패 사례에 비춰 본다면 분명한 진전이다. (한겨레 12월29일)

동아일보는 재단 설립이 청와대의 아이디어였다며 “위안부 피해자뿐 아니라 관련 단체도 포용해야 문제 해결에 다가설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전했다.

정대협 등은 1991년 위안부 문제가 불거진 이후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하는 데 앞장서 왔다. 하지만 한일 교섭으로 문제가 타결되면 단체들이 존재 의미를 잃게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한일은 이 재단을 통해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 사업’을 하고 자금의 성격도 ‘치유금’으로 불러 관련 단체들이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열었다. (동아일보 12월29일)


3. 위안부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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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세 외교장관(오른쪽)과 일본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이 28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협상 최종 타결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는 부분 역시 해석이 엇갈린다. 이 역시도 합의문에는 명확한 언급이 없다.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에 관여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라고만 했을 뿐이다.

여기에서는 ‘군에 관여하에’라는 구절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발생한다.

더 큰 문제점은 일본이 '책임'을 언급하면서 정작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 문제를 누락한 것이다. 이날 기시다 외무상은 '군(軍)의 관여'라고만 했다. 외교 소식통은 "일본의 국가적·법적 책임이 문제 되는 것이 바로 위안부 강제동원 때문인데 이 부분이 미흡하다"며 "일본이 통감한다는 책임이 결국 '도의적'인 차원이란 얘기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12월29일)

김성한 교수는 “‘군의 관여’는 곧 법적 책임을, ‘상처를 입힌 문제’라는 문구엔 강제성이 내재돼 있다”며 “일본 정부도 이를 간접적으로 인정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화여대 박인휘 국제학부 교수 역시 “일본이 직접 거론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공감을 표한 것”이라고 봤다. (중앙일보 12월29일)


4.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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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전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 앞에서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 참여연대, 평화나비네트워크 등 단체가 한일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내용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제성 인정 여부와 함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사과 수위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합의문에는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 총리대신으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청와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타결 직후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위안부로 많은 고통을 겪고 몸과 마음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하는 마음을 전한다”고 재차 사과의 뜻을 밝혔다.

정부는 아베 총리가 2012년 취임 이후 처음으로 본인의 이름으로 사죄와 반성을 언급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아베 총리의 ‘극우적 성향’이나 일본 내 보수파의 반발 등을 감안하면 이것만 하더라도 상당한 진전이라는 평가도 있다.

반면 “당사자인 할머니들이 아베 총리의 공개적이고 직접적인 사죄를 요구해온 것에 비하면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한 수준”(한국일보)이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쉽지 않다.

정대협은 합의 타결 직후 브리핑에서 “‘대독사과’에 그쳤고 사과의 대상도 너무나 모호해서 진정성이 담긴 사죄라고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관여 수준이 아니라 일본 정부가 범죄의 주체라는 사실과 ‘위안부’ 범죄의 불법성을 명확히 하지 않았다”는 것.


5.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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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문에는 “이번 발표를 통해 이번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음을 확인한다”는 대목과 두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상호 비판을 자제한다”는 언급이 담겼다.

이 부분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강하게 고집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시다 외무상에게 “합의에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라는 문언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교섭을 그만두고 돌아오라”고 주문했다는 것.

중앙일보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그것만 명시해서는 안 된다”며 ‘일본이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라는 조건을 추가했다. 정부는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에도 나름의 의도를 담았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 표현은 우리뿐 아니라 일본에도 해당되는 것”이라며 “일본은 한국이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말라는 취지로 이 표현을 넣자고 했는데,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일본도 말을 바꾸지 마라’는 의미로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중앙일보 12월29일)

그러나 합의문에 이런 내용이 담긴 것에 대해서는 거의 예외 없이 비판적인 의견이 제기된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①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한·일 양국은 물론 세계 무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앞으로 위안부 문제는 절대 거론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우리 팔다리를 묶는 격이다. (중앙일보 사설 12월29일)

② 그동안 한국이 부적절한 요구를 했다는 뜻인가?

이날 양측이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방하는 것을 자제한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왔다. 전직 외교관 A씨는 "사실상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부적절하게 일본 욕을 하고 다녔다고 인정한 것처럼 해석될 수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12월29일)

③ 정부가 무슨 권리로 못 박나?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안을 두고 두 나라 정부가 ‘최종’이라고 판단할 권리는 없다. 이번 합의가 얼마나 위안부 피해자와 우리 국민, 국제사회 등이 수용할 만한 내용인지 지켜보는 게 올바른 태도다. (한겨레 사설 12월29일)


III. 합의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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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한 한일 외교장관회담이 열린 28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 나눔의 집에서 이옥선 할머니가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합의문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건 합의과정이다. 이 부분에서는 정부가 썩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워 보인다.

일단 박근혜 정부는 취임 초기 일본에 ‘역사를 직시할 것’을 요구하며 강경 정책을 펼쳤다. 이런 ‘강경외교’는 지난해 가을에서야 변화 움직임을 보이더니 올해 들어서는 완전히 반대 움직임으로 돌아섰다.

정상원 한국일보 기자는 “정부의 대일 정책이 급변하는 과정 자체가 처음부터 문제였다는 지적도 나온다”며 아래와 같이 적었다.

원죄는 박 대통령이 2013년 취임 초부터 일본에 “역사를 직시하라”고 공박하며 한일 정상회담을 거부해왔던 데서 출발한다. 우리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한국에는 전혀 굽히지 않은 채 미일·중일관계를 강화했고, 결국 다급해진 정부는 대화를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노선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11월 한일 정상회담 등으로 관계 개선 분위기가 무르익었지만, 결과적으로는 2년 반 동안 대일 강공외교는 소득 없는 빈 깡통이었다는 비판만 떠안게 됐다. (한국일보 12월29일)

협상 과정에서 당사자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의 논의가 없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먼저 당사자들의 의견을 물어 종합한 뒤 그것을 기초로 합의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정부 간 합의를 한 뒤 당사자들을 설득하는 방식이었다. 당사자들이 반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가 간 협상이고 보안상 문제가 있긴 하지만 정부가 애초 의견수렴과 설득을 병행해야 했다. (경향신문 사설 12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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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이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연남동 정대협 쉼터를 방문, 일본군 위안부 문제 협상 결과 설명을 하기에 앞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항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조선일보는 “중요한 것은 피해 할머니들”이라며 “합의 내용에 대해 최대한 세심한 설명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초청해 협상 절차와 결과를 직접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회담 타결 직후 이례적이라고 할 만큼 신속하게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해 “대승적 견지에서” 이해를 당부했다.

다음날인 29일 오후, 외교부 1차관과 2차관은 각각 정대협 쉼터와 나눔의집을 방문해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났다. 그러나 할머니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은 29일 오후 2시께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쉼터를 방문해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89)·이용수(88)·길원옥(87) 할머니를 만나 정부 입장을 설명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두 할머니와 함께 쉼터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있다가 차관이 들어서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당신 어느 나라 소속이냐, 일본이랑 이런 협상을 한다고 알려줘야 할 것 아니냐"고 호통을 쳤다. (연합뉴스 12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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