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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8일 17시 23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12월 28일 17시 24분 KST

‘마리텔' 박진경 피디 "엄마가 게임만 하더니 성공했대요"

뭐랄까, 좀 더 들떠 있을 줄 알았다. “피디로서 뭔가 해낸 것 같아요” “성공해서 기뻐요” 정도의 말은 해도 되지 않나.

“그런 감흥을 느낄 시간이 없어요. 매일 할 일이 쌓여 있어서. 일이 너무 힘들거든요. 성격이 원래 무디기도 하고.” 그래도, 그래도라며 묻고 또 물어 쥐어짜 받은 소감은 이 정도다. “맞아요. 상을 받은 것은 기뻐요. 올해 정말 많은 상을 받았어요. 특히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상’(티브이예능부문 최우수상)과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국무총리 표창)은 포맷의 힘을 인정해준 것 같아 기분 좋았어요.” 일희일비하지 않는 무던함이 성공의 비결이었을까. 2015년 지상파 예능계를 뒤집어놓은 <마이 리틀 텔레비전>(<마리텔>)을 만든 박진경(33) 피디를 16일 서울 상암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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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샀다는 털이 복슬복슬한 그의 모자처럼, 2015년 예능계는 풍성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삼시세끼>시리즈와 19금, 육아 예능의 여전한 인기에 쿡방이 가세했다. <일밤-복면가왕>으로 노래에 장치를 심은 추리 음악 예능도 다시 한번 휘몰아쳤다. 그 대부분이 기존 포맷에 살을 붙인 것과 달리,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전혀 새로운 포맷을 창조했다는 점에서 2015년 방송계 왕좌에 오를 만하다. 올드미디어로 취급되던 티브이가 인터넷, 1인 방송 등 뉴미디어를 포용하며, 변화된 미디어 환경을 영리하게 활용했다. 유행을 선도하는 케이블 방송을 따라다니기 바빴던 지상파 예능의 자존심을 살렸고, 2014년 1월 <일밤-아빠 어디가 시즌1>이후 죽만 쑤던 문화방송 예능을 회복세로 돌렸다. “그냥 남들이 했던 포맷을 따라 만드는 걸 너무 싫어해요. 안 해본 포맷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인터넷 문화를 공중파로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인터넷을 사용하는 젊은 세대들만 잡자”고 생각했다는데, 신구의 융합까지 이뤄졌다. 이말년 등 인터넷 스타도 나오지만, 헤어디자이너 같은 평범한 직업군이나, 이혜정 요리연구가 등 다양한 세대들이 좋아하는 출연자들이 등장한다. 인터넷 채팅이 익숙지 않은 이혜정이 돋보기를 쓰고 빠르게 넘어가는 작은 글자를 읽으며 누리꾼과 소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우리 프로그램의 키워드는 소통이에요.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에 익숙한 시청자들을 다 잡으려는 욕심은 있어요.” 딱딱한 인터넷이 모태이지만, 김영만 종이접기 아저씨가 잊고 지내던 순수했던 동심을 건드리는 등, 출연자에 따라 다양한 감정과 마주하게 한다.

지상파 예능을 두고 문화적, 미디어적 분석이 쏟아진 게 얼마 만인가. 메인 연출 입봉작에서 대박이 터지기는 쉽지 않다. 김구라는 “(박진경) 피디여서 이 프로가 나왔다”고 말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는 2008년 피디가 되기 전에 게임, 컴퓨터, 음악으로 점철된 ‘박진경의 인생’이 녹아 있다. 스스로 “중독자였다”고 말할 정도로 게임을 좋아한다. “엄마가 그래요. ‘맨날 게임만 하더니 게임 같은 거 만들어 성공했구나’라고.” 음악에도 미쳤다. “대학 때 밴드에서 베이스 기타를 쳤고, 외국 공연 실황 비디오를 사 모으기도 했고. 특히 메탈을 좋아해요.” “피디가 자막을 쓰는지도 몰랐을 정도”로 관심 없던 그가 문화방송에 지원한 것도 “2007년 문화방송에서 메탈리카 공연 실황을 보다가 자막으로 나온 공고 때문”이다. “운이 좋았던 게 필기 시험 주제가 뮤직비디오 콘티 짜기였어요.”

범상치 않은 ‘움짤’ 등 편집 센스가 만점이라는 점에서 그는 김태호 피디를 연상케도 한다. “입사 뒤 <무한도전>조연출을 3년 가까이 하면서 김태호 피디한테 예능을 배웠어요.” “번득이는 아이디어보다도 피디한테 가장 중요한 것은 성실함과 책임감”이라며 피디는 직장인임을 강조하는 부분은 나영석 피디와도 닮았다. 적당히 튀고, 적당히 평범하고. 그래서일까. 박진경 피디한테 두 피디의 현재 모습을 기대하기도 한다.

2016년에는 무엇을 기대할까. “마리텔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고민해요. 세트를 벗어나고도 싶고, 음악 등 티브이에서 소외된 장르도 활용하고 싶고.” 일이 너무 힘들다면서도 시작부터 끝까지 프로그램 생각이다. 본인이 출연자가 되면 어떤 콘텐츠를 기획하겠냐고 물으니 “음악을 선곡해 들려주는 것?”이라고 답했다. 누군가 그 콘텐츠를 가져오면 통과될 수 있을까? 돌아오는 대답이 그답다. “아니요. 너무 평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