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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3일 10시 26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12월 23일 10시 27분 KST

'제1호 재정착' 미얀마 난민 22명이 한국에 도착했다(화보)

연합뉴스

태국 난민캠프에 머물던 미얀마 난민 22명(총 네 가족)이 23일 한국에 왔다.

이들은 '1호 재정착 난민'이다.

* '재정착 난민제도'란?

: 해외 난민캠프에서 한국행을 희망하는 난민을 유엔난민기구(UNHCR) 추천을 받아 심사 후 수용하는 제도. 1950년대부터 UNHCR이 추진해왔으며 미국, 호주 등 28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일본도 2010년부터 이 제도를 운용 중이다. 국내에서는 관련 규정을 담은 난민법이 2013년 7월 시행됐다.(연합뉴스 1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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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착 난민제도'에 따라 23일 오전 국내로 입국할 예정인 텐쏘씨 자녀. 텐쏘씨는 2004년 태국으로 도피해 메라캠프에서 살다가 2011년 결혼해 3남1녀를 두었다.

정부가 2013년 7월 ‘재정착 희망난민제도’를 도입한 이후 난민들이 입국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스스로 국내에 들어온 난민에게만 난민 지위를 부여하는 소극적인 태도에 그쳤다. 하지만 올해부터 시범 시행하게 된 재정착 희망난민제도는 훨씬 적극적인 난민 수용제도다. 정부가 유엔난민기구(UNHCR)의 추천을 받은 제3국에 체류 중인 난민을 ‘찾아서 데려오는’ 것이다.(중앙일보 12월 23일)

이들은 어쩌다가 한국까지 오게 됐을까?

국민일보에 따르면, 이들은 미얀마 정부의 소수민족 탄압 등을 피해 태국 난민캠프로 건너갔다가 길게는 19년간 난민캠프 생활을 해왔다. 공통적으로 "한국에서 아이들 교육을 잘 시키고 싶다"는 바람으로 한국행을 선택하게 됐으며, 각각 아래와 같은 사연을 가지고 있다고 국민일보는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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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뚜씨는 1993년 배우자와 결혼한 후 당시 미얀마 정부군을 피해 태국에 도착한 다음 메라캠프에서 생활해 왔다.

쿠뚜(44)씨 가족

: 카렌족인 쿠뚜씨는 1988년 미얀마 정부군을 피해 태국으로 넘어갔으며 96년에 난민캠프에 정착해 2남 3녀 가족을 이룸. 2006년 태국 벌목회사에서 일하다 지뢰를 밟아 오른쪽 발목이 절단되는 등 녹록지 않은 캠프 생활을 해옴.

텐소(34)씨 가족

: 3남 1녀의 아버지이며, 2004년부터 태국 난민 캠프에서 생활함. 여섯 살 때 오른쪽 눈을 실명했으며, 캠프에서 농장일을 하며 생계를 꾸림. 텐소씨는 "한국에서 목공이나 건축 기술을 배우고 싶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고 싶다"고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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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우씨는 2003년 태국으로 도피해 메라캠프에서 생활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005년 혼인해 3명의 자녀를 두었다. 사진은 난민 캠프에서 찍은 것.

나이우(29)씨 가족

: 2003년 캠프 생활을 시작해, 세 아들을 둠. 한국에서 딸을 낳고 싶다고 밝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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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쪄씨는 2002년 태국에 온 뒤 움피엠캠프에서 생활하다 2011년 배우자를 만나 혼인했다. 1살인 아들을 한국 같은 교육 환경이 좋은 곳에서 가르치고 싶단 꿈을 가졌다. 사진은 난민 캠프에서 찍은 것.

푸쪄(32)씨 가족

: 2002년 난민캠프에서 아내를 만나 2011년 결혼.

이들은 당분간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에서 생활하게 된다.

'대한민국 여행 증명서'를 발급 받고 입국한 이들은 인천 중구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에서 6~12개월 간 생활하게 된다. 아이들은 오는 3월부터 대안학교인 한누리학교를 다니게 예정이다. 그 전까지 경인교대 등의 지원을 받아 한국어 교육과 한국 사회 적응 교육 등 각종 특강과 체험학습을 받는다.


센터를 나온 이후에는 카렌족 커뮤니티가 있는 경기 포천과 부평 등지에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뉴시스 12월 23일)

법무부는 2017년까지 최대 60명의 미얀마 난민을 더 데려올 계획이다. 김영준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은 “재정착 난민이 한국에서 ‘코리안드림’을 실현할 수 있도록 따뜻한 관심과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중앙일보 1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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