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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08일 15시 10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12월 08일 15시 14분 KST

왜 총기 살인 사건의 대부분은 남자가 저지를까?

전체 살인의 85%는 남성이 저지른다. 동성 간의 살인 중 91%, 피해자와 살인자가 서로 관계없는 사람이었던 동성 간의 살인 중 97%는 남성이 저지른다.

이 놀라운 수치는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재확인된다(캘리포니아 주 샌버나디노에서 일어난 최근 사건은 부부가 범인이었다는 점에서 조금 특이하긴 했다).

아무튼 정치인들과 매체는 이번 비극의 원인을 설명하며 정신 질환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 총을 구하기가 너무 쉽다는 등의 평소에 하던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설명들은 중요한 질문을 일부러 비껴 간다. 왜 이런 총기 사건에는 늘 남성이 관여되어 있을까? 그리고 거의 언제나 젊은 남성인 이유는 뭘까?

진화 심리학이 이에 대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위태로운 남성성

심리학자 조셉 반델로와 제니퍼 보손은 남성만이 겪는 것으로 보이는 딜레마를 ‘위태로운 남성성’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남성성’이란 것은 남성 개개인의 문화에 따라 정의가 달라진다. 그러나 아주 간단히 말해서, 그들은 남성성은 지속적으로 획득해야 하는 상태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스스로 느끼는 자신의 가치는 ‘진짜 남자’로 보이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남성성이 위태로운 이유는 쉽게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생이 쉴 새 없이 던지는 도전에 부합하지 못할 경우에 잃게 되는데, 그 도전은 육체적 용감함, 존경과 지위를 놓고 다른 남자와 벌이는 경쟁 등이다.

이 개념을 남학생들에게 소개하면 그들은 내 말을 즉시 이해한다. 하지만 여성들에게도 이런 게 있느냐고 물으면 여성들은 혼란스러워 하는 표정을 짓곤 한다.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이 여성성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한 사람들은 있었다.) 이에 따르는 논의에서 ‘남성성’이 ‘여성성’보다 위태롭다는 것은 곧 분명해진다.

이런 남성 딜레마의 뿌리는 우리의 선사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물계 전체에서 번식에 적게 투자하는 성(거의 언제나 수컷)은 짝에 대한 성적 접근권을 두고 자기들끼리 경쟁한다.

chimpanzee

역사적으로, 강력한 남성들은 언제나 서열 아래의 남성들보다 여성들에 대한 더 큰 성적 접근권을 누렸다. 지위를 놓고 싸우는 이 음산한 싸움에는 폭력이 등장하는 일이 많았다. 인류학자 나폴레옹 샤농은 여러 해에 걸쳐 남미의 야노마모 족을 연구했다. 그는 다른 남성을 죽인 남성이 아무도 죽이지 않은 남성들보다 아내들을 더 많이 얻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어느 모로 보나, 남성은 육체적 폭력을 행사하겠다는 위협이 신빙성이 클수록 집단 내 지위가 더 높았다.

여러 문화권에서 남성의 ‘우세 추구’는 다른 방식으로 발현된다. 그러나 이것은 남성들 사이에서 보편적인 동기부여 원칙임이 분명하고, 우세를 얻으면 만족스럽고 보상이 주어진다. 학자 조너선 갓셜은 이렇게 표현했다.

물리적으로 다른 남성을 지배하는 것엔 도취 효과가 있다.

그래서 적절한 때에 적절한 사람에게 행하는 폭력은 사회적 성공의 티켓이 된다.

경쟁적 욕구

젊은 남성이 지위와 지배에 특히 관심을 갖는 것에는 타당한 진화적 이유가 있다.

초기 인류 사회에서는 성인기 초기의 경쟁에서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가 남성이 여생 동안 사회적 그룹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결정했다. ‘리셋’ 버튼을 누르고 다른 집단에 가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에, 십대 시절의 일들이 아주 중요했다.

그래서 젊은 남성들 간의 위험이 큰 경쟁이 자원을 얻고, 힘을 보여주고, 지위를 위한 도전에 맞서는 능력을 ‘뽐내는’ 기회를 제공했다. 결과적으로 영웅적인, 혹은 심지어 무모한 행동에 지위와 존중이 보상으로 주어졌다. 물론 그 젊은 남성이 살아남았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오늘날 우리 문화에 널리 퍼진 스포츠는 지금과는 아주 다른 시기에 진화된 젊은 남성들의 성향을 표출할 수 있는 건설적인 대안으로 발달된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합법적으로 허가된 검투 경기장 같은 곳에서 젊은 남성들은 고대라면 훌륭한 전사나 사냥꾼이 되는데 필요했을 던지기, 막대기로 치기, 달리기, 몸싸움, 태클, 손과 눈의 협응 능력을 과시할 수 있다.

젊은 남성 증후군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든 남성보다 젊은 남성의 폭력적 행동을 더 두려워한다. 그 공포에는 타당한 근거가 있다.

젊은 남성들이 위험이 높고 공격적인 행동을 할 성향이 높다는 것 때문에, 캐나다 심리학자 마고 윌슨과 마틴 달리는 ‘젊은 남성 증후군’이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이 두 학자들은 1975년 미국에서 연령과 성별과 살인 피해의 관계를 연구했다. 여성의 경우 살인 당할 가능성이 평생 크게 변하지 않았다. 반면 남성의 경우는 차이가 컸다. 10세 남성과 여성은 살인 당할 확률이 같았다. 그러나 20대가 되면 남성은 여성보다 살해 당할 확률이 6배 더 컸다.

윌슨과 달리의 데이터와 비슷하게, 2003년 시카고에서 살해 당한 598명 중 87%는 남성이었고, 그 중 64%는 17세에서 30세 사이였다. 남성이 치명적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확률은 10대 후반부터 20대 후반 사이에 가장 높았고, 그 뒤로는 나이가 들수록 차차 낮아진다.

자연은 폭력에 필요한 높은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젊은 남성에게 제공해 주어 남성 폭력의 연료를 제공한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영장류인 침팬지에 대한 연구에서, 서열이 높은 수컷은 가장 높은 공격성과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보였다. 게다가 모든 성인 수컷 침팬지는 배란기 암컷이 있을 때 가장 높은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보였다. 이는 높은 수치의 공격성과 관련이 있을 뿐, 실제 성행위의 유의미한 증가는 나타나지 않았다.

인간의 테스토스테론과 공격성의 관련을 연구한 나를 포함한 연구자들은 남성들이 다른 남성들과 경쟁하고 있을 때, 혹은 남성의 사회적 지위가 어떤 식으로든 도전 받고 있을 때 테스토스테론에 기반한 폭력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높은 테스토스테론은 도전에 맞서기 위한 어떤 경쟁적 행동도 가능하게 하는데, 거기엔 육체적 폭력도 포함된다.

테니스와 레슬링 같은 경쟁적인 스포츠의 승패에 따라 남성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올랐다 내렸다 한다는 걸 보여주는 연구들이 많다. 심지어 체스도 포함된다.

스포츠 팬들은 스포츠를 보며 비슷한 테스토스테론 증가를 경험한다. 중요한 경기 후 일어날 수 있는 폭력과 파괴적 행동을 설명해 주는 사실이다.

분데스리가 3부 리그 팀의 팬들끼리 싸우다 부상을 입은 한 남성.

여기에 총이 더해지면

이러한 폭력 등식에 총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2006년에 나는 동료 팀 캐서와 한 학생과 함께 총에 대한 남성들의 반응을 실험실에서 연구해 심리 과학 저널에 실은 바 있다. 우리는 총을 다룬 남성들이 보드 게임 ‘마우스 트랩’을 다룬 남성들보다 훨씬 더 높은 테스토스테론 수치와 공격적 행동을 보였다는 것을 발표했다.

그 연구에서 피험자들은 총 또는 쥐덫을 분해하고, 부품들을 다루고, 조립하는 방법 안내서를 적었다. 그런 다음 다른 사람이 먹을 물에 핫 소스를 넣을 수 있게 해주었다. 총을 다루었던 피험자들은 핫 소스를 상당히 더 많이 넣었다. 그리고 사실은 이 물을 아무도 마시지 않을 거라고 하자 실망감을 더 많이 표현했다.

즉 테스토스테론이 없으면 위협의 신호가 공격적인 반응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2014년에 캘리포니아 주 산타 바바라에서 폭력을 행사했던 대학생 엘리엇 로저는 오싹한 유튜브 영상에서 명백한 징후를 보였다. 처음으로 총을 산 다음 테스토스테론 급증을 경험한 것이 분명했다.

“총을 사서 내 방에 가져왔는데 힘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느꼈다. 이제 우두머리 수컷이 누구야, 이 년들아?” 그가 말했다.

총기 난사범 = 서열 낮은 패배자?

젊은 남성의 폭력은 타인들의 존중을 받지 못하는 젊은 남성이 저지를 확률이 가장 높다. 그들은 업신여김과 따돌림을 당한다, 자신들이 원하거나 마땅히 가져야 할 것을 빼앗겼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영국 임상 심리학자 폴 길버트는 ‘사회적 주목 유지 이론’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길버트에 의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려고 서로 경쟁한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주목하면 우리는 지위를 얻는다. 타인들의 주목으로 인해 상승된 지위는 우리에게 온갖 긍정적 감정을 준다. 그러나 타인들에게 지속적으로 무시당하면 훨씬 더 어두운 감정들이 생긴다. 특히 질시와 분노가 만들어진다.

매체가 총기 난사범들과 테러리스트들을 툭하면 부적응자나 외톨이라고 묘사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프랑스인 니콜라 에낭은 10개월 동안 ISIS의 인질로 잡혀 있었다. 젊고 살인적인 지하디 전사들을 그는 이렇게 묘사했다.

그들은 대중 앞에서 수퍼히어로 행세를 했지만, 카메라가 없을 때는 여러 모로 좀 한심했다. 이념과 권력에 취한 길거리의 아이들이었다. 프랑스에는 어리석고 사악하다는 속담이 있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사악함 보다는 어리석음이 더했다. 어리석음의 살인적 잠재력을 과소평가하려는 건 아니다.

타인들의 관심이 부족하면 지위가 낮고, 결과적으로 여성에 접근할 기회가 부족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젊은 남성의 테스토스테론과 이것이 합쳐지면 쉽게 불 붙는 위험한 상태가 된다.

수백만 년에 걸쳐 진화한 젊은 남성 정신의 구조를 바꿀 방법은 많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존재를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 득도 되지 않는다.

*본 기사는 허핑턴포스트 US의 'You Should Know How The Male Brain Reacts To Handling A Gun'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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