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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04일 06시 11분 KST

대법원, 법무부의 사시 존치에 '태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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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3일 발표한 ‘사법시험(사시) 한시적 유지’ 안을 두고,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의 근본적 문제 해결은 외면한 채 사시 존치에만 무게를 둔 미봉책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입법부(국회)와 행정부, 사법부가 사법개혁 차원에서 도입하기로 합의하고 법률로 확정해 시행중인 제도를, 정부가 일방적으로 뒤엎으려 한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당장 대법원이 비판적인 논평을 내놨다. 대법원은 이날 법무부 발표 뒤 ‘법무부 사시 폐지 유예 발표에 대한 대법원 입장’이라는 자료를 내어 “사시 존치 등 법조인 양성 시스템에 관한 사항은 법무부가 단시간 내에 일방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맞는 최선의 시스템을 찾기 위해 심층적인 연구와 의견 수렴을 거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사법시험 폐지 유예가 필요한지, 만약 필요하다면 4년이라는 기간이 적정한지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04년 출범한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는 2008년 로스쿨 제도를 도입해 법조 인력을 양성하고 2013년 사시를 폐지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이 제안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로스쿨 2009년 도입, 사시 2017년 폐지’로 변경됐다. 당시 법조계는 ‘사시 폐지’를 놓고 각자 이해관계에 따라 극한 논쟁을 벌였지만, 사법개혁이라는 대의에 따라 사시 폐지에 합의했다. 당시 위원회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사시 제도가 ‘고시 낭인’을 양산하고, 사법연수원 출신이라는 폐쇄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등의 폐해가 있었다”며 “법원과 검찰, 변호사 업계 모두 이해관계가 달랐지만 대승적 차원에서 합의했다”고 말했다.

법무부의 사시 존치 방침이 로스쿨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 관계자는 “로스쿨이 애초 도입 취지와 달리 법학 교육 정상화에 실패한 측면이 있고 고비용 구조 등의 폐해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사시 존치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해법이 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로스쿨의 문제점은 그대로 둔 채 기존 사시 제도의 폐해까지 가중되는 상황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법무부가 이날 “여론조사 결과 80% 이상이 사시 존치에 찬성했다”는 이유를 내세운 것에 대해서도 공정성 논란이 일고 있다. 법무부는 시민 10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사시 유지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85.4%, 반대하는 의견은 12.6%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설문조사 문항에 “사법시험은 누구에게나 응시 기회가 부여되고, 수십년간 사법연수원과 연계하여 공정한 운영을 통해 객관적 기준으로 법조인을 선발하여 왔다”는 등의 설명을 붙여, 공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일을 정부에 떠넘기려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번 정부 발표는 국회가 자신들이 져야 할 책임을 정부에 떠넘긴 성격이 크다”고 말했다. 국회가 결정해야 할 사시 존치 결정을 정부가 대신 떠안고, 양쪽 주장을 절충한 입장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달 중순 국회에서 열린 사법시험 존치 공청회에서 법무부가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자, 의원들이 정부 입장을 분명히 하라고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시 ‘존치’와 ‘폐지’로 양분된 법조계는 이번 발표를 계기로 더 격렬한 다툼을 벌이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와 전국법과대학교수회는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도 더 확실한 사시 영구 존치를 주장했다. 대한변협은 “사법시험의 가치와 존재 이유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사시 존치 결정을 사실상 4년 후로 연기한 것”이라며 “정부는 사시 존치의 의미를 퇴색시키지 말고, 국회는 사시 존치 법안을 원안대로 통과시켜라”라고 요구했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와 한국법학교수회 등은 정부가 혼란을 가중시킨다고 주장했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는 “‘믿음의 법치’를 강조하던 법무부가 신뢰를 무시하고 ‘떼법’을 용인함으로써 ‘떼법의 수호자’가 됐다”고 비판했다. 법학전문대학원학생협의회는 “법무부 입장 발표에 분노를 표한다”며 총자퇴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서울대 로스쿨은 이날 오후 긴급 학생총회를 열고 학사일정 전면 거부 및 자퇴서 작성 등을 결정했다. 연세대와 고려대, 경북대, 동아대 등 10여개 대학의 로스쿨도 총회를 열고 수업 거부와 자퇴서 작성 등 집단행동에 들어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