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2015년 12월 04일 05시 41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12월 05일 09시 08분 KST

'상습 성추행' 피해자가 재판 도중 들은 충격적인 말

gettyimagesbank

[기사 대체] 5일 오후 2시 (기사 속 ㄴ변호사의 해명이 추가로 들어갔습니다.)

성폭력 사건의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 쪽 변호를 맡은 일부 변호사들이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용어를 사용하거나 평소 행동을 문제삼는 방식으로 피해자를 신문하면서 2차 피해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견디기 힘든 증인신문을 통해 피해자 스스로 소송을 포기하게 만드는 전략이 ‘성폭력 재판’의 관행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한 여성으로부터 직장내 성추행 사건을 맡아 대리해오던 ㄱ변호사는 이번달 1심 선고를 앞두고 지난달 25일 이 여성으로부터 “재판을 포기하고 변호사도 해임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 여성은 “피고인이 이제 와서 경미한 처벌을 받는다 한들 조사와 재판 과정에서 제가 겪어온, 또 남은 상급심 과정에서 피고인의 변호인으로부터 계속 겪을 성적 굴욕감과 인격적 모욕감은 위로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호소했다고 ㄱ변호사는 3일 전했다.

이 여성은 지난해 상습적인 직장 내 성추행을 이유로 상사를 고소했다. ㄱ변호사는 “의뢰인이 증인 신문 과정에서 특히 상처를 받고 많이 울었다. 곧 열릴 공판에 다시 증인으로 출석하는 데 대한 부담을 크게 느낀 듯하다”고 말했다.

default

피해 여성이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것은 지난 8월의 일이다. ㄱ변호사와 신문조서 등에 따르면 당시 피고인의 변호를 맡은 ㄴ변호사는 피해자의 평소 업무처리 방식, 성격 등에 대해 1시간30분여 동안 신문을 이어간 뒤 “평소 증인의 성격이나 행동, 업무처리 방식 등으로 보아서…왜 젖가슴 또는 몸에 팔이 닿는 부분에 대해서는 달리 피고인에게 지적하거나 말한 바 없습니까”라고 질문했다.

이 여성은 “옆자리에 바로 앉아 있는 분이 나이도 많으신 남자 직원들인데 그런 표현을 써서 말할 수 있겠느냐 ”고 대답했다. 당시 재판에 참석했던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변호사가 ‘젖가슴’ 표현을 쓰자 피해자가 크게 동요하며 울먹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피해자의 업무방식 등 사건과 관계 없어보이는 질문이 이어진 뒤여서 더욱 모멸감을 느꼈을 것 같다”고 전했다.

ㄴ변호사는 이에 대해 “피해자의 증언밖에 없는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선 피해자의 진술이 신빙성 있는 증언인지 여러가지 방식으로 점검해야 하고, 피해자가 어떤 사람인지가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관련 내용을 파악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성추행 사건에선 몸의 어느 부분에 닿았냐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에 피고인쪽 입장에선 물어볼 수밖에 없다. 그런 부분까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한다면 변호인이 변호를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여성단체들은 성인인 성폭력 피해 여성이 증인 신문 과정에서 피고인 쪽으로부터 입는 2차 피해는 현재와 같은 시스템으로는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재판 동행 지원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최근 들어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변호사들 사이에선 모욕 주기, 인신공격 등을 활용하며 ‘이렇게 공격하면 (피해자가) 나가떨어진다’는 관행이 만들어진 것 같다. 시중에는 현직 변호사가 (가해자 입장에서 취할 수 있는) 성범죄 사건의 유형별·시간대별 대응 전략을 기술한 책도 출간돼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나쁜 신문’의 유형으로 “모호하거나 (사실을) 오도하거나 혼동하게 하는 질문, 빈정거리거나 모욕하거나 폄훼하거나 다그치는 질문, 신체적 특징에 대해 불필요하게 구체적으로 묘사하게 하는 질문” 등을 꼽았다.

상황이 이렇지만 성폭력 사건에서 ‘피고인’ 변호인들을 위한 지침은 아직 없다. 수사기관이나 재판부가 가하는 2차 피해와 관련해 수사지침, 대법원 예규 등을 통해 제한 규정이 명문화돼 있는 것과 비교된다. ㄱ변호사는 “피고인쪽 변호인들이 소송에서 필요한 전략을 동원할 순 있지만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성폭력 피해자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돌이킬 수 없는 정신적 외상을 입게 된다. 문제가 될 만한 신문은 재판부가 강력하게 제지하고 대한변호사협회 차원에서 관련 지침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