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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03일 13시 01분 KST

들리는가, 통영의 '굴의 노래'가

한겨레

구름이 낮게 깔려 있다. 경남 통영시 앞바다를 집어삼킬 것 같은 무시무시한 검은 구름이다. 통영 사람들은 이 구름을 ‘바람구름’이라 부른다. 바람구름이 달도 삼켜버리면 다음날은 몹시 춥고 세찬 바람이 분다. “서울에서는 본 적이 없어 신기하고, 바다색은 더 진해져서 놀랍다.” 지난달 26일 통영에서 만난 요리사 김현정(40)씨의 첫마디다. 그는 6개월 전 서울에서 통영으로 내려왔다. ‘젠트리피케이션’(구도심이 개발로 인해 임대료가 상승해 원주민이 쫓겨나는 현상)을 온몸으로 경험한 김씨는 잠시 ‘자신의 시간’을 맡길 곳으로 통영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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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직장은 통영국제음악당 안에 있는 레스토랑 ‘뜨라토리아 델 아르테’. 2년 전 문 연 이 레스토랑은 통영시가 운영하는 통영국제음악당이 살림살이를 챙기고, 이탈리아 음식을 판다. 빼떼기죽(말린 고구마로 끓인 죽), 시락국(장어 머리를 삶아 만든 국) 등 맛깔스러운 향토음식이 지천에 깔린 통영에서 대도시 서울에도 흔한 이탈리아 음식이라니! 경쟁력이 있을까? “신선한 통영의 해산물로 만든 파스타, 피자는 어디서도 맛보기 힘들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이곳의 ‘딱새우 파스타’는 면 사이로, 최고로 신선한 상태에서 익혔을 때만 맛볼 수 있는 풍미 가득한 딱새우가 넉넉하게 박혀 있다.

그는 경희대 호텔관광대학을 졸업하고 제과제빵사로 일하다가 미국을 거쳐 파리 ‘르 코르동 블뢰’를 졸업한 음식업계의 재원이다. 2008년 서울 부암동에서 46㎡(약 14평) 크기의 작은 이탈리아 레스토랑 ‘오월’을 운영했었다. 당시 부암동은 한적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운 동네였다. “보증금 2000만원, 월세 65만원으로 시작했는데 5년 만에 떠날 수밖에 없었다”며 “당시 그 동네 있던 가게들은 지금 거의 없다”고 말한다. 배우 유지태, 언론인 손석희 등 유명 인사들도 찾았던, 꽤 유명했던 오월을 문 닫고 그는 2년간 퓨전 레스토랑 ‘민가다헌’에서 일했다.

인연은 때로 우연하게 찾아온다. 뜨라토리아 델 아르테의 이탈리아인 셰프가 급하게 그만두는 바람에 2주간 잠시 주방을 맡으러 왔다가 눌러앉았다. “그날을 잊지 못한다. 한산도가 한눈에 보이는 레스토랑으로 걸어 올라가는데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첫사랑과의 재회도 이보다 흥분되지는 않을 터! “연애를 시작하는 것 같았다.”

복잡하기만 한 서울 생활이 지겨워 몇 년 전부터 제주도, 단양 등 고즈넉한 곳을 찾아다녔더랬다. 그가 뜨라토리아 델 아르테를 선택한 이유는 또 있다. “밀가루도 이탈리아에서 수입하는 등 재료가 매우 좋고, 해산물 등 식재료가 놀라울 정도로 신선하다”며 “독일인인 통영국제음악당 대표 플로리안 리임의 높은 음식에 대한 이해도 한몫했다”고 말한다. 요리사답게 그는 식재료에 관해서는 예민하다. “통영은 지금 한창 굴 철”이라며 “질 좋은 굴을 독특한 방식으로 양식하는 곳과 계약을 맺어 쓸 생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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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그가 신선한 굴이 넘치는 시장과 점찍은 굴양식장, 자주 찾는 굴 맛집 등을 안내했다. 이른 아침 9시, 서호전통시장. “관광객들에게는 중앙전통시장이 유명하지만, 아침 6시면 텃밭에서 키운 채소와 작은 고깃배에서 잡은 생선을 팔러 나오는 할머니들이 한 골목을 형성하는 서호전통시장이 정겹다.” 그는 수족관에서 펄떡이는 숭어, 병어, 장어 등을 가리키며 “선도가 참 좋다”는 소리를 연발한다. ‘덕이네 막썰어’ 같은 회 전문 식당뿐 아니라 ‘선아해물’, ‘금성장어’, ‘샛터만석수산’ 등 제철 맞은 굴 등을 전국으로 택배 보내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산모에게 좋다는 5년 말린 대구를 파는 ‘중앙상회’에서는 발걸음이 저절로 멈춘다. 이 시장에서는 말린 굴과 최근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에 등장해 화제가 된 군소(바다달팽이)도 판다. 좌판마다 가게마다 향긋한 굴 향이 진동한다.

김씨가 고른 굴 양식업체는 태화물산이다. 독특한 양식 기술을 미국의 굴 양식 전문가로부터 전수받았다고 한다. 그 기술을 도입해 생산하는 굴에는 ‘스텔라 마리스’(Stella Maris)라는 이름을 단다고 태화물산 송미탁 회장이 말했다. 송 회장이 통영 인근에 있는 양식장으로 안내하자 차가운 바람이 머리를 헤집는다. 한겨울 통영 바다는 얄미울 정도로 따스한 겨울 햇살과 여름 태풍보다 세찬 바람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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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양식장에서 가로로 길게 늘어진 망을 들어올리자 딱딱한 껍데기에 든 굴이 보인다. 성인 여자의 손바닥만한 굴을 까서 내민다. 입안에 넣자 천진난만한 짠맛이 휘감아 돌더니 고소한 감칠맛과 단맛이 뒤를 잇는다. 통영에는 굴수산업협동조합에 가입한 양식업자만도 500명이다. 김씨는 “굴의 크기가 일정하고 살은 통통하면서도 관자 부분은 가리비처럼 쫄깃해서 풍미가 좋다”며 “다양한 서양식 요리에 사용하기에 적당하다”고 말한다. 스텔라 마리스는 일반 굴보다 가격이 두배 비싸다. 맛이 소문나서 서울 고급 레스토랑에서 주문이 들어오는 상황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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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햇살이 살포시 어깨를 감싸고 꼬르륵 소리가 배를 채우자 그가 굴 전문점 ‘대풍관’으로 끌고 간다. ‘대풍관’, ‘명가’, ‘향토집’ 정도가 통영에서 유명한 굴 전문점인데, 여행객을 위한 식당들이다. 김씨는 “통영 사람들은 굳이 굴 전문점에 안 간다. 평범한 밥집에도 굴이 반찬으로 나오기 때문”이라고 귀띔한다. 커다란 양은냄비에 수북하게 나오는 굴찜이 유명한 대풍관. 굴무침, 굴탕수육, 굴전, 굴밥, 굴소고기전골, 굴해물된장 등 오만가지 굴 요리가 다 있다. 이보다 다양한 ‘굴의 노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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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가 다음으로 안내한 곳은 혼자 사는 그가 끼니를 해결하는 밥집이다. ‘슬이네 밥집’은 보리밥과 정식이 각각 8000원인데 무려 16가지 반찬이 나온다. 신선한 굴, 학꽁치 회, 수육, 5가지 나물이 포함된 밥상이다. 두런두런 동네 주민들 수다가 들린다. 해가 떨어져 외로움이 밀려들면 김씨는 이른바 ‘다찌집’으로 향한다. ‘서서 먹는 술집’이라는 뜻의 일본어 ‘다찌노미’(다치노미)에서 왔다는 설부터 ‘다 있지’를 뜻한다는 설까지 다양한데, 안주와 술을 따로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주문하는 술에 안주가 따라나오는 형태의 술집을 일컫는다. 김씨의 단골 다찌집은 ‘토담실비’다. “싱싱한 굴은 물론이고 해산물이 다 맛있고 푸짐하다”고 그가 평한다. 허름한 가게 풍경도 술맛을 돋우는 요소다.

아파트를 본래 싫어해 통영의 낡은 주택을 골랐다는 김씨는 별이 초롱초롱 뜨고 파도 소리가 멀리 퍼질 때까지 통영살이의 자랑을 늘어놓는다. ‘굴 동네’로 내려간 요리사의 수다에 침이 고인다.

서울의 맛있는 굴 식당

서촌계단집 서울 서촌 금천교시장 안에 있는 해산물 전문 선술집. 완도산 오징어, 울진산 돌문어 등 산지 직송을 장점으로 내세운 곳. 2~3일 전에는 예약해야 할 만큼 인기있는 술집. 생굴 2만원, 통영산 석화 2만2000원. 종로구 내자동 11-1. (02)737-8412.

돌꽃 굴전골, 생굴, 굴탕수육, 굴전, 굴튀김 등 다양한 굴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굴 전문점. 굴 정식(1인분 2만원)을 주문하면 석화 그라탱을 포함한 5가지 굴 요리가 나온다. 외국관광객들도 입소문 듣고 찾아오는 곳. 마포구 동교동 205-3. (02)324-5894.

오통영 청담점 2013년 서울 동부이촌동에 처음 연 오통영의 청담점. 작은 새우가 올라간 매생이전과 솥밥 등이 유명. 사장 하태환씨는 굴 등 각종 해산물을 통영에서 직송해 온다고 한다. 세련된 카페풍 인테리어가 특징. 굴전 1만6000원. 강남구 청담동 88. (02)544-2377.

충무집 서울 을지로 일대 직장인들의 회식 장소로도 유명한 충무집은 통영시가 지정한 ‘통영 향토음식 지정업소’로, 통영에서 직송한 해산물을 판다. 생굴 2만7000원. 중구 다동 140. (02)776-4088.

한남북엇국 2008년 문을 열어 사골국물에 명태를 넣어 끓인 북엇국으로 유명해진 집. 가자미전, 생굴, 굴전, 각종 찌개 등 술꾼에게 인기 좋은 안주가 많아 회식 장소로도 인기다. 몇년 전 건물을 리모델링해 깨끗한 편이다. 생굴 2만5000원. 용산구 한남동 73-2. (02)2297-1988.

한성칼국수 칼국수로 유명한 집이지만 굴 철에는 생굴과 굴전을 판다. 서울 굴 전문점이 대부분 통영산 양식굴을 파는 데 비해 이곳은 서해안에서 직송한 자연산 굴을 판다. 식도락가인 예종석 아름다운재단 이사가 즐겨찾는 곳. 생굴 2만4000원. 굴전 1만8000원. 강남구 논현동 62-13. (02)544-05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