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2015년 12월 01일 11시 22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12월 01일 11시 23분 KST

이 '보수주의자'가 노조를 만들어 재향군인회장과 싸운 이유

cho

11월16일, 조남풍 향군 회장이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들어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처음에는 계란으로 바위 깨기라고 여겼다. 상대는 보안사령관 출신에 850만 전직 군인 출신 회원과 자산 1조2000억여원의 산하 기업체들을 거느린 조남풍(77·육사 18기) 재향군인회(향군) 회장이었다.

지난 4월 취임했던 조 회장은 선거 과정에서 금품을 살포하고 취임 전후 각종 이권을 대가로 향군 산하 기업체의 납품업체로부터 금품을 챙긴 혐의(배임수재 등)로 3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영장을 받았다. 국방부 장관과 국가보훈처장의 까마득한 육사 선배로 막강한 권력을 자랑해오던 그를 법정에 세우는 데는 조 회장의 ‘돈선거’ 정황의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하고, 각종 비리·부정을 밝혀낸 향군 노조와 장성현 노조위원장의 역할이 컸다. 경상도 출신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하고 “5·16은 혁명”이라고 말하는 보수주의자 장성현 위원장은 왜 노조를 결성하고 투쟁을 시작하게 됐을까.

“사실 처음에는 조 회장에 대한 기대가 컸어요. 보안사령관까지 지낸 명망 있는 군인이니 향군의 병폐를 도려낼 개혁의 적임자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한 달도 안 돼서 기대가 실망이 되고, 절망이 됐어요.” 조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핵심 보직인 경영본부장 자리에 향군에 790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배임·횡령 등)로 재판을 받고 있는 최부용 전 향군 유(U)-케어사업단장의 측근 조영인을 앉히는 등 선거캠프 인사들을 향군으로 불러들였다. 조 회장이 선거 과정에서 최부용 쪽으로부터 돈을 받아 금품을 살포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union

장성현 향군 노조위원장.

“일부에서는 안보단체에 노조가 웬 말이냐고 하더라. 그런데 안보에는 진보와 보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노조도 진보와 보수가 없다”

1978년 임관해 30년간 군생활을 하면서도 부당한 지시에 툭하면 문제를 제기하곤 한 ‘원칙주의자’였던 장 위원장으로선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당시 비서실 공보부장이던 장 위원장은 지난 6월 다른 부장급 직원들과 함께 부장단 명의로 부정선거 의혹과 인사 부정에 대해 묻는 공개질의서를 보냈고, 감사원과 국가보훈처, 청와대 민정수석실에도 탄원서를 보냈다. 하지만 조 회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위계질서가 철저한 군에서 30년 세월을 보낸 장 위원장은 “일개 부장으로서 회장에게 문제 제기를 하는 데 한계를 느꼈다”고 말했다.

좌절하던 때 다른 부장 하나가 장 위원장에게 “그러면 노조를 만들어서 정식으로 싸우자”고 했다. 장 위원장과 노조는 조 회장 선거캠프에서 대의원들에게 금품을 뿌린 내역이 적힌 메모지를 입수하고, 조 회장의 각종 비위를 조사해 결국 지난 8월 검찰에 고발해 검찰 수사를 이끌어냈다. 이후 조 회장은 장 위원장에 대한 특별감사와 징계를 지시하고, 노조 관계자를 승진에서 누락하는 한편, 각종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cho

재향군인회 정상화 모임 회원들이 11월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법원삼거리에서 조남풍 재향군인회 회장의 구속영장 청구에 따른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 회장의 집요한 탄압뿐만 아니라 윗사람에 반기를 들어야 한다는 마음고생도 장 위원장을 괴롭혔다. “군인 출신으로서 윗사람을 내 손으로 고발한다는 게 보통 독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일찌감치 고발장을 써놓고도 ‘이제 좋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계속 기다렸어요.” 그를 지탱했던 것 중 하나는 국방부 공보관으로 일했던 경험이다. 2001년 국방부 대변인실 총괄장교로 부임한 장 위원장은 “처음에는 기자들이 ‘뭐 물어뜯을 거 없나’ 찾아다니는 하이에나 같았다”고 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기자들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군이 조금씩 달라지고 혁신하는 것이 보이더라고요. ‘나는 수뇌부를 보호하는 데만 급급했구나’ 하고 반성이 들더군요.”

그는 “일부에서는 안보단체에 노조가 웬 말이냐고 하더라. 그런데 안보에는 진보와 보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노조도 진보와 보수가 없다”고 했다. “향군이 돈 많은 단체라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일반 직원들은 정말 박봉에 일하고 있어요. 윗사람들이 부정과 비리를 못 저지르게 하면, 직원들의 복지도 향상되고, 윗사람들도 딴생각 없이 안보에만 힘을 쏟을 수 있지 않겠어요?”

관련기사 : 63년 만에 재향군인회에 노조가 결성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