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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30일 08시 35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11월 30일 08시 39분 KST

송곳으로 보는 노동개편 ②기간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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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문제를 다룬 웹툰 <송곳> 중반 부분, 부진노동상담소 구고신 소장이 회사로부터 퇴사 압박을 받고 있는 대형마트 직원들에게 말한다.

“(회사가) 지금 주고 있는 것도 아까우니까 가진 거 내놓고 나가라잖아. 여러분들 쫓아내면 그 자리 그대로 비워두겠소? 월급 몇 푼 더 깎아서 계약직으로…그 자리에 그대로 여러분들 다시 채워넣을 겁니다.”

기간제 노동자는 고용기간이 정해져 있는, 즉 흔히 말하는 계약직 노동자다. 현행 ‘기간제 근로자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은 “사용자가 2년을 초과해 기간제 근로자로 사용하는 경우, 이 근로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본다”고 명시하고 있다. 2년 이상 지속되는 업무는 정규직 또는 무기계약직(기한 없는 계약직)으로 고용하라는 취지다.

정부·여당은 현재 ‘노동개혁’의 일환으로 기간제법을 고쳐 기간제 사용기간 제한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방안에 따르면 노동자가 원하면 2년 범위 안에서 사용기간 연장을 허용하고, 연장기간이 끝나면 무기계약으로 전환해주거나 전환해주지 않으려면 이직수당(연장기간 중 임금 총액의 10%)을 지급해야 한다. 다만 기업이 34살 미만 청년들을 애초부터 기간제로 남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상 노동자의 나이를 35~54살로 제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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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여당은 기간제 근속기간이 길수록 정규직 전환율이 높다는 점을 기간 연장의 가장 큰 이유로 든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사업체 기간제 현황’을 조사해보니, 기간제 노동자의 근속기간이 1년6개월 이하일 때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율은 10.0%에 불과했으나 2년을 넘기면 24.3%로 크게 올라갔다는 것이다.

기간제 노동자의 근속기간을 늘려야 정규직 전환율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구조개선특위의 공익전문가그룹은 지난 16일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계약이 종료돼 일자리를 잃는 것보다는, 현 일자리에서 오래 근무하기를 희망할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사용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은 합리적 대안”이라는 검토의견을 내놨다.

하지만 노동계와 야당은 기간 연장이 법과 달리 2년이 넘어도 기간제를 정규직화하지 않는 기업들의 관행을 합리화해주는 ‘꼼수’라고 본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비정규직 근로자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기간제 노동자 가운데 셋 중 한 명꼴인 33.9%는 2년을 넘겨서도 계속 기간제 노동자로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실장은 “35살 이상 기간 제한 연장으로 정규직 전환율이 현재(24.3%)보다 조금 올라간다 하더라도 결국 전환되지 않는 70%가량은 일자리를 전전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구고신 소장의 “월급 몇 푼 더 깎아서 계약직으로”라는 말은 한국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을 보여준다. 선진국에선 기간제 같은 비정규직을 쓰는 주목적이 노동의 유연성 확보, 즉 경기변동이나 영업환경에 따라 인력수요가 달라지는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다. 정규직과 같은 직무를 하는 비정규직은 일자리 안정성은 떨어지지만 임금을 차별하진 않는다.

반면, 한국 기업은 해고도 쉽게 하고 임금도 아끼기 위해 기간제 노동자를 사용한다. 지난 4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기간제 노동자 시간당 임금은 평균 1만1872원으로, 정규직(1만8426원)의 64.4%에 그쳤다.

정부의 노동개혁 광고. 비정규직 기간 연장을 '일자리 보장'으로 홍보한다.

정부·여당은 이직수당을 신설하면 이런 임금 절감 목적의 비정규직 남용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기업들이 이를테면 2500만원짜리 기간제를 2년 더 쓴 뒤 이직수당 500만원 주는 것이 아까워 정규직화를 한다는 것인데, 기업들은 그냥 이직수당 주고 4년짜리 숙련 비정규직을 반복적으로 쓰는 쪽을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간제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결국 숙련이 필요한 업무까지 비정규직 사용을 확대하고 기존 정규직 일자리마저 기간제로 대체될 위험성이 크다”고 짚었다.

정부·여당은 ‘비정규직 근로자 인식조사’ 결과 82.3%가 기간 연장에 찬성했다는 점도 기간 연장의 주요 근거로 제시한다. 하지만 이 조사에서 정부는 ‘현행법대로 2년이 지나면 정규직 전환하는 경우’에 대한 의견은 아예 묻지 않고, ‘계약기간 연장 뒤 이직수당을 주는 방안’에 대한 찬반만 물었다.

고용부 관계자는 “정규직 전환 항목이 있으면 대부분 찬성하겠지만, 현실성이 떨어져 묻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종진 실장은 “기간제 기간을 연장할 게 아니라, 기업들의 기간제 사용 사유를 제한하는 한편 2년이 지나도 정규직 전환을 하지 않는 기업에 과태료를 물리는 등 처벌조항을 신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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