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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30일 05시 04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11월 30일 05시 04분 KST

연구진 몰래 ‘정부 수립'→‘대한민국 수립'

교육부 페이스북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이 지난 27일 완성된 ‘2015 개정 교과 교육과정 시안 개발 연구 Ⅱ’ 최종보고서(이하 최종보고서)에서 연구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고친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부가 9월23일에 고시한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내용과 맞추려고 평가원이 무리하게 보고서를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 대표 연구자로 참여한 강석화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가 연구진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요구하는 등 파문이 일고 있다.

강 교수는 29일 <한겨레>에 지난 11월17일 연구진이 완성한 ‘2015 개정 교과 교육과정 시안 개발 연구 Ⅱ’(이하 연구보고서)와 11월27일 연구 책임자인 진재관 국사편찬위원회 편사부장(평가원에서 국편으로 인사이동)이 연구진에게 ‘인쇄본’이라며 보내온 최종보고서를 공개했다.

두 보고서를 비교해보면 ‘2015 고등학교 한국사 내용 체계 및 성취기준 표’와 ‘2015 중학교 역사 내용 체계 및 성취기준 표’ 가운데 ‘대한민국 정부 수립’ 관련 부분이 모두 ‘대한민국 수립’으로 수정됐다.

가령 고등학교의 경우 애초 연구보고서(68쪽)에 소주제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6·25 전쟁’이라고 돼 있는 부분이 최종보고서(67쪽)에 ‘대한민국 수립과 6·25 전쟁’으로, 학년(군별) 내용(요소)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대한민국 수립’으로, 성취기준의 ‘8·15 광복 이후 전개된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과정을 파악하고’는 ‘8·15 광복 이후 전개된 대한민국의 수립 과정을 파악하고’로 바뀌어 있다.

‘대한민국 수립’은 뉴라이트 세력이 주장해온 ‘1948년 8월15일 건국절’ 주장과 사실상 같은 말이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고 1945년 독립 이후 정부 수립 과정에 주도 세력으로 참여한 친일파를 미화할 우려가 있어 역사교과서 국정화 과정에서 첨예한 논쟁거리로 부각됐다.

강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지난 9월 중순께 진 편사부장이 한차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고치라고 주문한 바 있다. 교육부에서 9월23일 교육과정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고시할 텐데 이에 맞추라는 취지였다.

당시 한국사 대표 연구자인 강 교수가 “교육부 마음대로 고시를 하더라도, 연구진 보고서까지 바꾸라는 건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진 편사부장도 이를 수용해 17일 연구보고서까지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27일 확인한 ‘인쇄본’에서 내용이 달라진 것이다.

애초 최종보고서도 없이 2015 개정 교육과정이 고시된 것도 졸속이지만, 내용마저 ‘몰래’ 바꾸는 꼼수를 보탠 셈이다. 2011 교육과정 등 이전 교육과정의 경우 최소한 최종보고서가 완성된 뒤 고시가 이뤄지는 ‘순서’ 정도는 지켰다는 게 강 교수의 설명이다.

강 교수는 “교육부가 평가원 쪽에서 의뢰한 연구진이 만든 보고서와 달리 ‘대한민국 수립’으로 고시를 강행했다는 부담을 피하려 최종보고서를 고친 것 같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진 편사부장에게 대표 연구자 사퇴와 함께 연구진 명단에서 이름을 삭제해달라는 이메일을 보냈으나 29일 저녁까지 회신이 없었다.

<한겨레>도 진 편사부장한테 여러차례 연락했으나 답이 없었다. 평가원은 “연구진과의 내용 조율은 연구 책임자인 진 편사부장에게 일임했으며, 평가원도 구체적인 내막은 모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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