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2015년 11월 25일 13시 03분 KST

김영삼 전 대통령 조문 간 전두환(사진)

연합뉴스

전두환 전 대통령은 25일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헌화하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 차림의 전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4시께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경호관 2명을 대동한 채 빈소에 입장했으며, 방명록에 "고인의 명복을 기원합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전 전 대통령은 빈소에서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의 팔을 만지며 "고생 많이 하셨다. 애 많이 썼다. 연세가 많고 하면 다 가게 돼 있으니까…"라고 위로했다.

그는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시냐"고 김 전 대통령의 나이를 물은 뒤 "나하고 4년 차이 났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27년, 전 전 대통령은 1931년생이다.

전 전 대통령은 "건강하게 살다 건강하게 떠나는게 본인을 위해서도 좋다"며 "임의로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 자다가 싹 가버리면 본인을 위해서도 그렇고 가족을 위해서도 그렇고 그 이상 좋은 일이 없지"라고 했다.

현철씨가 "건강이 좀 안 좋으시다 들었는데 괜찮으시냐"고 전 전 대통령의 안부를 묻자 "나이가 있으니까 왔다갔다 하는 거지 뭐"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담배 안 피고 술 안 먹고 그러니까 좀 나을 거야. 담배는 옛날에도 좀 못 피웠고 술은 군대생활 하면서 많이 먹었지만 술 맛을 모른다"고 했다.

Photo gallery전두환 대통령 조문 See Gallery

자리를 함께 한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대통령께서는 상당히 장수하실 것"이라고 화답했다.

전 전 대통령은 "요즘에도 산에 가느냐"라는 현철씨의 물음에 "아유, 못간다"고 답했다.

문민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장을 했던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1993년 취임 첫해) 김영삼 대통령 화분을 가지고 진갑을 축하하려고 댁을 찾아갔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그때 격려를 많이 해주셨다"며 덕담을 건넸지만 전 전 대통령은 아무 답은 하지 않았다.

10여분간의 짧은 조문을 마친 전 전 대통령은 "YS와의 역사적 화해라고 볼 수 있는 거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아무런 답을 하지 않은 채 차를 타고 빈소를 떠났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 22일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근래 언론 보도를 통해 병고에 시달린다는 소식은 듣고 있었는데, 끝내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해 애도를 표한다"면서 "기독교 신앙이 깊었던 분이니까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이라 믿는다"고 위로의 뜻을 전했다.

김 전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의 악연은 10·26 사태 직후인 1980년 전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전 대통령은 12·12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정권의 5·17 조치로 상도동 자택에 가택 연금을 당했고, 신군부에 의해 정계 은퇴를 강요당하면서 정치활동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어 1983년 광주항쟁 3주년을 맞아 23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으로 전두환 정권에 맞선 김 전 대통령은 이듬해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손을 잡고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결성했고, 1985년에는 신민당을 창당해 전두환 정권 퇴진 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은 취임 후 하나회 척결을 통한 숙군을 단행했고, 임기 중반인 1995년에는 전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을 군사반란 주도와 수뢰 혐의로 모두 구속시켰다.

특히 검찰이 1980년 쿠데타에 가담했던 신군부 인사를 기소하지 않자 '5·18 특별법' 제정을 지시해 결국 전원을 법정에 세우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인 지난 2010년 8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 초청으로 청와대에 갔을 때 전 전 대통령이 함께 초대된 것을 알고 "전두환이는 왜 불렀노. 대통령도 아니데이"라고 면박을 준 것은 유명한 일화다. 또 전 대통령이 술을 찾자 "청와대에 술 무러 왔나"라고도 말해 전 전 대통령이 집으로 먼저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