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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2일 06시 01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11월 22일 06시 12분 KST

김영삼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어록 모음)

한겨레

22일 서거한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은 유신 시절 국회의원직에서 제명되자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야 만다”며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 의식을 드러내는 등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수많은 ‘어록’을 남겼다.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우째 이런 일이…”라는 말이 시중의 유행어가 되기도 했으며, 1995년에는 일본 정치인의 ‘망언’을 가리켜, 2008년에는 한나라당(새누리당의전신) 공천을 두고 각각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고 하는 등 거칠고 직설적인 화법도 마다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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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9월 당시 삼선개헌을 저지하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서 철야 농성하는 김영삼 의원과 야당의원들.

다음은 김 전 대통령의 주요 어록.

△순교의 언덕, 절두산을 바라보는 이 국회의사당에서 나의 목을 자른 공화당 정권의 폭거는 저 절두산이 준 역사의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야 만다. (1979년 국회의원에서 제명되자)


△10·26 뒤 나는 대통령이 돼 꼭 4년 단임을 하고 물러나고 싶었다. 그러나 83년 단식투쟁을 통해 대통령을 하겠다는 욕심을 완전히 버렸고, 이런 생각을 버리게 해 준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싶다. (1985년 한국일보 인터뷰)


△노태우씨는 전두환 대통령과 같은 군인 출신으로서 12·12 사태를 일으켰고, 일선 군부대를 빼내 쿠데타를 한 사람이다. 쿠데타 한 사람이 대권을 잡는 것은 군정의 연장이다. (1987년 관훈클럽 토론에서)


△단식 이후 마음을 완전히 비웠다고 생각했는데, 설산을 바라보니 더 비워야겠다는 아쉬움이 살아나는 것 같다. (1987년 지리산 등반 중 기자회견에서)


△산행 도중에 많은 낙오자도 있었다. 민주화도 이와 같다. 민주화의 길은 그만큼 고행의 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민주화 산행에 있어서 최종 고지의 200m 전방에 와 있는 셈이다. (1987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대통령 후보 지명은 축제 속에 이뤄져야 한다. 박종철군 사건으로 온 국민이 우울한 지금, 민정당의 6·10 전당대회에서 하는 대통령 지명대회는 초상집에서 춤을 추는 격이다. (1987년 국회의사당 단식농성 중 인터뷰에서)


△선거혁명을 통한 민주화가 내 지론이었으나, 이 정권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젯밤과 오늘 내내 생각한 끝에 이 정권을 완전히 타도할 것을 결심했다. 나는 박정희 정권을 타도시킨 사람이다. 기필코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타도할 것이다. (1987년 대통령 선거 직후 기자회견에서)


△신한국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 눈물과 땀이 필요하다. 고통이 따른다. 우리 다 함께 고통을 분담하자. (1993년 대통령 취임사에서)


△우리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먼저 깨끗해져야 한다. 우리가 먼저 고통을 기꺼이 감당해야 한다. 나는 대통령인 나 자신이 솔선해야 한다는 각오 아래 오늘 나의 재산을 공개하는 바이다. (1993년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추석 때 떡값은 물론 찻값이라도 받지 않을 것이다. (1993년 청와대 기자간담회에서 정치자금을 받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면서)


△새 정부에 있어 국가기강 확립의 대도(大道)는 하나도 윗물 맑기요, 둘도 윗물 맑기다. (1993년 국가기강확립 보고회의에서 고위공직자의 청렴성을 강조하면서)


△우째 이런 일이…. (1993년 최형우 민자당 사무총장 아들의 대입 부정과 관련해서)


△토지와 건물 등 부동산을 갖고 있는 것이 고통이 되도록 하겠다. (1993년 신경제계획 민간위원과의 조찬에서)


△요즈음 개혁을 하다 보니 환부 하나를 찾아내 도려내면 또 나오고 또 나오고 한다. 32년의 권위주의 시대가 만든 ‘한국병’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실감한다. (1993년 주요 인사 접견에서)


△너무 급히 달려도 위험하지만 달리다가 멈추면 쓰러진다. (1993년 모범수출업체 대표들과 오찬에서 개혁의 속도를 자전거 타기에 비유하면서)


△이 시간 이후 모든 금융거래는 실명으로만 이루어진다. (1993년 금융실명제에관한 특별담화문에서)


△아직도 골프를 열심히 치십니까. (1993년 경제5단체장 회식에서)


△군 개혁을 단행해 문(文)은 문답게, 무(武)는 무답게, 문과 무가 각기 제자리를 찾도록 했다. (1993년 계룡대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서)


△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 사랑을 받지만, 또 한편으로는 달리는 기차를 보고도 짖는다. 그러나 개가 짖는다고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1994년 ‘개의 해’ 의미를 되새기며)


△대통령으로서 정도를 걷고 당당하게 대도를 가겠다. (1994년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서울시 분할론’을 부인하며)


△지지율이 90%를 넘을 때는 너무 높아서 어지럽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민주국가에서는 반대도 있을 것이니, 이제야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1994년 대통령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분노와 저항의 시대는 갔으며, 투쟁이 영웅시되던 시대도 갔다. (1993년 서울대 졸업식 치사에서)


△북한이 무모한 핵개발을 계속하며 서방의 인내를 시험한다면 반드시 자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경고한다. (1994년 민주평통 운영위원 접견에서)


△보름 후면 남북 정상이 한자리에 모여 민족의 장래를 위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키로 했는데 이 소식을 접하면서 아쉽게 생각한다. (1994년 북한 김일성 주석 사망 소식에)


△태풍을 기다리는 것은 밤에 도둑이 들기를 기다리는 것 같지만, 태풍이라도 와 비가 내렸으면 한다. (1994년 극심한 가뭄에 대한 심정을 토로하면서)


△남북한 사이의 체제경쟁은 이미 끝났다. (1994년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로마제국은 외침이 아니라 내부 부패로 망했다. (1994년 인천 북구청 세무비리 사건에 대한 엄단을 지시하면서)


△국민 여러분의 참담한 심경과 허탈감, 정부에 대한 질책과 비판의 소리를 들으면서 대통령으로서 부덕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관련 대국민 특별담화에서)


△이번 기회에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 (1995년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치인의 거듭된 망언에 대해)


△저의 임기 중 대통령 중임제 도입이나 정경유착의 온상이 될 내각제 채택을 위한 개헌, 또는 어떤 형태의 개헌도 단호히 반대할 것이다. (1996년 신한국당 전당대회 치사에서)


△북한이 국지전을 일으키면 전면전으로 갈 수 있다. (1996년 여야 및 국회 지도자들과의 회담에서)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라고 여기고 있다. (1997년 차남 현철씨의 한보사태 이권개입 의혹에 대해)


△최 의원 나요, 나. 빨리 일어나야지. (1997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의식 불명인 최형우 의원을 문병하면서)


△정상에 오르면 반드시 내려갈 때도 생각해야 한다. (1997년 LA다저스 박찬호 선수 가족 초청 오찬에서)


△국민들을 잠시 속일 수는 있어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1999년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 회동에서)


△아버지와 딸은 다르다. (2001년 한나라당 박근혜 부총재를 평가하면서)


△나도 23일간 단식해 봤지만, 굶으면 죽는 것은 확실하다. (2003년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를 방문해 단식 중단을 종용하면서)


△버르장머리 고쳐줘야 한다. (2008년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김무성 의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나라당 공천심사가 엉망이라고 비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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