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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07일 12시 08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11월 07일 14시 37분 KST

66년만에 중국·대만 정상이 만났다

AP

[업데이트 오후 7시 40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7일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우리는 뼈와 살이 터져도 끊을 수 없는 형제이자 피로 이어진 가족(친척)"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은 이날 싱가포르 샹그릴라호텔에서 개최된 66년만의 첫 양안(兩岸. 중국과 대만) 정상회담의 모두발언을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시 주석은 "양안의 66년 역사는 그 어떤 비바람에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며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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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오늘은 매우 특별한 날이다. 양안 지도자가 만난 것은 오랜 양안의 분단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역사도 장차 오늘을 기록할 것"이라며 감개무량해했다.

시 주석은 과거 양안에 암운이 드리워져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왕래가 단절됐을 당시 많은 가정에 깊은 상처와 안타까움을 남겼지만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양안은 1980년대 말부터 평화 발전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며 "특히 최근 7년간 양안간 정세는 안정되고 관계발전의 성과는 풍성했다. 지난 7년의 누적된 노력이 오늘을 있게 했다"고 말해 마잉주 총통 재임 기간 양안 관계의 발전 성과를 높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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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함께 앉은 것은 역사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면서 양안 관계에서의 평화발전의 성과를 얻었다가 다시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양안 동포는 평화적인 생활을 지속해 나가야 하며 자손과 후대도 평화를 함께 누려야 한다"면서 양안 지도자들이 '민중과 역사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시 주석은 "양안 중국인은 스스로의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가 있다는 점을 행동으로서 세상에 증명해 내야 한다"고도 말했다.

시 주석은 양안 동포가 손을 맞잡고 함께 분투해 ▲ '92공식(九二共識) 견지 ▲ 공동의 정치적 기초 공고화 ▲ 평화발전의 길 견지 ▲ 양안관계의 발전이란 정확한 방향 견지 ▲ 양안 교류협력 심화 ▲ 양안 동포의 복지 증진 ▲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공동 모색 ▲ 민족 부흥의 위대한 영광 공유 등을 해나가자고 제안했다.

마 총통도 모두발언을 통해 "우리가 여기 함께 한 배경에는 일갑자가 넘는 분단의 역사가 있다"며 "지난 몇년간 양측은 대립을 대화로, 충돌을 화해로 바꿔나가는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지난 7년간 중국과 대만은 모두 23건의 협정을 체결했고 4만여명의 학생 교류가 있었으며 매년 800만명의 관광객 왕래, 1천700억달러의 무역액을 기록중이라고 덧붙였다.

마 총통은 이어 양안의 평화발전을 위한 5대 주장으로 ▲하나의 중국 원칙인 '92공식'의 공고화 ▲ 적대상태의 완화와 분쟁의 평화적 처리 ▲ 양안교류의 확대 ▲ 양안 핫라인 설치 ▲ 공동 중화문화 진흥을 제시했다.

다음은 중국과 대만의 분단 이후 66년간 진행된 양안 관계 주요 일지.

▲1949년 7월 = 장제스(蔣介石), 마오쩌둥(毛澤東)에 내전에서 패한 뒤 대만에 망명정부 세움.

국민당 정부는 이후 중국과 무역, 교통, 서신왕래 등 공식관계를 단절(三不通: 通航·通商·通郵)하고 민간교류도 금지.

▲1979년 1월 =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대만 동포들에게 고함' 발표, '조국의 평화적 통일 방침' 천명.

▲1987년 11월 = 대만 정부, '탄친(探親)법' 제정, 중국 대륙 내 친척 방문 허용.

▲1991년 5월 = 대만, 본토 탈환을 위한 무력사용방침 폐기.

▲1992년 11월 = 중국의 해협양안관계협회(해협회)와 대만의 해협교류기금회(해기회)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 각자의 해석에 따른 명칭을 사용(一中各表)하기로 합의, '92컨센서스(92공식·九二共識)'.

▲1993년 4월 = 왕다오한(汪道涵) 해협회 회장-구전푸(辜振甫) 해기회 이사장 회동(싱가포르), 분단 40여년만의 첫 고위급 회담.

▲2000년 3월 = 대만 총통선거에서 민진당 후보 천수이볜(陳水扁) 당선.

▲2001년 1월 = 대만, 진먼다오(金門島)·마쭈다오(馬祖島)와 중국 푸젠(福建)성에 한해 '소삼통'(小三通: 통항·교역·우편거래) 허용.

▲2001년 11월 = 대만, 중국인 대만 방문 부분 허용.

▲2002년 8월 = 천수이볜, 대만 공식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 의사 밝히면서 '일변일국론'(一邊一國論) 천명.

▲2003년 8월 = 대만 입법원, 주권 문제에 관한 국민투표 실시 법안 승인.

▲2005년 1월 = 분단 55년 만에 양안 간 전세기 직항 합의.

▲2005년 3월 =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대만이 독립을 추구할 경우 군사적 대응을 승인하는 내용의 '반(反)국가분열법' 통과.

▲2005년 4월 29일 =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롄잔(連戰) 대만 국민당 주석, 60년 만의 첫 국공 수뇌회담(베이징).

▲2005년 5월 = 천수이볜, 중국-대만 정부지도자 간 공식 회담 제의. 중국은 대만 독립을 포기해야 대화가 가능하다고 일축.

▲2006년 2월 27일 = 천수이볜, 국가안전회의에서 국가통일회의 해체와 통일강령 삭제 발표.

▲2007년 3월 = 천수이볜, 4가지(독립, 신헌법, 국호 개정, 발전)가 필요하고 좌우노선의 차이가 없어야 한다는 '4요1몰유'(四要一沒有) 독립노선 천명.

▲2007년 4월 28일 = 후진타오-롄잔 국민당 전(前) 주석 회동(베이징).

▲2008년 3월 22일 = 제12대 대만 총통선거에서 마잉주(馬英九) 당선.

▲2008년 4월 12일 = 후진타오, 보아오(博鰲)포럼서 샤오완창(蕭萬長) 대만 부총통 당선인 회동.

▲2008년 5월 20일 = 마잉주 총통 취임, '삼불(三不:불독립, 불통일, 무력불사용) 정책' 발표.

▲2008년 5월 28일 = 후진타오, 우보슝(吳伯雄) 국민당 주석과 국공 수뇌회담(베이징).

▲2008년 6월 13일 = 제1차 양안회담(베이징)-주말 전세기 운영, 중국인의 대만 관광 허용 합의.

▲2008년 11월 4일 = 제2차 양안회담(타이베이)-여객 직항 전세기 확대, 화물 직항 전세기 운영, 해운 직항 개방 합의. 통상(通商), 통항(通航), 통신(通信) 교류의 '대삼통'(大三通) 시대 개막.

▲2009년 4월 26일 = 제3차 양안회담(난징)-공동범죄 퇴치, 사법·금융협력, 정기항공 운영, 중국자본의 대만 진출 개방 합의.

▲2009년 5월 26일 = 후진타오, 우보슝 국민당 주석과 국공 수뇌회담(베이징).

▲2009년 6월 30일 = 대만, 중국 자본의 대만 진출 개방 발표.

▲2009년 11월 16일 = 양안 간 금융감독협력 양해각서(MOU) 체결.

▲2009년 12월 22일 = 제4차 양안회담(타이중)-어업 노무 협력, 농산품 검역, 표준검사·인증 협력 합의.

▲2010년 1월 = 양안 경제협력기본협정(ECFA) 협상 개시.

▲2010년 4~8월 중국 지방정부 지도자 대만 연쇄 방문-한정(韓政) 상하이시장(4월), 황샤오징(黃小晶) 푸젠성장(5월), 류치바오(劉奇보<초두아래 保> 쓰촨성 당서기(5월), 뤼쭈산(呂祖善) 저장성장(6월), 황화화(黃華華) 광둥성장(8월).

▲2010년 5월 = 중국-대만, 상호 관광사무소 개설.

▲2010년 9월 2~8일 = 차이우(蔡武) 중국 문화부장 대만 방문.

▲2010년 9월 12일 = 중국-대만 경제협력기본협정(ECFA) 정식 발효.

▲2010년 9월 대만, 중국 국유은행 2곳 대만 주재 사무소 개설 승인.

▲2010년 11월 = 마잉주, 일본에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는 대만영토" 천명.

▲2011년 1월 = 중국-대만 ECFA 경제협력위원회 공식 출범.

▲2011년 1월 = 대만 교육당국, 중국 유학생의 대만 유학 허용.

▲2012년 1월 = 마잉주, 대만 총통선거에서 재선.

▲2012년 5월 = 대만, 난사군도 전담 공수부대 신설.

▲2012년 8월 = 중국-대만, 대만해협에서 합동 해상 구조훈련.

▲2012년 8월 = 중국-대만 해저 통신케이블 완공.

▲2012년 12월 = 대만, 중국 상하이에 첫 무역사무소 개설.

▲2013년 2월 = 대만 집권 국민당 롄잔(連戰) 명예주석 중국 방문.

▲2013년 6월 = 시진핑 국가주석, 우보슝(吳伯雄) 대만 국민당 명예주석 회동(베이징).

▲2013년 8월 28일 = 중국, 양안교류기금 출범.

▲2014년 2월 11~13일 = 중국-대만, 65년 만에 첫 장관급 회담(난징 및 상하이).

▲2014년 6월 25일 = 중국-대만 2차 장관급 회담(타이베이).

▲2015년 5월 4일 = 시진핑, 주리룬 국민당 주석과 국공회담(베이징).

▲2015년 11월 7일 = 시진핑-마잉주, 첫 정상회담(싱가포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