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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05일 12시 39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11월 05일 12시 40분 KST

H&M X 발망 콜라보레이션 노숙 행렬에 동참해봤다(체험기)

나는 패션의 ‘패’자도 모르는 사람이다. 대학시절 입던 옷을 지금도 입고 다닌다. 이런 내가 노숙까지 하며 옷을 사게 될 줄이야.

4일, 포털사이트에 걸린 한 기사가 나를 사로잡았다. 글로벌 SPA(제조·유통 일괄형 패션) 브랜드인 에이치앤엠(H&M)이 명품 브랜드 ‘발망’과 협업해 옷, 슈즈 등 패션 아이템 69종을 내놓았고, 이를 사기 위해 지난 주말부터 사람들이 매장 앞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에이치엔앰이 명품 브랜드와 협업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 소니아 리키엘과의 협업을 시작으로 랑방, 베르사체, 마르니,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이자벨 마랑, 알렉산더 왕 등과 손잡고 제품을 내놓은 바 있다고 한다. 에이치앤엠 쪽은 “협업 작품이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2~3일 전부터 노숙 풍경이 펼쳐졌는데, 이번에는 일주일 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것이 특이하다”고 밝혔다. 그 이유를 회사는 “발망의 오리지널 가격대가 워낙 높고, 현재 전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럭셔리 브랜드 중 하나이어서 그런 것 같다”고 설명했다. 패션을 모르는 나도, 발망은 들어서 알고 있다. 지드래곤이나 투애니원 같은 최고의 아이돌 스타들이 즐겨 입는다고 해서 이름 정도는 들었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노숙까지 하면서 옷을 산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결국 직접 노숙 행렬에 동참해 그들에게 이유를 들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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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밤 H&M 명동 매장 앞에서 발망콜라보 아이템 구매행렬을 취재하기 위해 노숙대기중인 한겨레 이정국 기자.

판매 하루 전인 4일 밤 11시 서울 명동 에이치앤엠 매장을 찾았다. 정문 앞에 침낭과 캠핑용 의자로 무장한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줄 끝이 어디냐고 했더니 안전요원이 “코너를 돌아가라”고 했다. 줄은 건물 코너를 돌아 명동 지하상가 입구까지 늘어져 있었다. 줄 끝에 이르니, 누군가 종이를 내밀며 이름을 적으라고 했다. 169번째였다. 주최 쪽에서 나름 준비를 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줄선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작성한 것”이라는 안전요원의 말이 돌아왔다.

내 앞에는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군인과 여자친구 커플이 있었다. “부천에서 왔다”고 한 남자는 “이번에 옷이 예쁘게 나왔다”고 했다. 휴가를 나와 길거리에서 노숙까지 마다하지 않을 정도의 열정이 느껴졌다. 외모에서도 ‘패피’(패션피플의 줄임말)의 인상이 풍겼다. 그는 “보통 이런 콜라보(협업의 줄임말) 제품이 나오면 온라인상에서 2~3배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된다”고 말했다. 특별한 디자인을 즐기면서 재테크도 되는 셈이다.

내 앞에 있던 직장 여성도 옷을 구입하기 위해 휴가를 냈다고 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 사려고 하는 이유를 묻자 “명품의 끝은 옷이다. 누구나 가방 하나씩 명품은 갖고 있지만 옷은 갖기가 힘들다. 접근 자체가 어렵다. 더군다나 일반 직장인이 접근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발망 제품을 이렇게 싸게 산다는 것은 대박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오리지널 발망 제품은 면 티셔츠 하나에 수십만원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번엔 티셔츠 가격을 4만9000원으로 책정했다. 수백만원 넘는 코트도 10만원대면 살 수 있다. 디자인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솔깃할 만한 것이다.

줄 서는 사람들은 패피들과 ‘리셀러’(되파는 목적으로 구매하는 사람)로 구분됐다. 피어싱과 개성있는 옷차림의 패피들과 달리 리셀러들은 패딩과 마스크로 중무장을 했다. 이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네이버 중고나라에서 얼마에 거래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이미 예약판매 글을 올렸다는 이들도 있었다. 정작 디자인보다는 되파는 가격에 관심이 있는 듯했다. “에이치앤앰이 글로벌 브랜드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이번 제품 중 이어폰의 가격이 많이 오를 것”이라는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다.

패피들은 “저런 리셀러들 때문에 우리가 피해본다”고 말했다. 그들이 사재기를 하는 바람에 정작 옷을 못사는 피해자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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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 깊어지자 사람들이 드러눕기 시작했다. 나도 누웠지만 딱딱한 바닥과 냉기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5일 새벽 4시30분, 갑자기 안전요원이 사람들을 일어나게 했다. 줄을 다시 정렬하기 위해서였다. 회사는 커피와 도넛을 제공했다. 아침 7시부터 팔찌를 나눠주고 팔찌 색깔 순서대로 입장을 시킨다고 했다. 하필 가장 피곤한 시간에 잠을 깨워서인지 여기저기서 원망의 목소리들이 나왔다.

아침 7시가 되자 직원들이 돌아다니며 직접 팔찌를 채웠다. 나는 6번째 그룹이었다. 오전 9시15분까지 오라고 했다. 근처 곰탕 집에서 아침을 먹고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가 쪽잠을 청했다. 잠이 모자라니 옷이고 뭐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시간에 맞춰 매장 앞에 도착하니 언론사 카메라가 병풍을 치고 있었다. 이미 쇼핑을 마치고 나온 앞 그룹 사람들이 쇼핑백을 들고 나오자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졌다. 사람들은 죄라도 지은 것처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이고 지나갔다.

들어갈 시간이 됐지만 여전히 우리 그룹은 밖에서 떨고 있었다. 다들 수면 부족으로 신경과민이 극에 달해 있었다. 누군가 “앞 그룹에 있던 리셀러들이 사재기를 하는 바람이 싸움이 나 입장이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저기서 욕설이 터져나왔다.

예정된 시간보다 한 시간 뒤인 오전 10시15분에 내가 속한 그룹의 입장이 시작됐다. 입장하면서 잘 유지되던 줄이 무너졌다. 일부 사람들이 대열을 이탈해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자 여기저기 원성이 터져나왔다. 직원들은 교육을 잘 받은 듯했다. 침착하게 다시 줄을 정렬시켰다. “죄송하다”고 연신 말했지만, 왜 죄송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 외국인이 끝까지 뒤로 가는 것을 거부하자 여기저기 영어 하는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우리나라가 정말로 ‘글로벌화’됐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그렇게 질서가 잡혔고, 드디어 매장 3층으로 진입했다. 사람들은 옷을 사려는 지극히 개인적 이익을 위해 모였지만, 신기하게도 질서가 잡혔다. 서로의 이익 추구가 공감대로 이어진 것이다. ‘이게 신자유주의인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쇼핑 시간은 10분입니다.” 종소리가 울리자 직원들이 박수를 쳤다. 그 상황이 좀 우스웠다. 방송사 카메라들이 그 광경을 담고 있었다. 둘러보니 사실 내가 입을 만하고, 살만한 옷은 없었다. 값이 많이 오른다는 이어폰은 이미 품절이었고, 일반적인 샐러리맨이 입을 만한 코트도 역시 품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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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남았습니다.” 직원들이 재촉했다. 무언가 사야 한다는 강박이 밀려왔다. 한장에 수십만원 한다는 면티셔츠에 4만9000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어있는 것을 보자 나도 모르게 집어들었다. 엑스라지를 입어야 하지만, 사이즈가 없어 라지 사이즈를 샀다. 아마 살을 빼지 않는 이상 입기는 힘들 것 같다.

“사고 싶으신 거 다 사셨나요?” 계산을 하는 동안에도 직원들은 끝까지 친절했다. 옷을 담아준 쇼핑백도 특별 제작된 것이었다. 문을 나서자 나를 향해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비몽사몽 간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다른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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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 X 발망 on The Huffington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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