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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05일 12시 13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11월 05일 12시 14분 KST

왜 아무도 그곳에 수은이 있다고 말해주지 않았나

"아무도 그곳에 수은이 있다고 말해주지 않았어요."

지난 3월 23일부터 보름가량 설비철거공사가 진행된 광주 광산구 장덕동 전구제조업체 광주공장은 2005년 1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수은형광등을 생산하며 하루 3kg 가량의 수은을 취급했던 곳이다.

연합뉴스는 이곳에서 설비절단작업에 투입됐던 김모(60)씨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현장 상황과 현재의 건강 상태를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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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 누출 사고가 발생한 광주 광산구 장덕동 한 전구공장 내부

김씨는 온몸에서 나타나는 원인 모를 통증에 두 달 가까이 병원 여러 곳을 전전했다.

먼지 많은 공사현장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느라 몸이 축났다고 생각했던 김씨는 한의사의 중금속 중독 검사 권유를 받고 나서야 지역의 대학병원을 찾았다.

대학병원에서 김씨는 수은에 중독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김씨의 몸에서는 정상인의 30배가 넘는 양의 수은이 검출됐다.

8월 12일 김씨는 근로복지공단을 찾아 자신이 수은에 중독됐다는 병원진단서를 첨부해 산재를 신청했다.

몸이 아파서 먼저 철거현장을 떠난 동료 유모(55)씨도 한 달여 뒤 수은중독으로 고통받고 있다며 근로복지공단을 찾았다.

김씨는 거동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 달에 150만원에 달하는 약값까지 대느라 하루하루가 고통이지만 연락을 주겠다던 근로복지공단은 3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감감무소식이다.

그 사이 수은중독으로 산재를 신청한 동료는 6명으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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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 누출 사고가 발생한 광주 광산구 장덕동 한 전구공장 내부

20여년 전에 지어져 환기시설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는 지하실에서 안전장구라고는 헬멧, 안전화, 방진마스크가 전부였던 근로자 20여명이 설비 철거공사에 투입됐다.

산소절단기로 형광등 생산설비를 자르고 지하실 바깥으로 꺼내는 작업 과정에서 메케한 증기가 피어오르고 은색 액체가 덩어리째 흘러나왔다.

당시에는 이 물질이 수은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현장에 나와 있던 공장 관계자 누구도 이곳에서 수은을 다뤘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온에서 액체 상태를 유지하는 수은은 산소절단기가 뿜어내는 열과 비슷한 357℃에서 기체로 변하는 독성 중금속이다.

미나마타병으로 알려진 중추신경질환을 일으키는 수은은 피부에 직접 닿을 때보다 증기를 흡입할 때 인체에 더 치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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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 누출 사고가 발생한 광주 광산구 장덕동 한 전구공장 내부

공사를 시작한 지 불과 며칠 만에 근로자들이 몸이 아프다며 철거현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김씨와 함께 철거작업에 투입된 A(45)씨는 "근로자들이 병원에서 수은중독이랑 비슷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더라"며 "공장 관계자에게 수은이 뭐냐고 물어보자 그는 바닥에 널브러진 액체와 통에 담긴 액체를 가리키며 '저게 수은이잖아'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A씨는 "공장 관계자들이 처음부터 수은을 다뤘던 곳이라고 말해주지 않은게 가장 원망스럽다"고 전했다.

전구공장 관계자는 "가동을 멈춘 지 1년이 지난 설비 안에 수은이 남아있으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며 "공장 사정을 잘 아는 직원들도 전부 퇴사해 철거공사 현장에 수은이 있는 줄 몰랐다"고 해명했다.

광주지방고용노동청은 김씨를 포함해 49명의 철거근로자, 업체 관계자 등이 수은에 노출된 것으로 보고 이들의 건강상태를 관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