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2015년 10월 31일 07시 35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10월 31일 07시 35분 KST

꿈이나 기적은 더 이상 안 팔린다

“노래는 꿈이 되고, 꿈은 인생이 되고, 인생은 기적이 되는 리얼 감동 드라마!” 엠넷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케이7>(이하 <슈스케7>)은 매번 이렇게 외치며 시작한다. ‘꿈’과 ‘기적’, ‘드라마’는 올해 방영 7년차를 맞는 <슈스케>의 키워드다. <슈스케>의 전성기였던 2009년 시즌1부터 2011년 시즌3은 이 키워드가 빛을 발했던 시기였다.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노래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평범한 이들이 오디션 무대에서 재능을 발견하고 전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가수로 성공하는 이야기가 기적처럼 펼쳐졌다. 자수성가의 신화나 다름없었다. 시청자들은 개천에서 용이 나는 과정을 생방송을 지켜보며 환호했다. <슈스케>가 불을 붙인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은 2010년 문화방송 <위대한 탄생>과 2011년 에스비에스 <케이팝스타>로 이어졌고, 시청자들은 이후 3~4년 동안 1년에도 몇 번씩이나 감동의 드라마를 보고 또 봤다.

3

자수성가가 불가능한 판타지가 됐다는 사실보다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마치 될 것처럼 꿈을 파는 억지 드라마를 보는 게 더 씁쓸하다. 지난 8월부터 시즌7을 하고 있는 <슈퍼스타케이>의 한 장면.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집’인 <슈스케>가 지난 8월 시즌7을 시작했다. 예선이 끝나고 탑10이 선정돼 한창 생방송 무대가 진행중이던 지난 22일치 <슈스케7>은 엠넷과 티브이엔 두 개 채널을 합쳐 약 2.5%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방송 직후에 나온 <슈스케7>의 음원은 차트에서 찾아볼 수 없었고 에스엔에스(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도 누가 괜찮았는지, 누가 탈락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올라오지 않았다. 시청률이나 화제성이 낮아도 충분히 의미있는 프로그램이 있지만, 시청자가 투표를 통해 참여해야만 우승자가 가려지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다르다. 시청자가 없으면 프로그램이 성립되지 않는다. 이 모든 징후들은 <슈스케>의 유효기간 만료를 가리키고 있다. 다음달 시즌5 방송을 앞두고 있는 <케이팝스타>는 <슈스케>보다 상황이 나은 편이지만, 그래도 낙관할 수는 없다. 지난 4월까지 방영된 시즌4의 경우 특이한 목소리를 가진 이진아를 제외하고는 딱히 떠오르는 출연자가 없다. 우승자가 누구였는지도 단박에 기억나지 않는다. 마르지 않는 샘물일 것만 같았던 오디션 프로그램은 어쩌다가 머지않아 멸종을 맞이하게 될 운명에 놓이게 된 걸까.

연출이나 편집 등 오디션 프로그램 자체의 문제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더이상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꿈이나 기적, 드라마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처음에는 믿었다. 꿈도 믿었고, 기적도 믿었다. 평범했던 참가자가 눈물을 흘리며 우승하는 장면을 보며 대단한 스타가 될 거라고 믿었다. 그 수많은 감동의 드라마가 디즈니 동화들처럼 우승자 발표와 함께 “그렇게 스타가 되어 영원히 노래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았답니다”라는 해피엔딩으로 박제됐다면 그 믿음을 이어갈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슈스케1>의 우승자 서인국은 가수가 아니라 연기자로 자기 자리를 찾았다. 가장 화제였던 <슈스케2>의 우승자 허각과 준우승자 존 박은 여러 장의 앨범을 내고 간간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긴 하지만 스타라고 부르긴 어렵다. <슈스케3>의 ‘버스커 버스커’는 가장 그럴듯한 기적을 만들었다. 1집과 2집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자수성가의 신화를 이어갔지만, 지금은 활동하지 않는다. 와이지엔터테인먼트의 아이돌 그룹 ‘위너’로 데뷔하면서 스타의 길을 걷고 있는 <슈스케2> 출신의 강승윤은 데뷔를 위해 또 한번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과해야 했다. 울랄라세션, 김예림, 유승우, 박보람, 장재인, 김소정, 로이 킴, 정준영, 에디 킴, 박재정, 박시환, 곽진언, 김필 등 <슈스케>를 통해 꽤 많은 이들이 가수가 됐지만 이들 중에 스타가 있냐고 물으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케이팝스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슈스케>보다 역사가 짧아 아직 데뷔하지 않은 이들이 꽤 있다는 걸 고려해도 기대만큼의 성적을 거둔 이들은 많지 않다. <케이팝스타1>의 우승자 박지민은 데뷔 이후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케이팝스타1>의 이하이와 백아연, <케이팝스타2>의 우승자 악동 뮤지션은 앨범이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스타라고 하긴 애매하다. <케이팝스타1>의 이승훈은 강승윤처럼 또 한번의 서바이벌을 거쳐 아이돌 그룹 ‘위너’로 데뷔했다. 시즌3 이후의 출연자들인 버나드 박, 샘 김, 권진아, 이진아, 정승환 등은 <슈스케> 출신의 가수들과 비슷하다. 문화방송 <위대한 탄생>의 백청강, 손진영, 데이비드 오, 배수정, 에릭 남, 구자명, 한동근은 말할 것도 없다.

이제 시청자는 안다. 수년 동안 오디션 프로그램을 열심히 봤지만 기대한 만큼의 스타가 된 이들은 거의 없다는 걸. 제아무리 우승을 해도 ‘슈퍼’ 스타는커녕 연예인이 되기도 쉽지 않고, ‘케이팝’ 스타는커녕 아이돌 그룹 멤버조차도 되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시청자가 가장 잘 안다. 유명 기획사에 들어가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하는 게 최고의 성공 사례로 꼽힐 정도다. 그나마도 많지 않다. 연습생으로 있는 이들은 데뷔를 장담할 수 없다. 앞서 열거한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의 가수들 대다수는 인지도가 높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예 없는 것도 아닌, 연예인이라기보다 유명인에 가깝다. 개인 앨범이나 싱글을 내는 것보다 드라마 오에스티(OST)를 부르거나 피처링에 참여하는 일이 더 잦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오디션 프로그램이 대단한 감동의 드라마를 써 내려갈 것처럼 홍보를 해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우승해봤자 스타는커녕 연예인이 되기도 힘들 거라는 걸 알고 있기에 치열한 경쟁을 하는 오디션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누군가에게 한 표를 던지며 응원하는 것도 재미가 없다.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연예인과 유명인 사이 어딘가에 불시착하는 이유는 뭘까. 애초에 이들 참가자가 그렇게 대단한 원석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구도상 참가자 한 사람에게 집중하게 만든다. 흘려들을 수도 있는 노래를 집중해서 듣게 만들고, 그 안에서 뭔가 장점을 찾아내게 만든다. 심사위원들의 온갖 리액션과 환호, 찬사가 일종의 포토샵 효과를 만들기도 한다. 기타를 들고 나와 색다른 목소리 톤으로 노래를 부르면 그 순간에는 그 음악이 대단한 색깔을 내는 것처럼 보인다. 또 주로 히트곡이나 명곡을 부르기 때문에 그 노래의 힘에 얻어 타면서 과대평가되는 부분도 있다. 후광 효과나 착시 효과 없이도 자립할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이 없는 이들은 금세 빛을 잃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금의 가요계는 자수성가의 신화가 불가능한 시스템이다. 가요 프로그램의 1위는 아이돌 그룹만이 차지할 수 있는 자리가 됐다. 음원 차트는 가요 프로그램과는 다르지만 1년에 두세번 정도 일어나는 역주행이라는 대사건을 제외하면 빅뱅, 소녀시대 등 주류 아이돌 그룹과 아이유, 자이언티 같은 음원 강자들, 그리고 <무한도전> 가요제 특집의 곡들이 돌아가며 상위권을 차지하는 패턴이 됐다.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의 가수들이 주로 하는 음악이 트렌드에 맞는지도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다. 지금의 아이돌 그룹은 음악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다. 트렌드에 대한 감각 없이 싱어송라이터를 자처하며 엇비슷한 음악만을 반복하거나 철지난 댄스음악을 고집하면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노래를 통해 꿈을 기적으로 만들겠다는 드라마는 이제 부담스럽다. 꿈과 기적, 드라마의 자리는 순간과 재미, 갈등이 채웠다. 제이티비시 <히든 싱어>에는 매회 원조 가수와 비슷한 실력을 가진 일반인 출연자들이 나오지만 이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가 되겠다고 외치지 않는다. 대신 꼭 닮은 목소리와 창법으로 찾는 재미를 선사한다. 감동을 얘기하기도 하지만 감동의 주인공은 일반인 출연자와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가수다. 문화방송 <복면가왕>에는 노래 실력이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의외로 노래를 잘하는 연예인들이 나오지만, 노래 한 곡으로 인생을 바꾸겠다는 이들은 없다. 가면을 쓰고 노래하고 벗으며 정체를 드러내는 그 순간을 즐긴다. 엠넷 래퍼 서바이벌 리얼리티 <쇼미더머니>와 <언프리티 랩스타>는 감동의 드라마 대신 갈등의 드라마에 초점을 맞춘다. 활동 경력이 있는 래퍼들이 나와 벌이는 인정투쟁의 난장판이 재미의 핵심이다.

가요계에서도 자수성가는 불가능한 판타지가 됐다는 사실은 꽤 씁쓸하다.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마치 될 것처럼 꿈을 팔고 기적을 팔고 억지 드라마를 쓰는 건 더 씁쓸하다. 지금이라도 오디션장 문을 닫는 게 제작진이나 참가자, 시청자 모두를 위한 선택이다. 그래도 못 닫겠다면 다른 걸 팔아야 한다. 꿈이나 기적 같은 건 더이상 팔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