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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6일 18시 17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10월 26일 18시 17분 KST

몸이 기억하는 번개파워! ... 인간 서지훈 속에도 ‘번개맨' 있네

분장을 지우니 ‘훈남’이 나타났다. 화려한 번개 머리에 은색 망토 대신 차분한 트렌치코트에 스카프를 맸다. 당신은 누구? 이름 앞에 “번개맨”이라는 단서를 붙이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분장을 지우면 못 알아보세요. 서운하기도 하지만, 편하기도 해요.” <모여라 딩동댕>(교육방송) 800회를 맞아 어린이들의 영웅 ‘번개맨’을 연기하는 서지훈(37)을 20일 <교육방송>(EBS) 우면동 사옥에서 만났다.

엄마들이라면 안다. 이 남자의 인기를. 번개맨 보여달라는 아우성에 한번쯤은 ‘하늘의 별따기’라는 방청 신청을 해봤을 것이다. 이영애도 아이들과 보러 가고, 이휘재의 쌍둥이 아들이 번개맨 옷을 입고 ‘번개 파워’를 쏴대는 모습이 예능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한국방송2)에 종종 등장한다. ‘번개맨’은 <모여라 딩동댕>에서 공개방송으로 이뤄지는 한 꼭지로, 번개맨이 악당 나잘난, 더잘난으로부터 어린이들을 구한다. 또봇, 폴리, 뽀로로 같은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달리 사람이 분장한 캐릭터가 이렇게 사랑받는 건 드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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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훈은 사실 2대 번개맨이다. 2013년 8월부터 번개 옷을 입었다. 1대 번개맨 서주성이 2000년부터 13년간 했다. 교육방송 쪽은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새로운 번개맨을 등장시켰다”고 한다.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한 뮤지컬 배우로, 2011년 <원효>의 주인공 ‘원효’를 비롯해 <사랑은 비를 타고><내 사랑 내 곁에><미스 사이공> 등 성인 뮤지컬에만 출연해 왔다. “번개맨은 아는 사람의 소개로 오디션을 봤는데, 처음에는 어린이 캐릭터라서 자칫 가벼워 보일까 꺼려지기도 했어요. 그러나 번개맨이 워낙 사랑받아서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안정적인 목소리 톤과 185㎝의 큰 키가 영웅 캐릭터에 제격이라고 평가받는다.

그가 오면서 번개맨도 활기차졌다. 동요만이 아니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같은 성악곡도 아이들이 듣기 쉽게 편곡해 부른다. 그는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면서 함께 온 부모들도 즐겁게 볼 수 있도록 음악에 특히 신경 쓴다”고 했다. ‘번개 파워’도 업그레이드됐다. “예전에는 두 손을 모아 쏘는 정도였는데, 한 손으로도 쏘고, 발레 동작인 ‘셰네’(사슬 모양의 궤적을 그리면서 빠르게 회전해 무대를 이동하는 스텝)를 응용해 몸을 돌려 쏘는 식으로 다채로운 동작을 연구했습니다.” 대본에는 ‘번개 파워’라고 적혀 있는 것을 알아서 동작으로 만든 것이다. “아이들 공연이라도 쉽게 봐서는 안 돼요. 어깨를 쫙 편 반듯한 자세로 서 있어야 하고, 절도 있게 움직여야 하는 등 작은 차이가 작품의 질을 좌우합니다.” 노래도 8~9곡을 부르고 번개 체조도 하고, 악당도 물리쳐야 해 에너지 소모가 대단하단다.

1대부터 이어진 노력은 번개맨의 장수 비결이다. 지금껏 160만명이 넘는 어린이들이 번개맨을 보러 왔고, 799편의 이야기가 무대에 올랐다. 뮤지컬에 이어 영화로도 만들어지는 등 번개맨의 활약 무대는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미혼인 서지훈은 현장에서 확인한 번개맨의 인기가 상상 이상이었다고 했다. “번개맨이 쓰러지고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번개맨’ 하고 외칠 때는 울컥하기도 해요. 번개맨을 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는 얘기에는 책임감도 느껴지고요.” 그는 “위험에서 구해주는 영웅이 아이들과 함께 춤도 추고 노래도 해서 특히 더 좋아하는 것 같다”며 “할 수 있을 때까지 아이들의 영웅으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영웅으로 살아가는 데 남모를 고충도 크다. 아이들이 있을 때는 표준어로 또박또박 말해야 하고,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사회 규범도 잘 지켜야 하는 것은 기본. 무대 뒤에서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분장하고 잠깐 쉴 때도 널브러져 있어서는 안 돼요. 언제 아이들이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늘 가슴을 펴고 영웅 같은 멋진 모습으로 있어야 하죠. 아이들과 마주치면 힘들어도 활기찬 목소리로 인사해야 합니다.”

번개맨의 인기가 높을 수록, 상대적 박탈감이 크진 않을까. 번개맨은 정해진 분장과 옷 속에 나를 감춰야 한다. 분장 없이 나오는 <방귀대장 뿡뿡이> ‘짜잔형’ 같은 인물들과 달리 내 진짜 얼굴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분장을 지우면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스타에서 무명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랄까. 그는 “그래서 오히려 편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영웅으로 스스로한테 엄격하게 살다가 분장을 지우면 내 생활로 돌아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으니 그게 장점이죠.”

그러나 “분장을 지우면 인간 서지훈으로 산다”더니, 그는 벌레 한마리가 주위를 맴돌자 반사적으로 손을 모아 이렇게 외쳤다. “번개~ 파워!” 분장을 지워도 서지훈은 번개맨이다. 800회 특집은 11월7일 오전 8시30분에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