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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8일 17시 33분 KST

배우·제작진의 수명까지 위협하는 '생방송 드라마'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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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달을 촬영하는데 거의 두 달가량 미친 듯이 밤새웠어요. 차로 이동을 하면서 링거를 맞고. '일찍 죽겠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배우 주원이 지난 12일 방송된 SBS TV '힐링캠프'에 나와서 한 말이다.

미니시리즈 드라마로는 근래 보기 드물게 시청률 20%를 넘겼던 화제작 SBS TV '용팔이'의 타이틀 롤을 맡은 주원은 촬영 당시를 회고하며 울컥했다. 대박을 친 드라마의 '히어로'지만 그에게 '용팔이' 촬영은 이처럼 수명 단축까지 우려하게 할 만큼 힘겨웠던 것이다.

한국 드라마의 이른바 '생방송 촬영' 시스템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주원이 이런 발언을 하자 한국 드라마의 비합리적이고 살인적인 촬영 시스템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결과가 좋으면 모든 게 묻혀버리는 결과 지상주의, 시청률 지상주의가 지배하는 방송가에서 편성 시간 직전까지 촬영하거나 후반 작업을 해서 겨우 방송을 내보내는 한국 드라마의 제작 시스템은 수십 년째 '굳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사실상 생방송에 가까워 방송가에선 이러한 촬영을 '생방송 촬영'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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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방송 촬영'으로 결국 방송 사고가 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이어졌다.

지난 2월 화제 속에 종영한 SBS TV '펀치'는 마지막회에서 화면 정지 등 세 차례 방송 사고가 났다.

예견된 사고였다. 마지막회의 완성된 대본이 방송 이틀 전에야 나왔고, 촬영은 방송 몇 시간 전에야 끝이 났으며, 그 때문에 방송 시간 전 완성된 테이프를 넘기지 못하고 아홉 개로 쪼갠 편집본을 하나씩 순서대로 틀어야 했다. 그 결과 가장 관심이 쏠린 마지막회가 매끄럽지 못하게 방송되고 말았다.

그래도 이 드라마는 '명품' 드라마로 기억되고 회자된다. 국내에서 '생방송 드라마'가 계속해서 생명을 이어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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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팔이'의 주원만 링거를 맞는 게 아니다. 밤샘 촬영에 기진맥진해진 배우들이 링거를 맞아가며 촬영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촬영 도중 배우가 쓰러졌는데도 쉬쉬하기도 한다. '으레 이렇게 촬영하기 때문'이다.

주원도 '용팔이' 촬영 도중에는 씩씩하게 견뎠다.

그는 '용팔이'가 5회까지 방송됐을 때 가진 간담회에서 "오늘 제가 정확히 6일을 날밤을 새웠다"고 밝히며 에너지가 완전히 방전된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당시 "오늘 아침까지 오늘 밤 방송분(6회)을 찍었을 정도로 생방송으로 촬영이 진행되고 있다"고도 했다.

물론 이어 "리허설 때부터 감독님과 스태프가 모두 모여서 그 장면을 어떻게 촬영할지 의논을 하는데 그런 시간 때문에 밤샘 작업이 이어지기도 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 행복하다"는 뒷말이 붙었지만, 6일간 집에 못 들어가고 잠도 못 자며 촬영하고 있는 상황은 그를 체력적인 한계로 몰아세웠다.

'용팔이'는 평균 시청률 20.4%라는 금자탑을 세웠고 주원은 그 영광을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힘든 건 힘든 거다. 드라마가 다 끝난 뒤 그는 '힐링 캠프'에서 링거 맞으며 촬영했음을 고백하면서 "옛날에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100% 확신을 갖고 있었는데, '참으니까 이렇게 하나?' 싶어 조금 (울음이) 터졌는데, 혼자 안 좋은 느낌을 가지고 차로 바로 달려 갔어요. 차에서 한 번… (울음이 터졌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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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방송 드라마'가 개선되지 않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방송사 편성과 시청자 반응이다.

드라마는 일단 방송을 타야 하는데, 방송사의 드라마 라인업이 대개 늦게 결정되면서 제작 스케줄이 부랴부랴 잡힌다. 심할 경우에는 방송을 한달 앞두고 촬영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사전제작을 해 놓고 편성을 기다리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제작을 해놓았는데 편성이 안 돼버리거나 너무 늦게 되면 드라마의 가치가 뚝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국 시청자들은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드라마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유명한데, 시청자들은 드라마가 전개돼 가는 과정에 개입하기를 원한다. 실제로 많은 드라마들이 시청자의 반응을 보며 스토리를 수정하거나 캐릭터의 비중을 조절하며 시청률을 관리해왔다.

방송가에서는 이처럼 시청자와 실시간으로 호흡하며 만드는 발 빠른 제작시스템이 오늘날 한류 드라마를 만든 힘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방송이 되는 동안 호응이 큰 부분은 더 크게 살리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과감히 버리면서 드라마를 만들어간 것이 세계적으로 통하는 한류 드라마를 만들어낸 비결이라는 해석이다.

사전 제작 드라마들이 지금껏 실패를 거듭해온 것도 '생방송 드라마'를 이어지게 했다. 앞서 '버디버디' '탐나는 도다' 등 사전 제작 드라마들이 선보였지만 만들어진 지 몇년 후에 방송되면서 시청자의 외면을 받았다.

◇차이나머니, 한류 드라마 체질 개선하나

하지만,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생방송 드라마' 체제에 최근 변화가 일고 있다. 차이나머니 때문이다.

경색된 일본 시장 대신 한류 드라마의 큰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이 한류 드라마에 대해 사전 검열에 나서면서, 중국 시장을 노린 드라마들이 속속 사전 제작에 뛰어든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한국에서 드라마가 방송되면 곧 중국에서도 볼 수 있는 현실에서, 중국으로 제값을 받고 드라마를 수출하려면 한국과 중국 동시 방송만이 답이다.

방송 전 다 만들어놓는 것은 물론이고, 2~3개월씩 걸리는 중국 심의까지 통과한 후에야 한중 동시 방송이 가능한 상황이다 보니 중국 시장을 겨냥한 드라마는 사전 제작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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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의 10년 만의 복귀작인 30부작 드라마 '사임당, 더 허스토리'는 지난 8월 초 촬영을 시작해 내년 3월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그런데 방송은 내년 9월이나 돼야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홍콩 미디어그룹이 100억 원을 투자하고, SBS TV가 내년 편성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사임당, 더 허스토리'의 제작사 그룹에이트는 "사전제작으로 시청자의 실시간 반응은 포기해야 하지만, 대신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룹에이트의 김영배 기획팀장은 "물론 외부 투자를 받았고 편성도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사전 제작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리스크가 너무 크다"면서 "하지만 앞으로 중국 시장을 겨냥한 작품들은 사전 제작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